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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만에 월급 받은 아내가 처음으로 한 일

가드너로 첫 발을 내디딘 아내가 선물한 가방, 이 감동을 어쩌죠?

등록|2021.05.01 11:47 수정|2021.05.01 11:47
지난달부터 아내는 18년 만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 '다시'라는 말이 어색할 만큼 아내는 꽤 오랜 기간 아이들의 엄마, 내 아내로만 18년을 살았다. 게다가 젊어서는 여성 의류 대리점을 관리하던 본사 영업직으로 일했던 게 마지막이니 오히려 지금 하는 일이 '처음'이라는 표현이 적합한 표현일 듯하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조금씩 미뤄왔던 자신의 꿈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더니 드디어 자신이 꿈꿔오던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꿈꾸던 일을 위해 몇 달간 농협 대학교를 다니며 과정을 수료하고, 또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세 달이 넘는 시간을 실습과 수업을 병행했다.

원예 관련 자격시험이라 일반 자격증 시험처럼 시험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고양시에서 시험을 보기 위해 경기도 광주가 아닌 전라도 광주까지 시험을 보러 가기도 했었다. 물론 접수가 늦어서 경기도, 서울권은 모든 시험장이 인원이 차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이렇게 '가드너'라는 새로운 길에 한 발, 한 발 내딛던 아내가 드디어 일을 시작한 것이다. 김포시 도시관리공단 사업 일환인 공원 장미 전정 작업을 시작으로 서울식물원, 부천 시청 꽃 식재까지 2~3주간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일을 시작한 지 4주, 아내의 특급 제안

처음엔 18년이나 일을 하지 않았던 터라 긴장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한다는 설렘이 더 컸던 걸까. 체력도 약한 아내는 일을 다녀와서도 조금 피곤해 하기는 했지만 너무도 씩씩했다.

"지현씨, 오늘 갔던 서울 식물원 작업은 너무 좋았어요. 배울 것도 많은 것 같고, 해 놓고 나니 근사하더라고요."
"그래요? 사진 찍어 놓은 거 있으면 좀 봐요."
"잠시만요. 응, 여기 있네요. 많이 찍지는 못했어요."
"와, 근사하네요. 멋져요. 다음에 서울 식물원 한 번 가봐요. 영희(가명)씨 해놓은 작업 직접 보면 너무 좋을 거 같아요."


하지만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 일이라고 하지 않나. 아내는 그렇게 다른 팀의 작업 참관을 포함해 일을 시작하고 3주 일을 나가고 2주 동안 일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 회사 말로는 진행되는 다른 일들이 주로 지방 일이라 아내와 아내의 동료가 있는 팀에게는 할당할 사업이 없다고 했다.

처음 일을 맡을 때부터 아내와 아내 동료는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도 있고 해서 지방 일까지는 어렵다는 얘기를 했었다. 그래서 지금 2주간 일이 없는 건 회사 차원의 배려라고 좋게, 좋게 생각하고 있다. 당장 다음 주에 일이 잡혀 있기는 하지만 2주간 일을 쉬었더니 새로 시작한 일이 더 이상 진척이 되지 않거나 계약한 회사에서 일을 주지 않을까 봐 조금은 전전긍긍이다.

그렇게 일을 시작한 지 4주가 되지 않은 어느 날 아내가 내게 갑자기 보고 있던 스마트폰 화면을 내밀었다. 갑자기 눈에 들어온 화면에는 남성용 백팩이 화면 가득 있었고, 아내는 내게 어떠냐고 물어봤다.

"이거 어때요? 너무 심플한가. 우선 이것부터 봐요. 지현씨."
"갑자기 가방은 왜요? 나야 심플한 게 좋죠. 내 가방 골라보라는 거죠?"
"응, 내가 일 시작하면서 월급 받으면 지현씨 가방 사주려고 했었어요. 오늘 월급 들어왔거든요."
"와우, 정말요? 에이, 첫 월급인데 영희씨 사고 싶은 거 사요. 일도 많이 안 해서 급여도 많지 않을 텐데."
"아뇨. 애들 책가방 사줄 때 괜히 지현씨한테 미안하더라고요. 애들은 비싼 브랜드 가방 백화점에서 사줬는데 우리 신랑 가방은 마트에서 사줘서요. 그것도 벌써 매고 다닌 지 4년은 넘어서 가방 바닥도 낡았더라고요."

  

가방 멘 남자아내가 사 준 가방 메고 출근하는 남자 ⓒ 정지현

 
그렇게 아내가 골라준 가방을 사기로 결정했고, 며칠 뒤 가방은 집으로 배송이 되어 왔다. 아내가 18년 만에 처음 받은 월급. 그 소중한 돈으로 내게 가방을 선물했다. 평소에 필요한 옷이나 가방을 살 때와는 기분이 많이 달랐다.

가드너라는 직업이 밖에서 몸을 쓰며 일하는 직업이다 보니 아내는 그 돈을 벌기 위해 며칠을 구슬땀을 흘렸을 테다. 안 그래도 좋지 않은 허리를 숙였다 폈다를 반복하며 꽤나 고생하며 일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4주가 되는 동안 몇 번 일이 잡히지 않아 계약직인 아내에게 들어온 돈도 얼마 되지 않을 텐데, 받은 가방의 무게가 꽤나 무겁게 느껴진다. 아내가 첫 월급으로 사준 가방을 메고 난 오늘도 출근한다. 가방 가득 아내의 마음을 함께 싣고.

오늘도 아내는 출근한다 

"할아버지, 사람은 힘들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행복할까요? 아니면 자신이 잘하는 일을 좋아하며 하는 게 행복할까요?"
"고진 고래(苦盡苦來)라고 했다. 고생 끝에 또 고생 온다고. 기왕 힘든 거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행복한 게 낫지 않겠냐."

얼마 전 즐겨보는 드라마 한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과 할아버지가 나누던 대화가 기억난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많은 부분 공감되고, 이해돼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모두 알고 있지만 쉽게 실천이 안 되는 게 현실이고, 그래서 인생인 듯하다. 그런 점에서 아내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몸이 조금 힘들고, 고된 것이니 그 고됨도 잊을 만큼 무척 행복한 사람이다.

다행히 2주간 일이 없어서 쉬었던 아내는 이번 주에는 오랜만에 일을 나간다. 이번에도 김포 쪽 도심 공원을 예쁘게 꾸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내가 작업한 공원을 찾아 행복하길 바라며 오늘도 아내는 출근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제 개인 브런치에 함께 연재됩니다. 필자를 제외하고, 기사에 나온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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