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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속 그 많은 사진에는 '이것'이 필요합니다

이미지가 의미를 얻고 오래 기억되려면 언어가 함께 해야

등록|2021.04.27 14:48 수정|2021.04.27 14:48
나이 들어서도 시대의 흐름에 나름 잘 적응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만, 몇 가지 뒤떨어지는 게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이미지 시대로의 변화입니다. ​사진 찍기를 즐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글을 향한 고집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떤 대상을 포착했을 때 이미지보다는 글로 묘사하는 게 더 우월하다는 터무니없는 고집을 부립니다.
 

▲ ⓒ elements.envato


그러나 이제는 이미지 없이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합니다. 특히 각종 SNS에서도 글보다는 이미지가 우선입니다. 글은 이미지를 설명하는 보조 역할로 전락했습니다. 이미지는 글 없이도 충분히 존재 가치가 발휘합니다만, 글은 이미지 없이는 천덕꾸러기가 됩니다. 간혹 이미지 없는 긴 글을 만나면 사람들은 마치 지나간 교과서라도 보듯 진저리를 치면서 넘겨버립니다.

​그래서 지금은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댑니다. 누구는 다녀갔다는 인증을 위해, 누구는 SNS에 올리기 위해, 누구는 현재의 감흥을 어떻게라도 표현하기 위해 찍어댑니다.

저도 이 시대의 사람들과 소통하려면 사진 찍기에 동참해야겠습니다. 어떤 대상을 보면 '닥치고' 사진부터 찍어야 하겠습니다. 제 글을 위해서도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제 글이 사람들에게 천대받지 않으려면 이미지로 치장을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대상을 보고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은 무형이라 사진으로 담을 수 없습니다. 언어로 된 글이 아니고서는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합니다. 다만 사진은 기억을 되살려내는 좋은 매개가 됩니다. 나중에 사진을 보면서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사진은 글을 훌륭하게 보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오늘날 사진찍기는 매우 편해졌습니다. 휴대전화기에 장착된 카메라로 언제 어디서든 사진찍기가 가능합니다. 또 디지털 사진이라 별도의 작업 없이 곧바로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즉시 사진을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많은 이미지가 생산되고 유통됩니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투명사회>(2014)에서 디지털 사진은 기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끊임없는 현재의 연속이고, 보존 가치를 상실한, '좋아요'만 남발하면 되는, 살아가는 이야기가 없는, 탈서사화한 사진입니다.

지금 이 사진 찍는 시대에 사람들은 디지털 사진을 오래 보관하지 않습니다. 그냥 즉각적으로 소비하고 곧 망각해 버립니다. 수많은 이미지가 일회용 종이컵처럼 한번 보고 버려집니다.

하나의 이미지가 의미를 얻고 오래 기억되려면 언어가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전에 우리는 인화한 사진을 앨범에 끼워놓고 두고두고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방금 찍은 이 사진 한 장에 언어로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업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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