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원 한 장이면, 해외여행이 부럽지 않습니다
[무소비 여행] 동네로 떠나는 여행, 일상의 재발견
꼭, 돈을 써야만 행복할 수 있을까요? 소비하지 않고도 재밌고 다채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있을 겁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의 '무소비 OO' 이야기를 들어봅니다.[편집자말]
그보다 날개를 펴고 높이 날아 올라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 나는 '성을 짓는 자는 망하고, 길을 가는 자 흥한다' 칭기즈칸의 말을 무척 아꼈다.
지금 그 모든 경험들은 아주 기분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눈을 감으면 쿠바부터 일본까지 다양한 풍경이 마치 필름처럼 차르르 지나간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과연 내가 그곳에서 진정 찾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과연 여행이란 무엇일까
어느 날 숱한 여행으로 까맣게 그을린 피부를 가진 친구 녀석이 한마디 했다. "이제 여행 그만 다니려고, 여행보다 책을 읽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아." 나는 역마살을 빼면 설명이 불가한 그의 말에 적잖이 놀라면서 "그럼, 여행 다니면서 책을 보면 되지"라고 되받아쳤다.
그러자 친구는 "경비와 시간이 너무 많이 드는 데 비해 내가 얻는 건 얼마 없는 것 같아. 오히려 책이 나에게 더 큰 울림을 주는 것을 알게 되었어"라고 차분히 말했다. 나는 그가 어쩌면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소중히 하고, 외적 확장보다 내적 성숙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국내와 해외여행을 즐기는 자와 관광과 휴식을 즐기는 자, 서로의 차이는 단지 '나는 나고, 너는 너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절대적인 것은 없기 때문에 우리의 가능성은 뜻하지 않게 열릴 수 있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가로질러 경험하지 못한 곳으로 가든 친숙하고 가까운 동네 주변을 산책하며 익숙한 일상 속에서 낯선 것을 찾든, 그 모두는 각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가치 있는 일이다.
코로나19로 하늘과 땅의 여행길이 닫히고 가족 모임마저 경계 대상으로 여겨지는 요즘 여행이라는 단어가 낯설어졌다. 문득 나는 이 여행이란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았다. 무조건 멀리 떠나고 인증샷을 남겨야 여행일까?
그 물음과 함께 나는 캠핑용 의자와 탁자, 그리고 그늘막과 텐트를 마련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섬, 거제도를 여행해보자 다짐했다. 이후 몇 달 간의 여정은 숨겨진 보석을 찾는 것과 같았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진부한 표현이 실체를 가지고 곁으로 다가왔다.
책, 음악 그리고 자연과 함께 하는 여행
▲ 아들과의 여행. ⓒ 홍기표
나는 간편하게 앉을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그늘막을 가지고 적당한 곳에 앉아 즐기는 여행을 '오늘의 발견'이라고 이름 지었다. 쉬이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닌 평소에 잘 보이지 않았던 나와 도시의 새로움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주말이면 차로 10~30여 분 거리에 있는 바다와 산으로 가 점심과 저녁을 챙겨 먹고 돌아왔다.
지난 일요일(25일)에는 산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자연휴양림이었다. 텐트를 칠 수 있는 야영장은 만 원이면 이용이 가능했다. 깊은 산속, 나무로 만든 내리막길을 계곡물을 따라 흘러 흘러 내려가 미리 예약한 자리에 도착했다.
먼저 테이블을 펼치고 의자를 깔았다. 높이 솟은 나무가 잎으로 충분히 가린 햇살은 조금씩 기분 좋게 들어와 그늘막은 필요가 없었다. 버너를 꺼내 불을 올리고 밥을 지었다. 잔잔한 음악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가 묻히지 않을 정도만 틀어두었다. 그리고 <어린 왕자>를 읽었다.
아들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나뭇가지를 모아 칼처럼 휘둘렀다.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입으로 뱉으며 폴짝폴짝 이리저리 곡선을 그렸다. 때로는 물 위에 돌을 던져 이름 모를 곤충들을 공격하기도 했다.
밥과 고기 그리고 한 모금의 맥주를 마시며 아이에게 광합성에 대해서 설명을 해보지만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녀석에게는 무리였다. 밥을 다 먹고 계곡물이 어디서 흘러오는지 한번 찾아보자며 언덕을 올랐다. 거제 자연휴양림 꼭대기에는 작은 댐이 있다. 그곳에서 흘러나온 물이 작은 계곡이 되었다.
아들과 함께 그 작은 댐과 말라버린 폭포를 봤다. 내려오는 길에는 노부부 해설사를 만나 편백나무 팔찌를 만드는 행운도 가졌다. 팔찌를 다 만들고 나니, 해설사께서 나무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다. 더불어 청진기로 느티나무가 물을 빨아들이는 소리를 듣는 재밌는 체험도 할 수 있었다.
▲ 아들과의 여행. ⓒ 홍기표
짧은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다시 간식을 꺼내 먹었다. 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주려 하자 참지 못하고 멈췄던 놀이를 다시 이어가는 모습에 그저 웃을 뿐이다.
후에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책, 음악 그리고 자연이 어우러지는 여행을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작은 욕심이 생겼다. 그와 동시에 낯선 곳에서 발품을 팔아 새로운 풍경을 담고, 예상하지 못한 사건을 해결하며 통쾌한 웃음을 짓는 여행도 많이 즐겼으면 좋겠다.
모든 것은 그 하나로 충분하지 않다. 나의 여행 타입이 무엇일까 고민하기보다 그저 그냥 그때 그 순간을 즐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타인과 물리적 거리는 멀어졌지만, 그만큼 나와 가족과의 거리는 더 가까워졌다. 고요히 앉아 사유를 한 덕에,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와 베풂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가까운 곳에 숨겨진 기쁨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건 어떨까.
▲ 아들과의 여행. ⓒ 홍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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