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동결은 위법" 독일의 주택 이슈, 총선까지 간다
'2019년 수준서 동결' 베를린의 조처, 법원이 위헌 판결... 시민단체, 9월총선 '국민투표' 추진
▲ 독일 수도인 베를린의 월세상한제(월세동결) 관련, 법원의 위헌 판결로 인해 임대인들의 손해액 요구 등 혼란초래가 예상된다고 전하는 유로뉴스(euronews.com) 방송. 방송에 따르면 독일 베를린 거주민들 중 아파트 보유자는 약18%뿐이라고 한다. ⓒ www.euronews.com
한국이 부동산 문제로 연일 논란이듯,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택 문제에 있어 '유럽의 맹주' 독일도 예외는 아닌 듯 보인다. 수도 베를린은 2009년 이후로 월세가 두 배 이상 급등하는 이상 증상을 보였고, 2020년 2월, 베를린 시는 5년간 월세를 동결하는 높은 수위의 시장 개입을 결정했다. 베를린 정부가 사실상 월세를 동결하는 수준의, 강력한 '월세상한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14개월이 지난 2021년 4월 15일, 독일 대법원은 베를린의 동결 조치를 위헌으로 판결, 무효화 시켰다.
'2019년 6월 수준으로 동결' 베를린 월세상한제, 왜 논란인가 보니
논쟁의 중심인 베를린 월세상한제는 현재 사회 민주당, 녹색당, 더 레프드당 (The Left party)의 연합으로 구성된 베를린 시 의회의 결정으로, 월세를 '2019년 6월 수준으로 5년간 동결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제도가 적용되는 아파트 수는 베를린 전체 아파트의 90%에 달하는 약 150만 채이다. 그리고 이 법이 제시한 기준에서 현재 월세가 과도할 경우, 세입자는 임대인에게 월세를 낮춰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이 조치를 위반할 경우, 건당 5십만 유로 (약 6억)을 벌금으로 내야 한다. 단, 시장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방지하고 동시에 신규 주택 건축도 장려할 목적으로 2014년 이후에 지어진 새 아파트들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15년전까지만 해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월세가 쌌던 베를린이 월세상한제까지 가게 된 배경에는, 지난 몇 십년간 베를린 시내 아파트를 사들인 헤지펀드와 부동산 개발 회사가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막대한 통일 비용에 중앙정부는 지방 정부 보조금을 줄였다. 대부분의 지방 정부들이 적자를 기록했고 이들은 자산을 파는 쪽을 택했다. 베를린 역시 그 일환으로 공공 주택 약 20만 채를 매각했다.
이 때 골드만 삭스가 투자한 미국의 서버러스 캐피탈(Cerberus capital management)는 한 채당 약 700만 원 가격으로 6만 6700채를 구매했고, 이것은 현재 독일의 가장 큰 부동산 회사인 독일 주택 (Deutsche Wohnen)의 기반이 된다. 이 회사는 현재 베를린 시내 약 11만 채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이자율이 떨어지자, 거대 부동산 개발 회사들은 신축보다 기존 주택을 사서 개조한 후 월세를 올리는 전략을 세웠다. 이후, 아마존, 소니, 사노피 등 외국 기업이 베를린에 진출하고 베를린이 유럽 스타트업 사업의 중심지가 되면서 대규모 인구 유입이 이루어졌다. 재도시화 과정에서 주택 부족이 발생, 이는 2010년대 임금 상승률을 훨씬 초과하는 월세 폭등으로 나타났다. 시민들이 월세에서 주택 구매로 마음을 돌렸지만, 주택 가격 역시 2017년 한 해에만 약 20%가 올랐다.
'월세상한제'를 둘러싼 찬반... 완벽한 대책은 아닐지라도
월세상한제는 대부분 세입자층으로부터 환영을 받았지만, 반대 의견도 즉시 등장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시장과 정부와의 경제적 관계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민간 부동산 회사와 투자가는 베를린 시 정부가 자유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하나는 행정적인 문제, 즉 중앙-지방 정부 간의 권한 문제였다. 기독교 사회당(Christian Social Union), 기독교 민주당(Christian Democratic Union), 친시장을 기조로 하는 자유 민주당(Free Democratic Party)은 주택 정책은 중앙 정부 소관이기 때문에 베를린의 월세상한제는 지방 정부의 권한 밖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284명 국회 의원들의 동의를 받아 베를린 시 정부를 고소했다.
법원의 최종 결정이 나오는 약 1년 동안, 베를린 월세상한제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었다.
반대하는 측은 '정책과 결과 사이의 괴리'를 지적한다. 신축 아파트에 대한 예외 규정에서 보이듯이, 베를린 정부가 바라는 것은 안정과 공급 확보이다. 하지만 반대 측은 이런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며 몇 사례를 근거로 들었다.
제도 시행 이후 회사들이 월세 사업보다는 재개발로 선회해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한 샌프란시스코, 장기 월세 동결로 아파트 노후화를 겪은 포르투갈, 월세상한제 아파트에 들어가는 대기자 명단이 무려 60만 명 이상으로 사실상 신규 진입이 불가능한 스웨덴이 대표적 예다.
▲ 임대인을 보호하려는 독일의 월세상한제는 세입자층의 환영을 받았으나, 논쟁이 계속됐다. 한국에서도 세입자 보호를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된 지 9개월여, 세입자 권익은 강화됐으나 전월세 가격이 상승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사진은 위례신도시에 건축중인 한 아파트의 모습. ⓒ 연합뉴스
게다가 이게 위헌으로 결정될 경우, 임대인이 동결됐던 지난 기간 손해 본 액수까지 합쳐서 월세를 올릴 것이기 때문에 세입자들 역시 큰 경제적 타격을 볼 것이라고 예상했다. 월세상한제 범위 확장에 대한 우려로 투자 심리를 위축, 베를린 정부의 공급 확대 계획도 불투명하다고 보았다.
반면, 월세상한제 지지자(찬성파)들은 사회적 효과에 초점을 맞춘다. 시장 경제 논리에 전적으로 따를 경우, 더 심각한 사회 문제에 봉착한다는 우려다. 이들은 다양한 계층이 섞여야 하는 도시가 중산층 이상만을 위한 공간이 될 경우 주변부로 밀려나는 사람들의 경제적 시민권이 훼손될 것이고, 이는 사회적 갈등을 악화시킬 것으로 보았다.
월세상한제가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것으로 당분간 서민들에게 숨쉴 공간을 제공할 수 있고, 임대인과 세입자간 과도한 권력 불균형을 조절할 수 있고, 또 과열된 시장을 어느 정도 식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민층의 주택 위기가 1930년대 초 나치를 급속하게 성장시킨 한 배경이었기 때문에 이들에게 월세는 경제 문제 그 이상이다.
법원의 위헌 판결, 그 후폭풍... '국유화', '강제몰수'까지 거론돼
논쟁 속에 지난 4월 15일, 대법원은 베를린의 월세상한제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위헌으로 판단한 기준은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와의 권한이었다. 독일 헌법에 따르면, 주택 정책 수립은 연방 정부의 권한으로, 지방 정부는 중앙 정부 차원의 정책이 없을 때 권한을 가질 수 있다. 대법원은 연방 정부가 내놓은 2015년 점진적 월세 상한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이 독자적으로 월세 동결책을 실시했다고 보았다.
즉 정책의 강도 면에서 중앙 정부와 베를린의 두 정책이 상충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대법원은 지방 정부가 별도의 규정을 만들 권한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행정적 권한에 기반한 대법원 결정이 주택을 둘러싼 사회 경제적 갈등을 해소하기는 어려웠다. 논쟁은 경제 영역으로 돌아왔다. 부동산 회사 측은 베를린시의 결정이 주택 시장에 불확실성을 늘리며 투자를 막았다고 지적, 경제적으로도 올바른 선택이 아님을 강조했다. 반대로 월세상한제를 추진했던 더 레프드당은 대법원 결정이 월세 동결 하에 있는 150만 가구에 큰 실망을 주었다고 평했다. 베를린 시정부를 지지했던 정치권 역시, 중앙 정부가 지금보다 더 강력한 정책을 수립하거나 각 지방 정부에 권한을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판결에 반발, 주택 문제를 더 확장시킨 것은 시민운동 쪽이었다. 월세상한제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카드, '국유화'를 꺼내 들었다. 부동산 회사의 아파트 소유를 3000채까지로 제한하고, 그 이상의 아파트는 '강제 몰수'하여 국유화하자는 내용이다.
이 경우 부동산 회사는 보상을 받는다. 실현될 경우, 약 25만채, 베를린 전체 아파트의 8분의 1이 공공 주택으로 전환된다. 이들의 법적 근거는 "토지, 자연 자원 그리고 생산 수단을 정부 혹은 다른 형태의 공유 경제로 이전하는 것을 허가한다"는 독일 헌법 15조이다.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자료사진) ⓒ 연합뉴스=AP
시민 운동가들은 이 안을 9월 총선 때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민 투표에 부치기 위해서는 최소 17만 명 서명이 필요한데, 현재 약 13만 명 서명을 받았다고 한다. 서명인이 독일 시민권자이어야 하고 베를린 거주 기간이 일정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고려할 때 실제로는 13만 명에 많이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총선까지 아직 시간이 있기 때문에, 운동가들이 서명받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주택 문제가 사회 문제의 중심이 되는 한국과 독일을 보며, 2017년 인문 지리학자 스테판 웻스타인의 의견을 소개하고자 한다.
"주택은 현재 중요한 사회적 영역에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이익은 너무 쉽게 사유화되는 반면, 위험과 손실은 사회 문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자본주의를 관리하기보다 자본주의가 국가를 관리하는 현 정치 경제 시스템에서 주택 문제의 해결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 하지만 주택 문제에 있어 현상 유지를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선택이 될 수 없다. 전 세계적 위기를 막기 위해 더 많은 용기, 노력, 지도력이 시민 사회와 정치권에서 계속될 것이다."
-도시학 (Urban Studies) 54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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