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골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돌보냐 묻는다면
[지리산활동백과] 경남 함양 백전의 '다함께사이좋은마을학교'를 방문하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는 지리산권 지역에 필요한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들과 공익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민간 지원단체로, 아름다운재단과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이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리산권 지역에서 직접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 모임, 공간, 네트워크를 소개하는 글을 싣습니다.[기자말]
▲ 왼쪽부터 바리샘, 영선샘, 사사샘과 딸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은 이제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 흔히 가져다 쓰는 말이 됐지만, 그 교훈대로 사는 마을은 흔히 보기 어렵다. 일단 농촌에 마을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데다가 아이가 남아있는 마을이 많지 않다. 아니, 우리 마을은 아이가 한 명뿐인데도 함께 키운다는 게 또 말처럼 쉽지 않다.
경남 함양군 백운산 아래에는 백전면, 백전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마을교육공동체 '다함께사이좋은마을학교'가 있다. 이 산골 마을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돌보고 있는지 이 마을학교의 핵심인물(?) 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어봤다. 백전면의 또 다른 교육공동체이자 국내 최초 대안대학인 녹색대학, 지금의 '온배움터' 공간을 빌려 쓰고 있어 그곳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바리샘 : "아이들이 자유로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10분, 20분이 아니라 양껏, 마음껏 놀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작은 학교는 더욱 그래요. 아침부터 오후 4시 반까지 아이들의 일과가 정해져 있어요. 돌봄을 이유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이 다 정해져 있거든요. 아이들의 의사와 상관없이요. 그래서 시작은 '놀이'로 했죠. 선생님들이 다재다능하셔서 그 재능을 아이들과 놀이로 할 수 있도록 기획했어요."
부산에서 풍물패를 연구하다 배낭 하나 메고 백전면으로 들어온 지 9년 차인 바리샘은 현재 '다함께사이좋은마을학교' 사회적협동조합의 이사장이자 마을학교 대표다.
사사샘 : "처음에는 그리기나 만들기 등의 수업을 아이들과 함께했어요. 마을교사 3년 차였던 지난해에는 저희 마을학교가 '숲놀이'에 초점을 맞췄어요. 그래서 저는 랜드아트(대지미술)로 아이들과 자연 예술을 주로 했어요. 종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드는 예쁜 쓰레기 말고, 자연의 재료로 예술 활동을 하고, 재료를 그대로 자연에 돌려보내는 거예요."
도시에서 애니메이터로 살다가 시골이 더 맞겠다 싶어서 함양으로 들어와 산 지 7년 차인 사사샘은 마을학교에서 꼼꼼함과 진지함을 맡고 있다. 아이는 아직 유치원에 갈 나이도 안되었지만, 아이들이 자라고 살아가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부모가 되고 싶어서 일찌감치 이 교육공동체에 합류했다.
영선샘 "저는 첫째 아이가 커서 성인이 되는 걸 보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며 이끌어가는 과정을 어릴 때부터 훈련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아이들과 하브루타로 질문을 만들며 대화하는 수업을 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어떤 나이가 되면 대화를 잘 안 하게 되잖아요. 그런 걸 해결해보고 싶었어요. 아이들이 만나서 맘 편히 같이 떠들 수 있는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아이들과 대화를 거듭하며 생각하는 힘도 기르고, 실수하거나 실패하는 것도 받아들이며 스스로 서는 과정을 가르쳐주고 싶어요."
▲ 백전면의 네트워크 공간 ‘온다방’에 둘러앉아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전교생 1000명이 넘는 학교에 아이를 보내다가 전교생 40명 남짓한 백전초등학교가 있는 산골 마을로 들어온 지 5년 차인 영선샘은 아이를 심심하지 않게 해주려고 함께 놀 방법을 모색하다가 협동조합 설립까지 자연스럽게 '흘러'왔다고 고백한다.
이들 말고도 목공을 함께하는 영민샘, 숲밧줄 놀이를 함께하는 성우샘, 등산을 함께하는 춤꽃샘이 있다. 마을학교 수업 프로그램은 매해 새롭게 구성한다. 올해는 학교 마당에 뼈대만 세워져 있는 게르를 꾸미는 것, 숲놀이터를 만드는 것과 텃밭 농장에서 여러 실험을 해보는 것이 마을학교 계획이다.
사사샘 : "어떤 프로그램이든 사람과 함께하는 거잖아요. 또래나 어른들과 맺어가는 관계가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마을학교를 통해서 만나는 관계들이 (학교와는 다른 방식으로) 맺어지고, 펼쳐지길 바라요. 그런 의미에서 마을학교에서 하는 건 단순한 수업이 아니라 '실패해도 괜찮은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이 과정에서 실패와 실수를 경험하며 잘됐을 때나 안됐을 때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까지도 잘 살피고 배우길 바라요. 어른도 아이도요."
마을학교 어른들도 아이들 못지않게 열심히 배웠다. 이 작은 산골 마을에서 일본까지 견학을 다녀왔을 정도다. 마을학교를 통해 아이들끼리는 물론, 어른들끼리도 아이들과 마을교사(주민)도 더 가까워졌다.
바리샘 : "아직 마을학교로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많지는 않아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보는 셈이죠. 하지만 이전과 비교했을 때, 아이들이 마을학교를 통해서 다 같이 잘 노는 문화가 생긴 것 같아요. 관계를 풀어나가는 힘이 길러졌달까요. 어른들과의 관계도 조금은 편해진 것 같아요. 적어도 마을학교 선생님들은 학교 선생님에 비해 어렵지 않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교과서에서는 전국 공통의 내용만을 다룰뿐더러 특히 농촌의 현실을 그다지 잘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마을학교에는 그 마을의 아이들이 살아갈 진짜 관계와 진짜 삶이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삶의 현장인 마을로 들어가면서는 다소 딱딱하고 어색했던 '학생모드'를 툭툭 털어내고, 좀 더 편안한 '주민모드'로 전환되는 것 아닐까.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그들의 이웃이기도 한 마을교사들을 부르고, 그들에게 다소 '만만하게'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말이다.
사사샘 : "방과후학교로도 아이들을 만나봤지만, 그땐 교실에서 통제 형식으로 수업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마을학교에서는 놀이로 만나니까, 이제 아이들이 저를 불러줄 때 편해진 것이 느껴져요. 저도 교사보다는 주민으로 아이들을 만난다고 생각하고요."
다함께사이좋은마을학교는 '주민모드'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아이들과 함께 배워보고자 했다. 물론 배움을 위해 숨은 노고가 많지만, 아이들에겐 그저 동네 어른으로서 함께 배움을 위해 애써주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었다. 온 마을은 아니어도, 온 마음을 다하는 몇 사람이 있어 마을학교를 시작하기엔 충분했다.
마을학교 3년차, 품을 넓히기 위해 사회적협동조합으로
▲ 터를 빌린 온배움터의 정문으로 들어서자마자 게르와 풀을 뜯는 염소 가족을 만날 수 있다.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다함께사이좋은마을학교는 2018년부터 백전초등학교 학교협력형 마을학교로써 3년간 활동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2020년 11월,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이제는 초등학생뿐 아니라 유치원생, 청소년, 성인에 이르기까지 더 많은 주민과 함께 배우며 자라는 마을교육공동체를 꿈꾼다.
사사샘 : "마을학교일 땐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활동밖에 못 했는데, 협동조합이 되니까 어른들과도 함께 배울 수 있고, 여러 공모사업을 통해서 더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됐어요. 숲과나눔 재단에서 공모한 시민아이디어 지원사업으로 저희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실험을 해 볼 예정이고요.
사단법인 숲길의 '산촌 네트워크' 거점이 되어 주민 아카데미도 열게 됐어요. 이렇게 외부의 여러 기관/단체와 손잡기가 수월해진 것 같아요. 교육이 아니더라도 저희가 관심있는 일들에 발 담그기도 좋고요."
영선샘 : "면 단위에서 재미난 문화거리들이 잘 없잖아요. 주민들이 주도하는 건 더더욱 없고요. 그런 것도 해볼 수 있어서 좋아요. 시골에서 흔히 접할 수 없는 콜라주 아트, 맥주 만들기, 도마 만들기 등의 강좌를 사단법인 숲길의 지원을 받아 저렴한 참가비로 모집했어요. 이런 프로그램엔 대체로 귀농·귀촌인들이 오시죠."
▲ ‘함양마을숲학교’의 상상도는 놀이터, 숲텃밭, 숲공방, 숲도서관, 숲카페 등으로 빼곡하다.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시야가 한층 넓어지니, 이젠 매일 만나야 할 만큼 바빠졌다. 백전면 아이들을 돌보는 일부터 귀농·귀촌인의 문화생활을 지원하는 일, 백전면 어르신들의 손과 발이 되어 드릴 수 있는 일까지 이 마을에 필요한 것들을 채워줄 아이디어를 줄줄 읊어보다가 '그러면 이분들은 누가 먹여 살리나'하는 고민에 닿으면서 다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사사샘 : "영선샘 말대로 여러 외부 기관과 연결되고, 지원을 받게 돼서 폭넓은 대상을 만나게 된 점은 좋았지만, 선주민들에게는 낯선 일들이라 균형을 갖춰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야 '쟤네 뭐지?'가 아니라 '우리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이구나', '우리도 함께할 수 있는 일이구나'하고 생각하실 것 같아요."
바리샘 : "그래서 제가 마을회관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마음의 거리를 좁히고 있어요. 설거지도 하고요. 사람이 워낙 없어서 부녀회장을 맡게 된 지 벌써 7~8년이네요. 계속 만나고, 뭐라도 해야 관계는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우리 집이 언덕바지에 있어요. 어른들이 우리 집 주변에서 쉬었다 가시거든요. 그래서 어른들 뵐 때마다 오미자차를 타서 나르기도 해요.(웃음)"
마을학교는 마을이 학교의 일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학교가 마을의 일부로 스며들게 하는 것이라는 걸 다함께사이좋은마을학교는 진작부터 알고 있다. 이 마을학교는 어떻게 마을에 어우러져 갈지 기대하게 된다.
이들이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컨설팅과 워크숍을 거치며 그린 그림은 바로 '함양마을숲학교'였다. 그 거창한 꿈을 이루기 위한 작은 지혜는 바로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영선샘 : "다른 조합원들은 대체로 젊을 때부터 귀촌하셔서 그런지 제가 보기엔 시골살이에 대한 주관이 뚜렷한 사람들로 보였어요. 그런데 저는 갑작스럽게 귀촌했고, 협동조합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마을교사로만 함께하려고 가벼운 마음을 먹었던지라 '그냥 주변인으로 필요할 때만 함께 하면 안 될까' 하는 고민이 되게 많았어요.
그런 고민을 하는 와중에 나온 그림이 '함양마을숲학교' 상상도였어요. 이 그림을 이루는 데까지는 굉장한 시간과 에너지가 들 것 같긴 해요. 제 나이도 적지 않고요. 근데 이걸 그리고 나니까 방향성이 생겼어요. 언제 되건 간에, 그 방향으로 조금씩 천천히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몇 년 안에 이루자' 그런 거 없이, '언젠가는 이대로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조합원이 되기로 했어요."
기사에는 다 담지 못했지만, 농촌 지역 특성상 아이들 스스로 이동하기 어려운 점, 이들을 위한 고유한 공간을 갖기 어려운 점, 학교나 공공시설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으니 지역 내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하기도 어려운 점, 인건비를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운 점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이런 문제는 어느 농촌 지역에서나, 어느 단체에서나 비슷하게 공유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다 함께 사이좋은 마을을 만들어가는 일이 주민들끼리만 고군분투해야 하는 일이 아니게 되길 바란다. 이들이 꿈꾸는 마을교육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길에 부디 단비와 햇살이 가득하길.
글 | 푸른
사진 | 임현택
기획/진행 | 누리
-
Author 푸른
내 이름도 별명도 살고 싶은 모습도 '푸른'. 나는 따뜻하거나 뜨거운 사람.
어린이의 벗 되어 살고 싶다. 어린이 해방을 꿈꾸며 산청에 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인터뷰는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