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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가 일반범죄... "참 이상한" 이 법원, 이대로 둘건가

[군사법원 성범죄판결 집중분석-마지막] 군 관련 범죄 5% 불과... 헌법 27조 1항 위배 소지

등록|2021.05.18 20:49 수정|2021.05.18 20:49
군사법원의 빗장이 드디어 풀렸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월 1일 국방부 판결문 열람 서비스 시작과 동시에 최근 2년간 각 군 성범죄 판결문 158건을 전수분석했다. 국정감사 때마다 등장하는 군사법원 '솜방망이 처벌'의 실체와 판결문 속에 만연한 '군 중심주의'를 파헤쳤다. 8회에 걸친 연속보도를 통해 군사법원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이 기사는 그 마지막이다.[편집자말]
   

▲ 고등군사법원. ⓒ 고등군사법원 홍보영상 갈무리


"피고인은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10대 여성을 성욕 해소를 위한 도구로 보고,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
 

지난 4월 22일 서울 용산구 고등군사법원 대법정 결심공판 현장. 법정 방청석엔 기자뿐이었다. 피고인은 육군 대위 A. 그는 청소년인 피해자에게 성행위를 강요하고, 심지어 이를 불법촬영했다. 피해자는 사건 발생 이후 고통을 호소하다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1심인 보통군사법원의 판단은 최하 법정형인 징역 2년 6개월이었다. 판사의 재량 판단까지 들어간 가장 낮은 형이다. 군 검찰은 이날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피고인은 줄곧 혐의를 부인하다 디지털 포렌식 결과 범행 영상이 나오자 그제야 '반성한다'고 했다.

그러나 항소심의 결과는 달라지기 힘들어 보였다. 검찰과 달리 피고인, 피해자 측 변호인 모두 피고인의 감형에 초점을 맞춘 변론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피고인 측은 "피해자도 피고인에게 관심이 있었다"고 했고, 피해자 측은 '선처' 의견을 전달했다. 고액의 합의금이 제시됐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피해자 가족 측은 이를 받아들였다. 양측 변호인은 재판 직후 함께 대화를 나누며 법정을 빠져나갔다.

군의 특수성? 

단 하루의 현장이 아니다. <오마이뉴스>가 군사법원 판결문 공개 직후 들여다 본 최근 2년 간 성범죄 사건 판결 158건 대다수는 군사법원 특유의 조직 중심주의에 따른 '죄 깎아주기' 현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피해자의 피해 사실보다 가해자의 미래를 걱정했고, 가해자의 군 복무 기간과 부대 동료들의 탄원 여부에 따라 그의 성실성을 계산해 양형에 반영했다. '사회적 통념'이라는 추상적 기준으로 추행 사실을 편리하게 덮어왔다.

축적된 판결문은 부끄러운 통계로 남았다. 지난해(2020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결과를 종합하면, 2015년부터 2020년 6월 말까지 군대 내에서 성범죄를 저질러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비율은 10%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성범죄를 저질러 민간법원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비율인 25%보다 크게 낮은 수치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성범죄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른 바 순정 군사범이라고 하는데. (2015년부터) 군 형법에 어긋나는 범죄들, 이것들과 관련한 재판 건수는 점점 떨어지고 있어요. 다 합해서 11% 정도 밖에 안 됩니다. 기소된 건에 비하면 한 5% 정도 밖에 안 돼요. 이러니 참 이상하다..."

김진애 전 열린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현장에서 군사법원이 군 문제를 다룬 사건이 약 5%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나머지 95%는 군 범죄가 아닌 일반 범죄로, 군 특수성을 감안해 설치한 군사법원에서 다툴 필요가 없다는 의문이었다.

피해자의 '공정한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군사법원 구조 자체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2020년 6월 8일 국방부장관에 제출한 '군사법원법' 관련 의견서에서 "현재 군사법원 제도는 군 지휘관이 수사에서 재판까지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며 "군사법원 필요성으로 거론된 군 지휘권 확립과는 정반대의 결론을 야기하는 상황으로 군검찰과 군사법원의 장소적 인접성, 인적교류는 군사재판 공정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짚었다.

국방부도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지난해 5월 고등군사법원을 폐지하고 서울고등법원으로 이관하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기도 했다. 군사법원장을 민간 판사로 임명하겠다는 내용도 담았다. 그러나 방점은 여전히 '군 독립성'에 찍혀 있다. 주기적으로 군사재판을 모니터링하는 전문가들은 소극적 대안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군사법원 시스템의 본질적 개선을 위해선 평시 군사법원 제도 자체가 폐지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아무리 법관 자격이 있다 해도, 군 판사는 기본적으로 군 조직 특성상 독립성이 의심될 수밖에 없는 위치다"라며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명시한 헌법 27조 1항에 위배될 소지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은 '현실'을 강조했다. 실제로 다수의 피해자들이 조직 중심적인 군사법원 재판을 경험하면서, 대부분 1심에서 사건을 접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항소심뿐 아니라 사건을 처음 다루는 1심 재판에서도 문제점이 발견되는 만큼, 군 특수성이 있는 사건을 제외한 일반 사건들은 모두 민간 법원에 이관하는 게 맞다는 주장이다.

돌림노래를 벗어나기 위하여
 

▲ 경기도 용인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의 모습. (사진은 기사와 무관합니다.) ⓒ 연합뉴스


소극적이나마 국방부가 내놓은 개혁안도 깜깜 무소식이다. 상정만 된 채 제대로 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고등군사법원 민간 이관과 민간 군사법원장 임명 사이에서 여야 의견 차가 좁혀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단 5% 사건에 불과한 '군 재판의 특수성'이 여전히 군사법원 유지 명분으로 거론된다.

국정감사 철만 되면 돌림노래처럼 군사법원 판결의 솜방망이 처벌과 조직 보신주의가 여러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의 입을 타고 나온다.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문제는 구체적인 개선책을 개혁 당사자나, 입법주체나 모두 고민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2년 전인 2019년 국정감사 때도 똑같은 문제가 붕어빵 틀 찍어내듯 제기됐다.

- 군사재판의 공정성 강화, 군판사의 독립성 제고 및 군검찰단의 독립적 수사 강화를 위한 군사법 제도 개선 대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

당시 국회가 군사법원에 지시한 시정조치다. 국방부는 2020년 4월, 국감 처리 보고서에서 이 요구를 그대로 국회에 돌렸다. 추진 계획 보고는 단 2줄. "국회 입법 추진 계속. 군사법 개혁 군사법원법 개정안 법사위 1소위 계류 중"이다. 그렇게 또 제자리인 채로 1년이 흘렀다. 일부 전문가들은 어쩌다 한 번씩 언급되는 문제제기 대신, 군사법원 폐지 등 구조 전체를 바꿀 입법부의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제대로 재판받을 권리'를 위해서다. 활자로만 찍힌 개혁은 종이 조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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