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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에 망토 달고 가짜 영웅행세 한 남자의 비참한 최후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픽사 최초 인간 주인공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

등록|2021.05.10 10:27 수정|2021.05.10 10:29
<어벤져스 : 엔드게임>에서는 힘을 모아 타노스를 무찌른 후 각 히어로들이 다음 삶을 선택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앤트맨 스캇 랭(폴 러드 분)과 호크아이 클린트 바튼(제레미 레너 분)은 사랑하는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블랙펜서 티찰라(고 채드윅 보스만 분)는 와칸다 왕국으로 돌아갔다. 학생신분인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톰 홀랜드 분)는 당연히 절친 네드(제이콥 배덜런 분)가 기다리는 학교로 갔다.

뜻밖의 선택으로 관객들을 놀라게 한 캐릭터는 역시 어벤져스의 리더인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 분)였다. 스티브는 새로 짜여진 어벤져스의 리더를 계속하게 될 거라는 관객들과 동료들의 예상을 깨고 그가 냉동인간이 되기 전 과거로의 여행을 선택했다. 끝내 지키지 못했던 직속상관 페기 카터(헤일리 앳웰 분)와의 데이트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상상이지만 아마도 캡틴 아메리카는 과거에서도 평범한 일반인의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캡틴 아메리카는 과거의 삶에서도 끊임없이 마주하게 될 악인들을 그냥 지나칠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추측하건데 캡틴 아메리카는 과거로 돌아간 후에도 여전히 히어로의 삶을 살았을 확률이 높다. 픽사의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에 등장하는 히어로들이 평범한 삶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 <인크레더블>은 픽사에서 처음으로 인간을 주인공으로 한 장편 애니메이션이었다. ⓒ 브에나비스타코리아


최초로 인간이 주인공이었던 픽사의 장편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는 루카스 필름의 컴퓨터 및 애니메이션 부문 부서로 시작해 고 스티브 잡스가 인수하면서 지금과 같은 이름이 붙었다(2006년 다시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 주로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오던 픽사는 1991년 디즈니와 계약을 하고 4년의 준비 끝에 세계 최초의 장편 CG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선보였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의 전설'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픽사는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벅스 라이프>, <토이 스토리2>,<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를 차례로 히트시켰다. 특히 <니모를 찾아서>는 세계적으로 9억3600만이라는 놀라운 흥행성적을 올리며 픽사 애니메이션의 위상을 드높였다. 그런데 <토이 스토리>부터 <니모를 찾아서>까지 픽사가 발표한 5편의 장편 애니메이션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장난감, 곤충, 괴물, 물고기 등 모두 사람이 아닌 것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사실 만화에는 동물이나 미생물, 상상 속 존재 등이 등장해야 더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픽사 애니에서는 사람이 지나치게 저평가(?)된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이에 TV 시리즈 <심슨가족>과 <아이언 자이언트>를 연출했던 브래드 버드 감독은 지난 2004년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주인공인 최초의 픽사 장편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을 선보였다.

처음 <인크레더블>이 공개될 때만 해도 '실사영화로 만들 수 있는 이야기를 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을까?'라는 궁금증에 휩싸인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의 이야기에 만화적 상상력이 더해진 <인크레더블>은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6억3100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인크레더블>은 흥행은 물론 작품성도 인정 받아 아카데미 시상식과 새턴 어워즈, 뉴욕 비평가 협회상에서 최우수 애니메이션상을 휩쓸었다.

<인크레더블>의 성공 이후 픽사의 작품세계는 더욱 넓어졌다. 차가 주인공인 <카> 시리즈를 비롯해 지구에 버려진 청소 로보트를 주인공으로 한 <월-E>, 심지어 2015년에는 인간의 감정을 캐릭터로 재탄생시킨 <인사이드 아웃>까지 제작했다. 사실 픽사 애니메이션은 다른 나라에 비해 국내에서는 다소 홀대 받는 경향이 있었지만 <인사이드 아웃>은 국내에서도 490만명을 동원하며 많은 관객들을 감동시켰다.

픽사는  2016년 <니모를 찾아서>의 스핀오프인 <도리를 찾아서>가 세계적으로 10억 달러, 2018년엔 <인크레더블2>가 12억4000달러, 2019년엔 <토이 스토리4>가 10억5000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렸다. 픽사는 22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온워드:단 하루의 기적>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흥행 참패했지만 작년 12월 디즈니+ 채널을 통해 공개한 <소울>이 골든글러브와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휩쓸며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영웅은 영웅의 일을 할 때 가장 빛난다
 

▲ <인크레더블>의 가족들은 별다른 계기 없이 초능력을 타고난 능력자들이다. ⓒ 브에나비스타코리아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대부분의 영화들은 평범했던 주인공이 슈퍼히어로가 되는 과정을 먼저 보여준다. <스파이더맨>에서는 피터 파커가 거미에게 물리는 장면이 나오고 <아이언맨>에서는 거만한 재벌 토니 스타크가 테러집단에 납치돼 탈출을 위한 수트를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인크레더블>에서는 그런 장면이 없다. 미스터 인크레더블과 엘라스티걸,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바이올렛과 대쉬, 잭잭은 등장할 때부터 이미 초능력자였다.

대신 <인크레더블>에서는 일반인들은 경험하지 못한 히어로들의 남모를 고충에 집중한다. 미스터 인크레더블을 비롯한 히어로들은 투신자살하는 사람을 살리고 다리가 끊어진 기차를 세워 사람들을 구하고도 집단 소송에 시달린다. 결국 정부에서는 히어로들의 활동을 강제로 중단시키고 그들을 사회로 편입시킨다. 그렇게 세상을 구하던 최강의 슈퍼히어로 미스터 인크레더블은 일상에 찌든 보험회사 직원이 된다.

하지만 정의감에 불타는 미스터 인크레더블은 아내 엘라스티걸을 속이고 친구 프로존과 함께 남몰래 영웅 활동을 계속 하다가 그를 쫓던 신드롬에게 발견된다. 미스터 인크레더블은 다시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신드롬의 비서 미라지의 말에 속아 거대 로봇과 싸우고 결국 신드롬에게 납치되는 신세가 된다. 옛친구 에드나를 통해 남편의 영웅 외도(?)를 알게 된 엘라스티걸은 자식들과 함께 남편을 찾으러 신드롬이 있는 곳으로 떠난다.

평소 봉인하라고 강조하던 바이올렛과 대쉬에게 위기의 순간에는 초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라고 격려한 엘라스티걸은 남편을 구해내고 조작된 영웅행세를 하려는 신드롬의 계략을 막아낸다. 신드롬은 최후의 수단으로 집에 있던 막내 잭잭을 납치하려 하지만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초능력에 각성한 잭잭에 의해 험한 꼴을 당한다. 그리고 신드롬은 유니폼에 망토를 달았던 어리석음으로 인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인크레더블>을 연출한 브래드 버드 감독은 2007년 <라따뚜이>로 또 한 번 아카메미와 골든글러브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고 첫 실사영화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도 크게 히트시켰다. 브래드 버드 감독은 두 번째 실사영화 <투모로우랜드>가 흥행과 평단에서 모두 참패를 당하며 슬럼프에 빠지는 듯했지만 2018년 <인크레더블2>를 통해 픽사 역사상 최고 흥행 기록(월드와이드 12억4000만 달러)을 세우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에드나의 농담엔 작품의 복선이 깔려 있다
 

▲ 에드나 모드는 어울리는 성우를 찾지 못해 브래드 버드 감독이 직접 목소리 연기를 했다. ⓒ 브에나비스타코리아


<인크레더블>의 주요 스토리는 미스터 인크레더블의 식구들과 빌런 신드롬의 대결이지만 감초 역할을 하는 조연들이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미스터 인크레더블의 절친으로 나오는 프로존은 수분으로 얼음을 만드는 초능력을 가진 히어로다. <엑스맨>의 아이스맨이나 <겨울왕국>의 엘사와 비슷한 능력이지만 건조한 상태에서 얼음을 창조하는 능력은 없다. 프로존의 목소리 연기는 실드의 퓨리 국장 사무엘 L. 잭슨이 맡았다.

비록 다른 히어로들처럼 특별한 초능력을 갖진 못했지만 <인크레더블>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감을 발휘하는 캐릭터는 바로 히어로 의상 디자이너 에드나 모드다. 상당히 까칠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미스터 인크레더블의 부탁은 발벗고 도와준다. "새 옷은 못 만들어. 나는 지금 아주 바쁘거든. 너무 조르지마. 하지만 만들어 줄게"라는 식이다. 미스터 인크레더블 가족과는 아주 오랜 인연이 있는 모양이다.

미스터 인크레더블이나 엘라스티걸과 대화할 때는 가벼운 농담처럼 지나가지만 사실 에드나의 대사들에는 많은 복선이 깔려 있다. 실제로 에드나가 '혹시나 몰라서' 넣었다는 쓸데없어 보이는 의상 속 기능들은 신드롬과 싸우며 매우 요긴하게 쓰인다. 특히 에드나는 망토로 인해 많은 동료들이 희생돼 자신이 디자인한 옷에 절대로 망토를 달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는데 이는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한 번 교훈처럼 등장한다.

에드나의 캐릭터는 아카데미 의상상을 8번이나 수상한 전설적인 디자이너 고 이디스 헤드를 모티브로 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로마의 휴일> 오드리 햅번 의상이 그의 작품이다). 물론 브래드 버드 감독은 이를 부정했지만 머리 스타일이나 작명 등을 보면 이디스 헤드가 자동으로 연상된다. 에드나의 독특한 목소리 연기는 어울리는 목소리를 찾지 못해 캐스팅에 난항을 겪다가 결국 브래드 버드 감독 본인이 직접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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