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 폭력적이지만, 젊은 관객 매료시킨 의외의 장면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유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
검증되지 않은 신인과 아이돌의 캐스팅, 주인공의 남편 찾기라는 뻔한 멜로 라인의 불리함을 가지고도 tvN의 <응답하라> 시리즈는 시즌이 거듭될수록 큰 사랑을 받았다. 실제로 <응답하라 1997>에서 최고 5.1%였던 시청률은 <응답하라 1994>에서 10.4%, <응답하라 1988>에서 18.8%로 점점 상승했다(닐슨코리아 기준).
<응답하라> 시리즈를 아우르는 핵심 포인트는 바로 '공감'이었다. 시대 배경이 된 시절의 감성과 정서, 그리고 작은 소품들까지 철저히 재현한 제작진의 노력은 그 시대를 살아온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더불어 주인공들의 유쾌하면서도 달달한 러브라인은 그 시절을 잘 모르는 젊은 시청자들에게도 큰 호응을 이끌었다.
사실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만드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비슷한 또래의 공감을 얻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만든 작품이 더욱 사랑 받기 위해서는 그 시절을 겪어보지 않았던 젊은 대중들의 공감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1978년 서슬퍼런 유신정권 시절의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만들어 졌음에도 2004년의 젊은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유하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처럼 말이다.
10년 공백 깨고 돌아온 유하 감독
세종대학교에서 영문학을, 동국대 대학원에서 영화학을 공부한 유하 감독은 문학과 영화 두 분야를 공부하다가 1988년 시인으로 등단해 활동했다. 그러던 1993년 유하 감독은 자신의 시집 제목이기도 한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이하 <압구정동>)>를 통해 장편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압구정동>은 신인 엄정화를 파격적으로 주인공에 캐스팅하고 록밴드 넥스트가 음악을 맡으며 화제가 됐지만 흥행에는 크게 실패했다.
데뷔작에서 쓴 맛을 본 유하 감독은 영화 감독으로서 10년 가까이 공백을 가지며 조용히 잊히는 듯했지만 2002년 스타로 성장한 엄정화를 다시 캐스팅해 두 번째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선보였다. 결혼과 동거에 대한 도발적인 시선이 돋보였던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서울에서만 42만 관객을 모았고 가수 이미지가 강했던 엄정화의 파격적인 변신이 화제가 되면서 '영화 감독 유하'를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첫 번째 연출작부터 두 번째 연출작까지 10년의 공백기를 가졌던 유하 감독은 2004년 1월 곧바로 세 번째 작품을 선보였다. 유신정권 시절의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권상우 주연의 <말죽거리 잔혹사>였다. <동갑내기 과외하기>로 스타덤에 오른 권상우를 대세로 만든 <말죽거리 잔혹사>는 전국 310만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성공했고 각본을 쓴 유하 감독은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을 수상했다.
<말죽거리 잔혹사>를 기점으로 유하 감독은 충무로에서 꾸준히 신작을 선보이는 부지런한 감독이 됐다. 2006년에는 그동안 미화됐던 폭력 조직의 생리를 제대로 표현한 <비열한 거리>로 200만 관객을 동원했고 2008년에는 <쌍화점>으로 377만 관객을 모으며 <말죽거리 잔혹사>의 기록을 경신했다. 2012년 늑대개를 소재로 한 <하울링>이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가까스로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며 체면을 세웠다.
2015년에는 김래원과 이민호, 설현이 출연한 <강남1970>을 선보였지만 연기에 물이 오른 김래원과 한류스타 이민호를 내세운 것 치고는 썩 만족스러운 흥행성적(전국 220만)을 올리진 못했다. <강남 1970>이후 약 5년의 공백이 있었던 유하 감독은 서인국, 이수혁 주연의 범죄오락영화 <파이프라인> 개봉을 앞두고 있다.
화려함 포기한 <말죽거리 잔혹사>의 사실적인 액션
<말죽거리 잔혹사>의 시대 배경은 1978년으로 영화는 196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시절을 잘 모르는 젊은 관객들을 이해시키는 게 급선무였다. 교문 앞에서 경례를 하는 학생들이나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교사의 뺨을 때리는 교장 선생님 등은 그 시대를 보여주려는 유하 감독의 배려가 돋보인 장면들이었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대사도 매우 거칠고 폭력적인 장면도 많아 모방 가능성이 꽤 높은 영화다(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은 것이 신기할 정도다). 하지만 현수(권상우 분)와 은주(한가인 분)의 멜로 라인은 여느 청소년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상당히 풋풋하다.
70년대 후반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과 현수-은주의 러브스토리도 재미있지만 <말죽거리 잔혹사>의 백미는 역시 사실적인 액션이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는 총 3번의 중요한 싸움 장면이 등장한다. 은주를 사이에 두고 갈등하는 현수와 우식(이정진 분)의 복도대결은 선생님의 난입으로 조기 마감된다. 그리고 우식이 햄버거(박효준 분)에게 송곳테러를 당한 후 이어지는 선도부 종훈(이종혁 분)과의 대결은 우식의 부상으로 싱겁게 끝난다.
우식의 자퇴를 계기로 현수는 본격적으로 몸을 단련하고 치타(백봉기 분)의 우유투척 사건을 계기로 종훈과 대결을 벌인다. 이소룡의 쌍절곤을 든 현수는 일당백의 실력으로 종훈파의 패거리들을 일망타진한다. 얌전하던 현수가 일진들을 혼자 물리치는 장면이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아마 현수는 어린 시절부터 태권도 사범인 아버지에게 수련을 받아 격투 감각이 남다르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이소룡을 흠모하던 소년이 친구를 학교에서 쫓아낸 선도부장을 물리친다는 것이 <말죽거리 잔혹사>의 주요 스토리지만 정작 주요 결투장면에서 보여지는 싸움들은 영화 속 멋진 액션들과는 거리가 멀다. 실제 학생들의 싸움을 리얼하게 표현해낸 연출에 중점을 뒀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훈파 일당을 모두 물리친 현수는 쌍절곤으로 복도 창문 2개를 깨고 운동이 부족한 대한민국 학교의 족구 배급에 힘 쓰자는 명대사를 날리며 학교를 떠난다.
고등학교 선도부를 연기한 유부남 이종혁
<말죽거리 잔혹사>에는 인상적인 조연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한다. 개성파 배우 김인권은 1년 유급한 불량학생 찍새로 출연하고 안내상은 교장에게 뺨을 맞는 담임선생님으로 등장한다. 짧은 출연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했던 '떡볶이 아줌마' 김부선의 존재감도 대단했다. 마지막 옥상 결투 장면에서 현수를 창틀로 내리치는 야생마 패거리 역할의 배우는 앳된 시절의 조진웅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조연은 선도부장이자 영화의 최종보스(?) 차종훈을 연기한 이종혁이었다. 선도부장인 자신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우식을 못마땅해 하면서도 정작 우식에게 함부로 덤비지 못하던 종훈은 우식이 부상을 당한 틈을 타 대결을 신청하는 비열한 캐릭터다. 이종혁은 당시 사실상 신인에 가까운 배우였음에도 악역 연기를 인상적으로 소화했다.
1999년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유해진이 이끄는 용가리파로 출연했던 이종혁은 <말죽거리 잔혹사>를 통해 배우로 자리 잡은 후 영화와 드라마, 뮤지컬을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신사의 품격>에서 보여준 귀여운 바람둥이 캐릭터는 이종혁의 날카로운 이미지를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아우르는 핵심 포인트는 바로 '공감'이었다. 시대 배경이 된 시절의 감성과 정서, 그리고 작은 소품들까지 철저히 재현한 제작진의 노력은 그 시대를 살아온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더불어 주인공들의 유쾌하면서도 달달한 러브라인은 그 시절을 잘 모르는 젊은 시청자들에게도 큰 호응을 이끌었다.
▲ <말죽거리 잔혹사>는 70년대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로 2000년대 300만 관객을 동원했다. ⓒ CJ 엔터테인먼트
10년 공백 깨고 돌아온 유하 감독
세종대학교에서 영문학을, 동국대 대학원에서 영화학을 공부한 유하 감독은 문학과 영화 두 분야를 공부하다가 1988년 시인으로 등단해 활동했다. 그러던 1993년 유하 감독은 자신의 시집 제목이기도 한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이하 <압구정동>)>를 통해 장편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압구정동>은 신인 엄정화를 파격적으로 주인공에 캐스팅하고 록밴드 넥스트가 음악을 맡으며 화제가 됐지만 흥행에는 크게 실패했다.
데뷔작에서 쓴 맛을 본 유하 감독은 영화 감독으로서 10년 가까이 공백을 가지며 조용히 잊히는 듯했지만 2002년 스타로 성장한 엄정화를 다시 캐스팅해 두 번째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선보였다. 결혼과 동거에 대한 도발적인 시선이 돋보였던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서울에서만 42만 관객을 모았고 가수 이미지가 강했던 엄정화의 파격적인 변신이 화제가 되면서 '영화 감독 유하'를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첫 번째 연출작부터 두 번째 연출작까지 10년의 공백기를 가졌던 유하 감독은 2004년 1월 곧바로 세 번째 작품을 선보였다. 유신정권 시절의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권상우 주연의 <말죽거리 잔혹사>였다. <동갑내기 과외하기>로 스타덤에 오른 권상우를 대세로 만든 <말죽거리 잔혹사>는 전국 310만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성공했고 각본을 쓴 유하 감독은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을 수상했다.
<말죽거리 잔혹사>를 기점으로 유하 감독은 충무로에서 꾸준히 신작을 선보이는 부지런한 감독이 됐다. 2006년에는 그동안 미화됐던 폭력 조직의 생리를 제대로 표현한 <비열한 거리>로 200만 관객을 동원했고 2008년에는 <쌍화점>으로 377만 관객을 모으며 <말죽거리 잔혹사>의 기록을 경신했다. 2012년 늑대개를 소재로 한 <하울링>이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가까스로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며 체면을 세웠다.
2015년에는 김래원과 이민호, 설현이 출연한 <강남1970>을 선보였지만 연기에 물이 오른 김래원과 한류스타 이민호를 내세운 것 치고는 썩 만족스러운 흥행성적(전국 220만)을 올리진 못했다. <강남 1970>이후 약 5년의 공백이 있었던 유하 감독은 서인국, 이수혁 주연의 범죄오락영화 <파이프라인> 개봉을 앞두고 있다.
화려함 포기한 <말죽거리 잔혹사>의 사실적인 액션
▲ 권상우는 <말죽거리 잔혹사>를 통해 순수한 소년과 강렬한 액션 연기를 오가며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 CJ 엔터테인먼트
<말죽거리 잔혹사>의 시대 배경은 1978년으로 영화는 196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시절을 잘 모르는 젊은 관객들을 이해시키는 게 급선무였다. 교문 앞에서 경례를 하는 학생들이나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교사의 뺨을 때리는 교장 선생님 등은 그 시대를 보여주려는 유하 감독의 배려가 돋보인 장면들이었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대사도 매우 거칠고 폭력적인 장면도 많아 모방 가능성이 꽤 높은 영화다(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은 것이 신기할 정도다). 하지만 현수(권상우 분)와 은주(한가인 분)의 멜로 라인은 여느 청소년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상당히 풋풋하다.
70년대 후반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과 현수-은주의 러브스토리도 재미있지만 <말죽거리 잔혹사>의 백미는 역시 사실적인 액션이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는 총 3번의 중요한 싸움 장면이 등장한다. 은주를 사이에 두고 갈등하는 현수와 우식(이정진 분)의 복도대결은 선생님의 난입으로 조기 마감된다. 그리고 우식이 햄버거(박효준 분)에게 송곳테러를 당한 후 이어지는 선도부 종훈(이종혁 분)과의 대결은 우식의 부상으로 싱겁게 끝난다.
우식의 자퇴를 계기로 현수는 본격적으로 몸을 단련하고 치타(백봉기 분)의 우유투척 사건을 계기로 종훈과 대결을 벌인다. 이소룡의 쌍절곤을 든 현수는 일당백의 실력으로 종훈파의 패거리들을 일망타진한다. 얌전하던 현수가 일진들을 혼자 물리치는 장면이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아마 현수는 어린 시절부터 태권도 사범인 아버지에게 수련을 받아 격투 감각이 남다르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이소룡을 흠모하던 소년이 친구를 학교에서 쫓아낸 선도부장을 물리친다는 것이 <말죽거리 잔혹사>의 주요 스토리지만 정작 주요 결투장면에서 보여지는 싸움들은 영화 속 멋진 액션들과는 거리가 멀다. 실제 학생들의 싸움을 리얼하게 표현해낸 연출에 중점을 뒀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훈파 일당을 모두 물리친 현수는 쌍절곤으로 복도 창문 2개를 깨고 운동이 부족한 대한민국 학교의 족구 배급에 힘 쓰자는 명대사를 날리며 학교를 떠난다.
고등학교 선도부를 연기한 유부남 이종혁
▲ <말죽거리 잔혹사>에는 데뷔 초기의 조진웅(왼쪽)과 이종혁이 주인공 권상우와 갈등하는 역할로 출연한다. ⓒ CJ 엔터테인먼트
<말죽거리 잔혹사>에는 인상적인 조연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한다. 개성파 배우 김인권은 1년 유급한 불량학생 찍새로 출연하고 안내상은 교장에게 뺨을 맞는 담임선생님으로 등장한다. 짧은 출연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했던 '떡볶이 아줌마' 김부선의 존재감도 대단했다. 마지막 옥상 결투 장면에서 현수를 창틀로 내리치는 야생마 패거리 역할의 배우는 앳된 시절의 조진웅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조연은 선도부장이자 영화의 최종보스(?) 차종훈을 연기한 이종혁이었다. 선도부장인 자신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우식을 못마땅해 하면서도 정작 우식에게 함부로 덤비지 못하던 종훈은 우식이 부상을 당한 틈을 타 대결을 신청하는 비열한 캐릭터다. 이종혁은 당시 사실상 신인에 가까운 배우였음에도 악역 연기를 인상적으로 소화했다.
1999년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유해진이 이끄는 용가리파로 출연했던 이종혁은 <말죽거리 잔혹사>를 통해 배우로 자리 잡은 후 영화와 드라마, 뮤지컬을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신사의 품격>에서 보여준 귀여운 바람둥이 캐릭터는 이종혁의 날카로운 이미지를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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