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 걸리면 내 탓 말고 무슨 일 했는지 떠올려라"
[암도 산재다 ④]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 "포스코 역학조사, 퇴직자·하청 포함해야"
세계보건기구는 매년 신규발생 암 환자의 4% 정도를 직업성 암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를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직업성 암 환자 규모는 1만 명 수준에 육박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러나 국내 직업성 암 산재 승인 건수는 2016년 113건, 2017년 178건, 2018년 205건 등에 불과하다. <오마이뉴스>는 '직업성·환경성암 환자 찾기 119 운동'의 도움을 받아 '암도 산재다'라는 4편의 기사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편집자말]
▲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 ⓒ 이희훈
"암에 걸리면, 내탓 하지 말고 내 일을 떠올려라. 거기에 암 발병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보건학 박사)은 두 시간여의 인터뷰 내내 "암은 직업 탓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병을 얻고도 유전이나 생활 습관을 돌아보는 데 그럴 필요가 없다"라고 단언했다. 동시에 그는 반성했다.
이 소장이 처음 '유해·발암물질'에 관심을 갖은 건 1990년이다. 당시 포스코 노조는 사내 유해물질·발암물질 배출에 문제를 제기했고, 회사는 산업위생관리 업무를 담당한 그를 내세워 노조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몰아가려 했다. 그러자 이 소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회사가 사실을 왜곡하려 한다며 반발했다. 이후 그는 해당 업무에서 배제됐다.
1991년 회사를 그만둔 이 소장은 일터에서 발생하는 노동자들의 사고와 죽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쭉 해왔고, 2017년부터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현재 연구소 대부분의 역량을 '직업성·환경성암찾기 119운동'에 집중하고 있다"는 이 소장은 "2018년 암 환자 중에서 산재를 인정받은 사람은 고작 205명뿐이다. 적어도 매년 1000여 명까지는 찾아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래는 이 소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암 환자에게 '무슨 일 하세요'부터 물어야"
▲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 ⓒ 이희훈
- 왜 직업성·환경성암찾기 119 운동을 시작했나.
"한국을 대표하는 몇몇 병원들 가운데 암 진단을 내리며 환자의 직업을 묻는 의사가 몇 명이나 있을 것 같나. 내 경험으로는 거의 없다. 나도 비강암 환자였다. 총 4번의 수술을 받았는데, 아무도 내 직업을 묻지 않더라. 선진국에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하는 첫 마디가 '무슨 일 하세요'다. 하지만 우리는 질병과 직업의 관련성을 낮게 본다.
수치만 봐도 그렇다. 고용노동부가 인정한 직업성 암 환자의 비율은 국내에서 발생하는 전체 암 환자의 0.08%에 불과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전체 암 환자 가운데 4%가량이 직업 요인에 의해 생긴다고 분석하는 것에 비하면 너무 미미한 수치다. 내가 직업성 암 환자 찾기를 하는 이유다."
- 올해 포스코 제철소에서 직업성 암 환자가 잇따라 나왔다. 결국 정부가 원인 규명을 위해 역학조사를 시작한다고 했는데.
"맞다. 고용노동부 산하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올해부터 2023년까지 3년간 포스코와 포스코 협력업체를 포함한 철강제조업을 대상으로 직업성 암 집단 역학조사를 한다. 그런데 나는 현 조사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조사 기간을 3년으로 했는데, 맞지 않다고 본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조사가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높다. 늦어도 2년 안에 조사를 마쳐야 한다.
무엇보다 직업성 암 환자라는 피해자가 명확하게 있는 조사이니만큼 현장 조사를 할 때 노동자 대표 등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야 조사 결과의 신뢰도가 높아진다. 조사의 대상도 넓혀야 한다. 현직·정규직 위주가 아닌 퇴직자·하청업체 노동자들도 조사대상에 포함해야 한다. 현직·정규직만 조사한다면, 이번 조사는 100% 실패한다."
- 현직·정규직만 조사한다면, 100% 실패한다?
"현직을 중심으로 조사하면 결과는 뻔하다. 포스코 제철소 내부에 암유발 요인이 적다는 식으로 문제없다는 결과가 나올 거다. 건강 노동자 효과(Healthy Worker Effect)라는 게 있다. 심각하게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은 일터에서 배제되거나 일찍 퇴직하는 경우가 많다.
포스코 제철소도 그렇다. 직업성 암에 걸린 사람들? 그 사람들은 아파서 진작 퇴직했을 거다. 사망했을 수도 있고. 현직에는 건강한 사람들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또 하청업체 직원들도 반드시 조사해야 한다. 석면 마시며 일하고 유해·발암 물질에 노출되며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정규직일까, 하청업체 직원들일까. 뻔한 답 아닌가. 이번 조사 대상에 반드시 퇴직자·하청업체 직원을 포함해야 한다."
"암 수술 후 2~3년 지나야, '암도 산재다' 눈에 들어올 것"
▲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 ⓒ 이희훈
- 폐암으로 산업재해를 신청한 사람들을 만나보니 회사는 개인 탓을 한다더라. '담배 피워서 그렇다'고.
"직업성 암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면서 생활습관이 문제라고 몰고 가는 거, 그게 우리 현실이다. 한 번 생각해보자. 설사 담배를 피운다고 해도 석면 등 장시간 유해·발암물질을 흡입한 작업환경에 있다 보면, 흡연보다 석면이 문제가 될 수 있지 않겠나. 주 5일 이상 하루 평균 8시간 일하는 공간에서 유해·발암물질이 발생하는데, 이게 괜찮다? 말이 안되는 소리다. 노동자의 생활습관을 탓할 게 아니다."
- 노동자가 스스로 직업성 암을 의심하기 쉽지 않은 것 같다.
"맞다. 대부분은 노조를 통해 물어물어 찾아온다. 나도 암 판정을 받아보니 알겠더라. 암 수술하고 항암 치료하는 사람들은 암 진단 후 1년 동안 정신이 없다. '내가 왜 암에 걸렸지, 직업성 암 아닌가'라고 생각할 시간이 없다. 치료가 가능한지, 치료비는 얼마인지, 언제까지 살 수 있는지... 자기 몸 생각하기 바쁘다. 당연한 거다. 암 진단 후 2~3년 지나 안정기에 들어서야 하나씩 되짚어볼 여유가 생긴다. 그제야 '암도 산재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올 거다.
열악한 노동현장에 있는 비정규직이나 일용직 노동자들은 직업성 암에 대한 인식이 더 낮을 수밖에 없다. 이들은 보통 직장을 많이 옮겨 다니고 일하는 기간도 짧아 어느 사업장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직업성 암을 조기에 발견할 가능성도 낮다. 이런 사각지대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현재 고용노동부에서 건강관리수첩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44조 등에 근거해 유해·발암물질을 '제조하거나 취급'하는 사람이면, 건강관리수첩을 신청해 발급받아 주기적으로 건강체크가 가능하다. 직업성 암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와 보상을 해 주고, 산재보험 처리를 지원하는 괜찮은 제도다.
다만, 발급대상을 유해·발암물질을 '제조하거나 취급'에 그칠 게 아니라 '노출' 되는 사람으로 넓힐 필요가 있다. 이들까지 발급대상에 포함하는 개선된 정책이 필요하다."
- 평소 작업환경측정 방식에 문제제기 해왔는데.
"현재의 작업환경측정 방식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얼마 전 포스코가 고용노동부에 보고한 작업환경측정 결과를 봤다. 총 1만 2000여 건으로 7년 치 자료였는데, 이중 직업병과 관련된 화학 물질의 경우 노출 기준을 초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직원을 상대로 한 6만 4000여 건의 특수 건강 검진 결과도 화학적 요인으로 직업병 소견이 나온 건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면 지난 3월에 35년간 포스코서 일한 노동자의 폐암이 업무상 질병(산재)으로 인정받은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유해물질에 장기간 노출돼 직업성 암에 걸렸다고 국가가 인정한 건데.
결국 측정 과정·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포스코 작업환경측정기관이 어디일까? 바로 포스코와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부속병원이다. 고용노동부는 2018년도 포스코 특별근로감독 보고서에서는 '측정 결과에 대한 신뢰성이 의심된다'고 밝혔져만 그 뿐이었다. 일단 포스코의 작업환경측정을 외부기관에 맡기는 게 필요하다. 또 가장 열악한 작업장을 찾아가 그곳의 환경을 분석해야 한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려고 작업환경을 살피는 것 아닌가. 상대적으로 쾌적한 곳이 아닌 상대적으로 방치되어 있고 관리가 덜 된 곳을 확인해야 한다."
- 6월 3일 직업성암과 관련 대규모 집단 산재를 신청할 계획이다.
"지금도 신청을 받고 있다. 직업성·환경성 암환자 찾기 119(http://nocancer119.co.kr)를 통해 신청할 수도 있다. 하루아침에 '암은 내 탓이오'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는 어려울 거다. 그래서 더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직업성암과 관련 병원진료 과정 자체를 바꾸는 게 필요하다. 직업성 암이 의심되는 사람이 있으면, 병원이 의무적으로 고용노동부에 직업성 암 관련 신고를 하고, 이후 고용노동부가 직업성 암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노동자가 신고하고, 직업성 암 발병 관계를 증명해서는 안 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