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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같은 길로만 산책하는 아내를 보며

지혜로운 자와 어진 자,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등록|2021.05.18 13:40 수정|2021.05.18 13:40
산책할 때 늘 같은 코스를 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매번 다른 코스를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에 속합니다. 늘 같은 코스면 지겹습니다.

클래식 음악 감상하는 데도 서로 다른 습관의 사람들을 만납니다. 며칠 동안 한 곡만을 파고 듣는 이가 있습니다. 그는 그 곡에 대해 제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정통해집니다. 그러나 저는 아무리 좋은 음악도 몇 번 들으면 싫증이 납니다. 새로운 곡을 듣고 싶어 합니다. 그 바람에 저는 한 곡을 깊이 알진 못하지만 수많은 곡에 대한 잡다한 지식을 자랑합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매일 같은 길을, 같은 시간에 걸었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그를 보고 시간을 맞추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제 아내도 뒷산에 오를 때 늘 같은 길을 돕니다. 아내와 함께 산책하면 저는 너무 심심해서 몸이 근질거립니다. 자꾸 다른 길로 눈길이 갑니다.

매일 같은 길이 물리지 않느냐고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길이 무슨 상관이냐고 합니다. 길을 걷는 동안 자기는 오로지 내면을 향해 명상하기 때문에 바깥의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는 그 말이 통 가슴에 와닿지 않습니다. 바깥과의 교류를 통해서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지 않냐고 항변합니다. 부부의 산책길이 뜬금없이 철학적 논쟁으로 변합니다.

날마다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은 아마도 한 곳을 깊게 파는 성격일 겁니다. 대개는 진지하고 윤리적인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저 같은 사람은 새롭고 넓고 다양한 지식을 찾아다닙니다. 지적 호기심을 못 참습니다. 자유롭고 낭만적입니다.
 

산과 바다지혜로운 자가 좋아하는 물과 어진 자가 좋아하는 산 ⓒ 한승희


헤르만 헤세의 소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는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사람이 삶의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이 그려져 있습니다. 나르치스는 지성적이고 경건한 수도사로 자기 내면을 응시하면서 깨달음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그는 수도원을 떠나지 않습니다. 떠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감성적이고 충동적인 몽상가 골드문트는 방랑을 떠납니다. 그는 세상의 온갖 감각과 경험을 맛보며 그것을 통해 인식에 도달합니다.

논어에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이란 말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살다 보니 이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바닷가 출신인 저는 늘 출렁이고 변화무쌍한 바다를 좋아합니다. 수평선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합니다. 바다에서 배가 들어올 때면 포구에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배에서 쏟아져 선창에 널리는 이름 모를 갖가지 물고기들, 어디엔가 숨어있다가 삽시간에 몰려드는 사람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물결에 일렁이는 뱃머리들, 끊임없이 들락날락하는 통통배들. 모든 것들이 움직이고 수시로 변합니다. 그래서 이 세계에 흥미가 있어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물을 좋아하나 봅니다. 액체 속성의 물은 정형이 없고 다양하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니까요.

그러나 칸트나 아내와 같이 어진 자들은 세계를 향한 호기심보다는 자기 내면의 성찰을 즐깁니다. 본질적인 것, 영원한 것을 사유하는 데에 목을 맵니다. 그러니 언제나 그 자리에 서서 지속적이고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산을 좋아하겠지요.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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