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변화소식 들으며 망명 준비
[[김삼웅의 인물열전] 독립운동의 선구 예관 신규식 평전 / 20회] 공화주의 혁명에 나선 손문은 그에게서 롤모델이었다
▲ 중국의 아버지 손문과 대한민국의 아버지 신규식 ⓒ 위키피디아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변변한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500년 사직을 빼앗긴 고종과 순종 그리고 왕족들에게 진저리를 쳤다. 중신들의 매국행위는 말할 나위도 없었다.
당일 오후에는 직접 통감부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총리 이완용을 통해 3일간 서울 일원에 음주가무 금지령을 내렸다. 이어 일본에서 거행된 이토의 장례식에 민병석ㆍ조중응 등 대한제국 대신들로 제2차 '조문 사죄단'을 보내면서 유족에게 은사금 10만 원(현재 시가로 약 20억 원)을 전달케 했다. 그리고 정부 주최로 장충단에서 국장급 수준의 이토 추도식을 거행하였다. 이 자리에서 전국 유림을 대표한다는 무리들이 일왕에게 사죄를 청하는 '사죄사'를 읊조렸다.
일찍이 을사오적 처단에 나섰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던 신규식은 그때 이완용 등을 죽이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개탄하면서 이제 이씨 왕조에 대해 모든 것을 접었다. 목숨을 끊고자 했으나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새로 할 일이 있어서일거라 자위하며 그 길을 모색하였다. 나철과 자주 만나서 대종교의 중흥방안을 논의하고, 국내에서는 총독부의 감시로 활동이 어려워 망명의 길을 찾기로 하였다.
국치를 전후하여 신채호를 비롯 지인과 동지들이 속속 해외 망명에 나섰다. 대부분이 만주나 러시아령 해삼위였다. 그쪽에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고, 의병ㆍ독립운동을 전개해왔기 때문이다.
▲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총으로 쏘기 직전 모습(사진 숫자 5가 이토 히로부미)과 안중근 의사가 사용한 권총(오른쪽 사진 맨 왼쪽)입니다. ⓒ 박현국
국적 이토의 죽음에는 온갖 호들갑을 떨던 순종이나 정부 대신들은 막상 국치에는 이렇다할 저항이 없었다. 지배층은 일제에 빌붙어 새 주인이 먹다남은 뼈다귀라도 넘보기에 여념이 없고, 우국지사들은 새 길을 찾느라 숨죽이고 있었다.
이 틈을 노리고 일제는 조선귀족령을 반포하여 구한국의 고관 72명에게 작위를 주고 고종과 왕세자를 비롯 왕족에게는 세비를 주어 달랬다.
그리고 1911년 1월 신민회사건을 날조하여 민족주의자 600여 명을 검거하는 등 무단통치를 자행, 조선인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가깝던 동지들도 검거되었다. 그동안 신규식이 간여했던 학교뿐만 아니라 민족주의 계열의 학회ㆍ학교가 대부분 폐간ㆍ폐교되기에 이르렀다. 어디에도 비비고 설 곳이 없었다.
그는 중국에서 공화혁명을 이끌고 있는 손문(孫文, 1866~1925)에 많은 관심을 쏟았다. 젊은 시절 하와이에서 공부하고 다시 홍콩에서 서양 의학을 공부한 뒤 오문(澳門), 광주(廣州) 등지에서 의술 활동을 했다. 광서 20년(1894) 이홍장에게 개혁과 자강(自强)을 주장하는 글을 보냈으나 거절당했다. 같은 해 하와이에서 혁명적 비밀결사인 홍중회(興中會)를 결성하고 이듬해 홍콩에서도 흥중회를 성립시켜 광주에서 기의하려다 탄로나 일본으로 망명했다.
이후 서구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그들의 정치ㆍ경제를 연구하고 혁명활동을 위한 자금을 확보했다. 광서 31년(1905) 일본에서 중국혁명동맹회를 결성하고 총리에 선출되었다. 이때 『민보(民報)』를 발행하여 동맹회의 삼민주의(三民主義:민족ㆍ민권 민생) 강령을 널리 홍보했다. 신규식의 망명 이듬해인 1911년 신해혁명을 주도하고 중화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으며, 1912년 1월 1일 임시 대총통에 취임했다.
신규식은 만민공동회를 통해 민족ㆍ민권ㆍ민생의 주요성을 터득하고, 『황성신문』과 신채호가 주필이던 『대한매일신보』의 지면에서 새로운 국제질서의 흐름과 시대정신을 취득하였다.
거대한 중국대륙, 잠자던 중국인민을 일깨워 공화주의 혁명에 나선 손문은 그에게서 롤 모델이었다. 그리고 만주나 해삼위가 아닌 상하이를 택한 것은 공화혁명의 발상지일 뿐만 아니라 향후 독립운동의 거점을 마련하는 데는 국제도시인 상하이여야 한다는 판단을 하기에 이르렀다.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독립운동의 선구 예관 신규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