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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모든 걸 걸고 막겠다"던 법, 다시 발의된다

[이슈] 국가보안법 폐지론, 17년 만에 재점화... 민형배·강은미 발의 추진

등록|2021.05.21 19:30 수정|2021.05.21 19:30

▲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9월 4일 청와대에서 문화방송의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여러 정치·경제 현안에 대해 입장을 말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국가보안법 폐지론'을 피력했다. ⓒ 연합뉴스


2004년 9월 5일 방송된 MBC '시사매거진 2580'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말했다.

"국가보안법이 우리 역사에서 어떤 기능을 했는가 보면, 국가를 위태롭게 한 사람들을 처벌한 것이 아니라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데 주로 압도적으로 많이 쓰여 왔다. 이것은 한국의 부끄러운 역사의 일부분이고 지금은 쓸 수도 없는 독재시대에 있던 낡은 유물이다. 칼집에 넣어서 박물관으로 보내는 것이 좋지 않겠나."

1948년 법 제정 후 처음으로 나온 현직 대통령의 '국보법 폐지론'이었다.

노무현이 쏘아올린 공... 보수진영은 격렬 반대
 

▲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2004년 9월 9일 오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국가보안법을 지켜내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는 당 3역을 비롯해 20여명의 운영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배수진'을 쳤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곧바로 보수진영의 격렬한 반대가 이어졌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2004년 9월 9일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저의 모든 것을 걸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마지막 안전장치인 국보법을 폐지하는 것을 막아내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국보법 폐지는 친북활동의 합법화"라며 "일부 인권침해 사례가 있었다는 점은 유감이지만, 국보법의 순기능마저 없앨 수는 없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진보진영은 '지금이 아니면 언제'라는 기조로 국보법 폐지에 속도를 냈다. 그해 10월 20일 최용규 열린우리당 의원과 동료 국회의원 150명이, 하루 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등 10명이 각각 국보법 폐지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2004년 연말 국회에서 여야는 협상과 결렬, 합의와 파기를 무수히 반복했고,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 2005년 5월 2일 오후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국보법 개폐안을 각각 발의한 여야의원이 제안설명을 한 뒤 나란히 앉아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나라당 장윤석, 민주노동당 노회찬, 열린우리당 최용규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결국 2005년 5월 2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야 최초의 국보법 폐지안 상정이 이뤄졌다. 당시 노회찬 의원은 최연희 법사위원장에게 "(국보법 폐지안이) 법안심사소위에 넘겨진 채 시간만 보내다 9월 정기국회로 넘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위원장이 6월 임시국회 때까지는 처리할 것이라는 의견을 밝혀달라"고 요청했다. 노 의원의 우려는 적중했다.

법사위는 2년이 지난 2007년 8월 8일 법안심사소위에 국보법 폐지안을 상정했다. 하지만 이상민 소위원장은 "이번 입법에서는 결론이 안 난다면 미루도록...(하자)"며 논의를 연기했다. 결국 2008년 5월 29일, 최용규 의원안과 노회찬 의원안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후 국보법 폐지안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 발의했지만... 논의도 못하고 폐기
 

▲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행동에서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10만 국민동의 청원 10만인 돌파 기자회견을 열고 주요정당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당론으로 정하고 폐지안을 통과 시킬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이희훈


열린우리당 152석과 민주노동당 10석, 새천년민주당 9석으로도 역부족이었던 2004년과 더불어민주당만 174석, 민주·진보세력을 모두 더하면 190석에 달하는 2021년은 다를까? 국보법 위반사건 117건 중 81건이 기소였던 2004년과 154건 중 26건만 기소되는 2021년은 다를까?

시민사회계는 다시 한 번 힘을 모으고 있다. 지난 10일부터 국민 동의를 받기 시작한 국보법 폐지 입법 청원은 단 9일만에 10만 명을 채워 법사위로 넘어갔다. 20일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은 "이번 청원이 단기간에 달성된 것은 국보법이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자리잡아서는 안 된다는 국민의 열망이 표출된 것"이라며 "이제는 정부와 국회가 답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이들과 함께 법안을 준비 중이다. 그는 21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문명사회에 이런 야만적인 법이 어디 있겠냐"며 "(국민들도 여기에 공감해) 굉장히 빠른 속도로 폐지 입법 청원 10만 명을 채운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음주 중 발의할 가능성이 높다"며 "공동발의 서명은 많이 받아놨다"고 했다.

같은 당 이규민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보법 개정안을 냈다. 모호한 기준 탓에 UN이 네 차례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폐지를 권고한 국보법 7조 찬양·고무죄를 없애자는 내용이다. 이 조항은 1992년부터 2015년까지 7차례나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이 나왔다. 하지만 2017년과 2019년 법원의 위헌법률심판제청이 잇따르면서 다시 한 번 헌재의 심판대에 놓여 있다.

민형배·강은미는 '완전폐지', 이규민은 '7조 폐지'
 

▲ 10일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국가보안법폐지 10만 국민동의청원 돌입 선포 기자회견’에서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언이 발언하고 있다. 2021.05.10 ⓒ 공동취재사진


정의당은 아예 국보법 폐지를 당론으로 채택했고, 20일 강은미 의원이 21대 국회 들어 처음으로 국보법 폐지안을 발의했다. 이날 오현주 정의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노무현 대통령도 2004년 '국보법을 박물관으로 보내자'고 공언했지만 여러 가지 정치적 이유에 밀려 여태 폐지되지 않고 있다"며 "민주당과 국민의힘도 국보법 폐지에 관한 당론을 확정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국민의힘은 올해 처음으로 광주민주화운동 추모제에 공식참여했다. 광주는 국보법 최대 피해지역이기도 하다"며 "국민의힘이 변화된 시대에 맞게 한 발짝 더 내딛기를 바란다"고 했다. 또 "21대 국회는 올해 2월 여야 합의로 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며 "이어서 국보법 폐지를 여야 합의로 이뤄낸다면 21대 국회의 가장 빛나는 성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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