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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민 사건' 언론 보도, 사이버렉카 비판할 자격 있나

망가진 언론의 의제 설정 기능... '클릭 장사'에만 몰두

등록|2021.05.28 19:11 수정|2021.05.28 19:11

▲ 11일 오후 서울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 승강장 주변에서 한강경찰대가 고 손정민씨 친구의 휴대폰을 찾기 위해 작업을 하고 있다. ⓒ 권우성


- "손정민 사건 범인 누구냐면" 이슈 달려드는 유튜브
- 故손정민 영상 올린 사이버렉카... 월 최대 3000만 원 수익 올려
- "돈 된다"... 이슈만 있으면 물불 안가리는 사이버렉카
- 한강 의대생 사건과 사이버 레커
- 돈 되면 뭔들... 사이버 레커, 손정민 사건 낚아 수천만원씩 벌었다

지난 한 주간 고 손정민씨 사건과 관련해 눈에 띄는 기사 제목들이다. 최초 '한강 대학생 사망' 사건으로 기사화 됐던 해당 사건은 손씨가 지난달(4월) 25일 새벽 실종된 이후 부친의 의혹 제기 등으로 세간에 알려졌다. 닷새 만인 30일 오후 3시 50분쯤 실종 장소 부근에서 숨진 채 발견되면서 일파만파 보도가 급증했고, 한 달이 넘도록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먼저 해당 기사들에서 '유튜브'를 '언론' 혹은 '매체'로, '영상'을 '기사'로 바꿔 보자. 아니, 결정적으로 '사이버렉카' 혹은 '사이버레커'를 '언론의 클릭 장사'로 바꿔 보시라. 고 손정민씨 사건을 다룬 일부 혹은 다수 언론의 도 넘은 보도 행태를 꼬집는 기사 제목이라 해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다.
 
사이버렉카(사이버레커). 교통사고 현장에 잽싸게 달려가는 렉카(Wrecker‧견인차)처럼 온라인 공간에서 이슈가 생길 때마다 재빨리 짜깁기한 영상을 만들어 조회수를 올리는 이슈 유튜버들을 비판하면서 등장한 말이다... 사이버 렉카들은 남들보다 빠르게 영상을 올려야 더 많은 조회 수를 선점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자신이 직접 제작한 콘텐츠가 아닌 이미 나와 있는 자료화면이나 보도를 짜깁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네이버 시사상식 사전

이처럼 사이버렉카는 인터넷에서 각종 사건 사고를 길어다 자극적인 소재와 무비판이고 검증 안 되는 주장을 일삼는 유튜버 및 인플루언서와 네티즌 등을 통칭하는 신조어다. 자극과 선정성을 앞세운 조회 수 장사로 먹고사는 이들은 필수불가결하게 이른바 뇌피셜을 섞고 낚시질을 일삼으며 눈에 띄는 섬네일과 제목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이들 사이버렉카들이 사익을 목적으로 손씨 사건에 띄어들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콘텐츠들로 여론에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최근 경찰이 법적 조치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힌 123페이지 분량의 '한강사건 보고서'란 글을 유포한 이가 대표적이다. 한데, 일견 손씨 사건에 대한 비상식적인 대중의 집착이 과연 일부 사이버렉카들의 활약만이 문제인지는 의문이다.

유튜브 상위 조회수 목록 살펴보니...
 
26일 유튜브 통계분석 사이트 녹스인플루언서(녹스)와 플레이보드를 이용해 손씨 사건과 관련된 영상을 지속적으로 올리고 실시간 방송을 진행한 유튜브 계정 6개를 분석한 결과 이들 채널의 평균 총수익은 1586만~3111만 원으로 추정됐다. 6개 계정의 평균 조회 수는 손씨 사건 영상물을 올리기 전 하루 평균 약 10만 회에서 71만  2000회로 7배 이상 증가했다.
- 5월 26일 <서울신문> '돈 되면 뭔들.. 사이버 레커, 손정민 사건 낚아 수천만원씩 벌었다' 중

<서울신문>은 또 "손씨 사건을 다룬 6개 계정 가운데 구독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채널의 수익 증가율이 두드러졌다"고 꼬집었다. 구독자 수가 적은 채널 중 손씨 사건을 다루면서 일간 수익이 적게는 6배(38만~67만 원→228만~398만 원)에서 많게는 1400배(694~1208원→98만~170만 원) 이상 뛰었다는 것이다. 구독자 수가 적을수록 수익 구간이 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 터.

수익 외에 진짜 문제는 내용일 것이다. 유튜브에서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한 영상일수록 '손정민군, 한강으로 옮기는 추정 영상 발견', '토끼굴 빠져나가기 전 알려지지 않았던 cctv 새로운 분석 공개', '반포대교 손정민 CCTV 확보 대박 스모킹건 확보 대박!'과 같은 낚시성 내용이 도드라졌다. 이들 영상은 놀랍게도 많게는 100만 조회 수를 훌쩍 넘고, 수십만을 기록한 영상들도 수두룩했다. 이들 유튜버들의 영상은 누구와 경쟁했을까.

유튜브에서 지난 한 달간 '손정민'으로 검색되는 조회 수 상위 영상들을 보자. <연합뉴스>의 '목격자 "친구가 갑자기 물건 챙겨…손정민 옆에 다시 누웠다"'(665만 회)가 1위였고, <중앙일보>의'[단독 영상] 손정민씨 실종 당일, CCTV에 찍힌 친구 모습'(357만 회)이 2위, KBS의 '[CCTV 전체영상] 손정민 씨 실종된 새벽 한강 찾은 친구 가족 CCTV'(307만 회)가 3위였다.

이어 KBS, 뉴스1, YTN, MBN, 연합뉴스TV, CBS 등이 뒤를 이었고, 그 다음이 일반 유튜버의 '손정민군, 한강으로 옮기는 추정 영상 발견 / 토끼굴 빠져나가기 전 알려지지 않았던 cctv 새로운 분석 공개'(149만 회), '(핫) 손정민의 장례식에 정동원과 매니저가 등장한 이유??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 범인은 손정민의 가장 친한 친구?? 피해자 가족의 진짜 아픔!!'(144만 회) 등이었다.

언론사들도 손씨의 실명을 공개하면서 유튜버들 못지않게 잇속을 챙겼다고 볼 수 있다. 유튜브 시청자들이 가장 많이 클릭한 기사들은 현장 CCTV 영상을 그대로 공개하거나 손씨 부친 인터뷰를 다룬 언론사들의 영상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의제 설정하는 건 언론

물론, 유튜버들의 활약(?)이 부진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손정민 친구A, 4:20 - 4:32 충격 영상.... 손씨 아버지 폭풍오열'처럼 '손씨'로 검색했을 때 확인되는 상위 조회 수 영상은 일반 유튜버들의 영상이 대다수였다. 검색어 '한강 대학생'의 경우 <연합뉴스>와 뉴스1, YTN이 나란히 1~3위를 차지한 가운데 유튜버들과 언론사의 영상이 조회 수 경쟁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었고.

이번 손씨 관련 사이버렉카 콘텐츠나 게시물을 비판한 매체들의 경우, 고수익 외에도 보도영상을 가져다 쓰는 유튜버들의 행태를 꼬집기도 했다. 저작권을 위반하고 영상을 무단으로 가져다쓰는 건, 물론 불법이다. 비난받아 마땅하다. 손씨 사건뿐 아니라 이들 사이버렉카들이 이른바 '어그로'를 끌고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한 방편으로 보도 영상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향후 더 큰 문제로 비화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손씨 사건의 경우, 애초 방송 및 언론 매체들이 의제설정에 적극적이었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유튜버들이 보도 영상을 사용하는 것과 별개로 사회적 의제를 따라잡는 창구는 언론일 수밖에 없다. 유튜브 상에서야 1인 미디어와 언론사들이 조회 수와 구독자 수를 놓고 실제 경쟁한다. 하지만 그에 앞서 손씨 사건을 공론의 장에 적극적으로 끌고 들어온 것은 포털을 매개로 한 언론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일례로, 최근 사이버렉카들에 대한 비판에 앞장섰던 한 종합경제일간지는 지난 9일부터 오늘(28일)까지 '손정민'씨 이름이 포함된 온라인 기사를 무려 159건이나 쏟아냈다. 이날 이 경제지의 온라인 톱 기사는 '정민씨 父 "친구 유죄 안 바라... 다만 진실 나오길 원할 뿐"' 기사였다.

이 매체에서 '정민씨'로 검색되는 관련 기사 또한 85건에 달했다. 손씨의 실명을 공개하기 전 '한강 대학생' 등으로 작성한 기사까지 포함한다면 이 경제지는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인 걸까. 비단 보도 윤리의 실종이라 부르기엔 이미 우리 언론의 선정성과 클릭 장사는 너무 멀리 와 버린 것 아닐까.

<기자협회보>가 '한강 대학생 사망 보도, 페이지뷰에 매몰된 건 아닐까'라며 해당 사안을 지적한 것이 지난 11일이었다. 이를 전후로 우리 언론들은 대놓고 '실명 보도'에 돌입, 익명 보도와 다를 것 없는 기사 양을 자랑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앞서 소개했듯 '손정민'이 포함된 기사만 20일간 159건을 쏟아낸 경제지처럼.
 
한강공원에서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고 손정민씨에 대한 언론보도가 우려를 낳고 있다. 공식 수사결과 발표 전 유족의 의혹제기를 그대로 뉴스화하면서 특정인을 피의자로 여기는 분위기를 만든 행태가 대표적이다. 한 대학생의 죽음을 다룬 이례적으로 많은 보도와 높은 관심은 우리 사회와 언론계에 여러 시사점을 남긴다.

기자협회보가 손씨에 대한 첫 보도가 나온 지난 4월28일부터 5월10일까지 포털 네이버에서 관련 뉴스 수를 확인한 결과 13일 간 나온 총 기사 수는 2458개였다. 해당 기간 '한강'에 대한 뉴스 검색결과 중 '대학생'('한강 +대학생')과 '의대생'('한강 +의대생 -대학생')이 포함된 기사 수를 각각 파악해 합산한 결과다.

4월28일 23건, 29일 74건, 30일 379건, 5월1일 159건, 2일 62건, 3일 258건, 4일 431건, 5일 225건, 6일 264건, 7일 158건, 8일 128건, 9일 86건, 10일 211건의 기사가 나왔다. 하루당 약 189개 꼴이었다.

- 해당 <기자협회보> 기사 중에서

사이버렉카의 '음모론', 어디서 나왔나
   

고 손정민씨 사망사고 중간 수사결과 발표한원횡 서울경찰청 형사과장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제2서경마루에서 한강 대학생 사망사고 중간 수사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간 손씨 관련 언론보도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손씨의 친구를 피의자로 단정케 하는 논조, 부친을 포함해 유족 주장을 가감 없이 반영하는 기사, 사건의 '미스터리'만 부각하는 한편 기사 자체가 감정적인 보도 등등.

CCTV 보도영상을 포함해 사이버렉카들은 '음모론'과 '가짜뉴스'의 단서를 어디서 조합했을지 궁금해질 따름이다. 또 위와 같은 기사들이 구조적으로 포털 댓글 창을 통해 소위 '방구석 탐정'이 공론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확보해 준 셈은 아닌지도.

안타까운(?) 기사들은 오늘도 계속되는 중이다. 어제(27일) 경찰은 손씨 관련 사건의 진행 상황을 공식 발표하고 '한강 대학생 사망사건 관련 그간 수사진행사항'이란 자료를 서울청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대중의 관심과 경찰 수사에 대한 불신을 반영한 이례적인 조치였다. 그러자 어김없이 손씨의 부친이 블로그에 반박 글을 게재했고, 주요 일간지 중 한 곳은 해당 블로그 글 전문을 관련 기사에 공개하기도 했다.

지난달 22일 오후 평택항 신 컨테이너 터미널 부두에서 작업 중 사망한 대학생 이선호의 사망 사건이 지난 11일 기자회견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알렸다. 손씨 사건과 이씨 사건의 보도 양을 비교하며 우리 언론의 의제설정이 얼마나 망가져 버렸는지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럴 만했다. 일부 언론사가 자성의 목소리를 낸 이유일 테고.

그와는 또 별개로, 사이버렉카들을 비판하는 일부 언론사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손씨 보도와 관련해 본인들이 유튜버들이나 네티즌들보다 '보도 윤리' 차원에서 과연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아울러 국민 알권리를 핑계로 사이버렉카들과 다를 바 없는 '클릭 장사'에 열을 올린 것은 아닌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검증되지 않은 기사들로 이른바 '방구석 탐정'들이 활동할 자양분을 제공하진 않았는지 되돌아 보길 바라마지 않는다.

그리고 28일, 경찰청은 손씨 사건과 관련해 전날 '김창룡 경찰청장의 긴급발표'라는 제목의 영상이 게시된 것에 대해 "무분별한 허위사실 유포 행위에 대해서는 관련 법령에 의거해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과잉보도와 별개로 경찰의 이번 조치가 사이버렉카들의 무분별한 행태의 문제점을 공론화하게 될지, '표현의 자유' 문제와 관련해 또 어떤 사회적 논의가 이어질지 지켜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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