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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7개월까지 근무...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다

반도체 공장 근무자 2세의 건강 손상... 산재법 개정되어야

등록|2021.06.03 17:00 수정|2021.06.03 17:08
 

▲ 지난 5월 20일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 앞에서 반도체 노동자의 2세 직업병 피해자 3명 집단 산재신청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반올림


저는 회사가 좋았습니다. 누구나 부러워했던 대기업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많은 복지제도도 있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입사할 때의 설렘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막상 일해보니 교대근무가 쉽지 않았습니다. 충분한 생산량을 확보하도록 압박받았기에 자동설비가 있음에도, 수동 작업으로 빠르게 진행해야 했습니다. 수십 장의 웨이퍼가 담긴 무거운 박스를 들고 이동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무게는 5~10kg 정도였고, 근무 시간 내내 입식 작업을 했습니다. 차가운 클린룸에서도 땀이 났고 어깨, 다리, 허리 등 아프지 않은 곳을 찾는 게 더 어려웠습니다. 반복된 작업으로 손가락 마디마다 굳은살이 가득했습니다. 젊은 여자 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워 손을 숨기곤 했습니다.


위험할 것 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웨이퍼가 담긴 박스, 수많은 장비에서 냄새가 날 때도 설비의 문이 열리며 열기가 느껴질 때도,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라인에서 대피하였을 때도, 그곳에서 사용한 화학물질들이 어떤 영향을 줄지 감히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출생의 기쁨은 잠시, 눈물만 남은 현실
 

제가 10년간 일했던 기흥 6, 7공장은 다수의 직업병 피해자가 제보된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임신 7개월이 지나도록 같은 일을 했습니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었지만, 검사에서 아이에게 기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소견을 받았습니다. 불안했지만, 괜찮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괜찮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걱정했던 일은 결국 일어났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기쁨은 잠시였습니다. 아이의 외형적 모습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선천성 식도 기형이 확인되었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아이는 차가운 수술방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이후에도 몇 차례나 응급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아이가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항상 힘들고, 두렵고, 미안해 매일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 아이는 신장 한쪽도 없습니다. 한쪽 눈은 발달이 안 되어 계속된 치료를 통해 이제야 어느 정도 회복되었습니다. 청력에도 이상이 발견되어 정기적 관찰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지적장애 진단은 받지 않았지만, 또래와 비교할 때 조금 느린 아이로 자라고 있습니다. 그래도 잘 자라주어서 다행입니다.

요즘도 생각합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곳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지금 어땠을까? 우리와 같은 또 다른 사연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5월 반올림에 제보된 다른 두 명의 제보자와 함께 2세 직업병에 대해 산재신청을 했습니다. 산재법이 아직 우리 아이들을 커버하게 개정되지 않았다 하여 답답합니다. 아이의 아픔을 더이상 외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덧붙이는 글 김성화(가명) 님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1995년부터 일했고 2008년 자녀를 출산했는데, 아이가 선천성 무신장증과 식도 폐쇄 등의 아픔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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