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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바보처럼 산 한 소년의 마지막 바람

[박도의 치악산 일기] 제12화 6월을 맞으면서

등록|2021.06.07 14:33 수정|2021.06.07 14:33
 

▲ 1951. 1. 26. 미 공군 폭격기들이 한반도에 무차별 폭탄을 떨어뜨리고 있다. ⓒ NARA / 눈빛출판사

 
6.25전쟁 기억

5월이 신록의 달이라면 6월은 진초록의 달이다. 이즈음 온 산하가 싱그러운 초록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이라는 노랫말처럼, 여섯 살 때 겪은 무서웠던 '6.25전쟁'의 달로 기억에 남아있다.

2004년 2월 2일, 나는 재미동포 주태상씨의 안내로 권중희 선생과 함께 미국 메릴랜드주 칼리지파크에 있는 미국 국립문서관리청에 갔다. 그때 거기 5층 사진자료실에서 'Korean War'라는 사진집을 볼 수 있었다. 그 사진집을 펼치자 어린 시절의 희미한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하늘에서 미 공군 B-29 폭격기의 요란한 굉음과 우박처럼 폭탄이 쏟아졌다. 피란지 토굴 속에서 멀리서 가까이서 들려오는 대포 소리와 기관총 소리 등으로 귀청이 멍멍했다. 논이나 밭, 들길에는 뽕나무 채반에 누에처럼 널브러진 시체들, 전투기들의 융단폭격으로 온전한 건물 하나 없이 온통 폭삭 주저앉은 도시와 마을 등 이런 장면들이 또렷하게 또는 희미하게 여태 내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이미지들이 바로 눈앞에 펼쳐졌다.
  

▲ 1950. 8. 25. 기총소사에 쓰러진 피란민들 ⓒ NARA / 눈빛출판사


나는 그 순간 그 이미지들을 몽땅 한국으로 가져가서 6.25전쟁을 모르는 세대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그날부터 사진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하여 2005, 2007, 2017년 4차례나 미국을 방문하여 80여 일간 모두 2천여 점을 수집해 왔다.

그리하여 <지울 수 없는 이미지1, 2, 3>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한국전쟁Ⅱ> 등의 사진집을 펴낸 바 있다.

한 장의 사진

나는 대학 시절 국어국문학과를 다닌바, 시인 조동탁(조지훈) 교수는 강의 시간에 이따금 자작 시집을 펼치고서 굵은 목소리로 낭독해 주셨다. 그 시절 특히 당신 시집 <역사 앞에서> 에 실린 시 '다부원에서' 받은 영감은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또 소설가 정한숙 선생은 강의시간에 틈틈이 제자들을 담금질했다.
 
"한국인은 지난 6·25전쟁으로 엄청난 수난을 겪었다. 하지만 한국 작가에게는 큰 축복이다. 국토분단에다 골육상쟁의 전쟁, 이보다 더 좋은 작품 제재가 어디 있느냐? 너희들 가운데 한국전쟁을 깊이 공부하고 대작을 쓰라."

나는 이즈음 어린 시절의 6.25 체험 기억과 대학 시절 은사의 말씀, 그리고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수집해 온 어린 인민군 포로 사진들을 보면서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을 집필 중이다.
 

▲ 1950. 8. 18. 미 8군 하사관이 가장 나이 어른 북한 소년병 포로를 심문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김해심, 통역비서의 이름은 이수경이다). ⓒ NARA / 눈빛출판사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 게오르규의 <25시>, 라마르크의 <개선문>과 같은 대작을 꿈꾸면서 밤낮으로 자판을 두들긴다. 내 영혼의 신에게 기도드린다.
 
"한 어리석은 소년이 평생을 바보처럼 살면서 필생으로 쓰는 작품에 신기를 불어넣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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