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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변상하겠다는 오거돈, 역겹고 화나"

[전문] 강제추행치상 혐의 등 재판 앞두고 재판부에 엄벌 호소 공개 입장문

등록|2021.06.08 15:37 수정|2021.06.08 16:13
 

▲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기소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8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2021.6.8 ⓒ 연합뉴스


검찰 구형 등 결심공판을 앞두고,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폭력 피해자가 8일 공개 입장문을 냈다. 이날 부산지법 301호 법정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오거돈 전 시장의 결심공판은 양형조사신청으로 오는 21일로 연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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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흘렀지만, 피해자 A씨는 여전히 "출근도 제대로 못 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다"며 "밥 먹다가도 불쑥불쑥 오거돈 얼굴이 생각나 먹던 음식 다 토하기도 한다"고 일상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오 전 시장이 최근 피해자 측에 편지를 보낸 사실도 공개됐다. 지난달 피해자의 변호인을 통해 편지를 보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A씨는 "전관예우를 받는 초호화 변호인들을 꾸려놓고 어떻게 그렇게도 성의 없는 사과를 할 수 있는지, 그 오만한 태도가 너무나 역겹고 화가 난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는 재차 합의할 의사가 없다면서 재판부를 향해 "혹시나 나올지 모를 제2, 제3의 권력형 성범죄자들을 막기 위해서라도 마땅한 선례를 만들어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A씨의 마지막 말은 "이상한 변명, 제발 그만두시고 처벌을 받으라"는 당부로 끝났다.

다음은 200여 개 단체로 꾸려진 오거돈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가 이날 언론에 보낸 A씨의 입장 전문이다. 이 입장문은 이날 오전 9시 30분 부산지법 앞 공대위 기자회견 현장에서 대독 형식으로 낭독됐다.

"저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제 나이 또래보다 철이 없었던 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그저 월급날 기다리며 적금하고, 주말에 뭐 하고 놀지 고민하고, 신상품 기다렸다 쇼핑하고, 부모님 용돈 드리는 게 보람이었습니다. 크게 슬픈 일도 없고, 큰 걱정거리도 없고, 넘치진 않지만 부족하지 않은 환경에서 그냥 무난하게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작년 4월 7일 저기 앉아있는 오거돈 때문에 모든 생활이 엉망진창이 됐습니다. 출근도 제대로 못 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잡니다. 대중교통에서 노인들과 살짝 스치기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 통에 예약 택시만 타고 다닙니다. 밥 먹다가도 불쑥불쑥 오거돈 얼굴이 생각나 먹던 음식 다 토하기도 합니다. 제 일기장에 네 자리 숫자가 굉장히 많이 적혀있는데, 모두 우리 집 근처에 주차된 선팅이 짙은 차들의 번호입니다.

사건 이후로 밖에서 마주하는 모든 사람이 의심스럽고, 매 순간 나쁜 생각이 들어 너무 힘듭니다. 샤워기 틀어놓고 칼 쥔 채로 화장실에 혼자 앉아있다가 잠든 적도 여러 번입니다. 해가 떠있을 때는 누가 쳐다보는 것 같아 불을 다 꺼놓고 살고, 밤에는 누가 몰래 들어와 저를 죽일 것 같아 온 집안 불을 다 켜놓고 지내다 해 뜨는 것 보고 잡니다. 제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는지 참담합니다. 제가 제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합니다.

요즘에는 자책도 많이 합니다. 이 일로 마음 아파하는 가족, 친구들뿐 아니라 상담소, 변호사님, 경찰청, 검사님, 의사 선생님... 등 너무나 많은 사람이 이 일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이 없었다면 이 사람들도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하고 생각하다 보면 그냥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숨 쉬는 게 민폐구나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머리로는 오거돈 때문이라는 걸 아는데, 왜 계속 이런 생각이 드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늘 죄책감에 잡혀 삽니다. 이왕 한번 망친 인생, 제 주변 사람들이 앞으로 겪을 고통까지 저한테만 다 집중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도, 그래도 자식이라고 애지중지 곱게 키운 우리 엄마 아빠는 무슨 죄일까 생각하면 너무 죄송스러워 숨이 턱 막힙니다.

재판을 한 달 앞두고 변호사님께서 오거돈에게 편지를 받았다고, 다음날 확인하러 오라고 하셨습니다. 변호사님 전화를 받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일 년 동안 그 어떤 사과 없이 온갖 2차 가해는 다 하고 돌아다니다가, 재판 한 달 앞두고 갑자기 보낸 편지에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한편으로는 정말로 반성해서 내가 용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누군가를 계속 증오하고 미워하는 것이 저 스스로도 너무 힘들었던 탓입니다.

그런데 편지를 본 후에 제가 정말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제 조카도 사과할 때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그런 잘못을 저질렀는지, 얼마나 뉘우치고 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말하고 반성합니다. 저 사람의 편지에는 그런 기본적인 내용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피해를 변상하겠다고 합니다. 지난 1년 2개월간 제가 겪은 고통을 어떻게 감히 돈으로 산정하며, 편지 읽기 싫어할 것을 안다면서도 마지막으로 읽으라는 명령조의 말투는 어떤 생각으로 살면 할 수 있는지, 전관예우를 받는 초호화 변호인들을 꾸려놓고 어떻게 그렇게도 성의 없는 사과를 할 수 있는지, 그 오만한 태도가 너무나 역겹고 화가 납니다.

저는 사건 직후부터 합의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2020년 6월 4일 작성한 입장문에도 '오거돈의 직접적인 사과를 받은 적도 없고, 따라서 합의할 일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저와 제 가족을 비롯한 제 주변 누구에게라도 합의를 시도할 시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적었습니다. 지금도 같은 생각입니다. 치상을 예견할 수 없었다는 헛소리를 하는 오거돈과는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합의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거돈은 제가 원하지 않는 그 합의를 왜 계속 시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저기 계신 변호사 두 분이 난데없이 상담소로 쳐들어가 '오거돈의 잘못을 사과하겠다'고 하셨답니다. 변호사 사무실, 상담소, 그다음은 제 가족일까 걱정돼 미치겠습니다. 진정한 반성 없는 합의금은 100억 원이라고 해도 받을 생각 없습니다. 그런 돈 받으면 쓰면서도 평생 가슴에 돌 얹은 기분일 텐데,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판사님 앞에서 다시 요청하건데, 합의할 생각 없으니 제발 제 주변 들쑤시고 다니지 마십시오.

존경하는 재판장님, 언젠가 징벌에는 두 가지 의의가 있다고 배웠습니다. 첫 번째는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 대한 처벌의 의미, 두 번째는 앞으로 발생할지 모를 유사한 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고의 의미입니다. 오거돈의 범죄는 제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국민에게 정치혐오까지 불러일으키게 했던 사회적 이슈였습니다. 혹시나 나올지 모를 제2, 제3의 권력형 성범죄자들을 막기 위해서라도 마땅한 선례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권력과 돈만 있으면 다 된다'는 오만한 생각이 우리 사회에서 뿌리 뽑힐 수 있도록 강제추행범 오거돈에게 중형이 선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서 영장이 2번 기각될 때 느꼈던 좌절감을 이 법정에서는 부디 느끼고 싶지 않습니다.

한때 오거돈 시정의 성공을 위해 진심으로 열심히 일했던 직원으로서도 한마디 합니다. 이상한 변명 제발 그만두시고 처벌받으십시오. 그게 덜 우스워지는 길입니다.

긴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8일 부산시 연제구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전국 200여개 단체로 꾸려진 오거돈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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