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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고장난 파지 압축기에 끼어 사망... "엄벌해 주세요"

60대 전수권씨 지난해 사망, 현장 목격한 아내 '극심한 불안'... 사고 후 기계 교체

등록|2021.06.10 22:46 수정|2021.06.11 10:55
 

▲ 전수권씨가 사망 전 가족들에게 남긴 카톡 메시지 ⓒ 전수권씨 유가족 제공


"아침에 가면 매일 고장이 나 있어. 이번 말일로 (일을) 정리해야 되겠다. 보조하는 엄마도 마찬가지."

아버지 전수권씨가 2020년 7월 24일 오후 가족 카톡방에 남긴 메시지다. 그러나 전씨가 이날 남긴 말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전씨는 7월 28일 마지막 근무를 하루 앞둔 27일 오전 10시 50분께 경남 창원 소재 광고디자인 및 인쇄회사인 A 업체에서 파지를 수거하던 중 파지압축 기계에 머리가 끼여 사망했다. 전씨는 보조하던 아내가 오전 11시 20분께 발견할 때까지 파지압축 기계에 머리가 계속 눌린 상태로 있었다.

파지 수거 전문 고물상을 운영했던 전씨는 유일한 거래처였던 A 업체와 파지수거 계약을 맺고 20년 가까이 일을 해왔다. 구체적으로는 A 업체에서 발생한 압축 파지를 트럭에 옮겨 싣고, 다른 업체에 납품하는 일이다. 전씨는 '개인사업자'였음에도 A 업체에서 발생하는 압축 파지를 정리하고 옮기는 업무를 맡았다.

문제는 파지를 압축하는 A 업체 소유의 기계가 거의 매일 말썽을 부렸다는 것. 실제로 전씨가 가족들에게 남긴 카톡 메시지에는 2018년부터 "아침부터 기계와 씨름하느라 바빴다", "아침에 가면 매일 고장이 나 있다"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전씨는 A 업체에 기계를 수리해 달라고 반복적으로 요청했다. 하지만 전씨 아들이 <오마이뉴스>에 밝힌 내용에 따르면, 업체는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파지를 제공받는 입장이었던 전씨는 직접 고장 난 기계를 수년 동안 수리해 가며 압축 파지를 수거해 갔다. 그러던 중 업무를 그만두기 전날 기계에 머리와 팔이 끼여 사망하게 된 것이다.

A 업체 사장은 업무상과실치사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지난 9일 오전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첫 재판을 받았다. 전씨의 장남과 아내 이아무개씨는 업체사장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냈다. 장남 지훈씨는 지난 3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사업주를 강력하게 엄벌해 달라'라는 제목으로 청원도 올렸다.

사람이 죽고나서야 바뀐 기계
 

▲ 60대 노동자 전수권씨가 2020년 7월 경남 창원 소재 ㅇ업체 소유 파지압축 기계에 머리와 팔이 끼어 사망했다. 사진은 해당 압축 기계 모습. ⓒ 전수권씨 유가족 제공

  

▲ 60대 노동자 전수권씨가 2020년 7월 경남 창원 소재 ㅇ업체 소유 파지압축 기계에 머리와 팔이 끼어 사망했다. 사진은 해당 압축 기계 모습. ⓒ 전수권씨 유가족 제공


전씨의 장남 전지훈씨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경찰 조사 때도, 검찰 조사 때도 사과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했다"면서 지난 2020년 11월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A 업체 사장과 있었던 일을 털어놨다.

"조사 받기 위해서 대기실에서 업체 사장과 잠시 함께 앉아있게 됐다. 어머니도 함께 있었는데, 어머니가 업체 사장에게 '남편이 죽은 후 기계를 바꿨던데, 진작 해주셨으면 남편이 안 죽었을 거 아니냐'라고 했다. 그랬더니 사장이 '그 기계 사용 못 하는 동안 회사가 얼마나 손해가 많은 줄 아냐'라고 하더라. 그 뻔뻔함에 너무 화가 나서 말 그대로 피가 거꾸로 솟았다." 

아들 전씨는 "아버지는 하루에 적게는 2~3번, 많을 때는 4~5번 정도 업체에 가 파지를 수거하는 작업을 했다"면서 "매일 고장이 나 있는 파지압축기계를 직접 고치고, 압축되지 않고 퍼져서 나오는 파지도 철사를 이용해 수작업으로 압축을 했다. 그날도 기계를 손보다 돌아가셨는데 개인사업자라 산재 신청조차 못하는 게 너무나 억울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고 당일 기계에 머리가 낀 아버지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어머니였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당시 완전 넋이 나간 상태로 내게 전화를 했다. 이후엔 집에 혼자 들어가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아버지와 함께 일을 했던 어머니는 정말로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눈만 감으면 아버지가 압축기계에 머리가 낀 모습이 계속 떠올라 미칠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수면제 없이는 잠도 주무시지 못하는 상황이다."

아내 이씨에 대한 의사소견서를 보면, "남편의 사고 이후 불안과 불면, 우울감 등의 증상이 심해진 상태"라면서 "공황장애와 우발적 발작성 불안 상태로 인한 약물로 조정과 부정 기간 치료가 필요하다"라고 적혀 있다.

이 사건에 대해 A 업체는 입을 닫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여러 차례 업체 사장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A 업체 관계자는 "사장이 부재하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어렵게 A 업체 사장의 개인번호를 구해 문자를 남기고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공소장 "기계 고장 잦아... 아무런 안전조치 하지 않았다" 

한편, 검찰은 업체 사장에 대한 공소장에 "(기계는) 2005년경에 설치돼 매우 노후된 상태로 고장이 잦았다"면서 "이러한 경우 압축기를 관리하는 직원을 두어 압축기의 정상작동 여부를 수시로 확인하고 외부인 또는 근로자가 임의로 위 기계를 조작하지 못하도록 하며, 파지수거 작업을 할 때는 관리직원이 감독해 작업을 하게 하는 등 파지 압축과정에서의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할 업무상 주의가 있었음에도 관리직원을 정하지 않는 등 아무런 안전조치를 하지 않았다"라고 적시했다.

이어 "피해자가 파지를 수거하러 올 때도 관리직원의 감독 없이 파지압축기를 피해자 혼자 임의로 사용하게 방치했다"면서 "피해자가 파지 압축기 오작동을 살펴보기 위해 압축기 내부를 살펴보던 중 후진하는 실린더 구조물에 피해자의 머리와 오른쪽 팔뚝이 끼어 압착되게 돼 중증 두부 손상으로 사망에 이르게 했다"라고 적었다.

현재 전씨가 사망한 사고 현장에는 새로운 기계가 배치된 상태다. 업체 사장에 대한 다음 공판은 오는 8월에 열린다.
 

▲ 60대 노동자 전수권씨가 2020년 7월 경남 창원 소재 ㅇ업체 소유 파지압축 기계에 머리와 팔이 끼어 사망했다. 사진은 해당 압축 기계 모습. ⓒ 전수권씨 유가족 제공

  

▲ 전수권씨 사망 후 파지압축 기계 철거된 후 현장 모습 ⓒ 전수권씨 유가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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