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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논란 배구인 복귀, 셀프 면죄부면 괜찮다?

[주장] 말과 태도 바꾸는 학폭 가해자들, 진정성마저 의심스러워

등록|2021.06.14 11:46 수정|2021.06.14 14:21
올해 초 배구계를 넘어 사회 전반을 뒤흔든 학교 폭력(학폭) 논란의 당사자들이 은근슬쩍 잇달아 배구계 복귀를 추진하고 있어서 대중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박상하는 최근 현대캐피탈과 계약을 맺고 프로배구에 복귀했다. 삼성화재에서 뛰던 지난 2월 학교 폭력 가해자로 지목되어 은퇴를 선언한 지 불과 3개월 만의 번복이다. 현대캐피탈은 박상하의 영입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통해 "경찰 조사 결과 박상하의 결백을 입증하는 증언과 함께 폭로자가 박상하와는 중학교 동창일 뿐 일면식도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박상하는 경찰 조사를 통해 억울한 누명을 벗으며 프로 무대 복귀를 희망했고, 현대캐피탈에서 새롭게 선수 생활을 펼치게 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박상하의 학폭 의혹을 제기한 폭로자는 "중학교 시절 박상하와 또 다른 가해자로부터 14시간 동안 집단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 조사에서 감금과 집단폭행은 허위사실로 드러났다. 누명을 벗었다는 말 자체는 틀리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박상하가 폭력 행위 자체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박상하는 중고교 시절 친구와 후배를 폭행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바 있다. 박상하는 은퇴를 발표할 당시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드린 것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으며 어떤 이유로도 학교폭력이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책임을 지고 현 시간 부로 은퇴해 반성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박상하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면 그가 여전히 '학폭 가해자'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랬던 박상하가 최초 폭로자와 법적 분쟁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마치 그간의 다른 학폭마저도 모두 없었던 사건처럼 은퇴를 번복하고 배구계로 복귀한 것은 한마디로 '셀프 면죄부'를 준 것에 불과하다. 애초에 은퇴의 진정성마저도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역시 학폭논란으로 출전 금지 징계를 받았던 남자프로배구 선수 송명근은 원소속구단 OK금융그룹과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맺은 사실이 알려졌다. OK금융그룹 구단은 지난 5월에 송명근과 연봉 3억 원에 FA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학폭 논란을 인정하고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던 송명근은 오는 7월 군에 입대할 것으로 알려졌으며 2023년에 프로배구 코트에 복귀할 예정이다.

박상하나 송명근이 피해자들에게 개인적으로 사과했다고 해도 그것은 가해자로서 당연한 도리일뿐,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바탕으로 존재하는 프로스포츠 선수로서의 복귀를 정당화하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이런 선수들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이유로 징계에 소극적이었던 데다가 다시 배구판에 복귀하는 길까지 열어준 프로구단들과 배구계 역시, 학폭 논란을 어떤 인식인지로 바라보고 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낸 셈이다.

심지어 학폭 논란의 도화선 역할을 한 여자배구 선수 이다영은 징계기간 중 해외 이적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며 비판의 대상에 올랐다. 이다영은 쌍둥이 자매인 이재영과 함께 학창 시절 학교폭력 논란을 인정하고 소속팀 흥국생명으로부터 무기한 출전정지 징계를 받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이다영이 최근 그리스 리그로 이적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많은 팬들을 당황스럽게 했다.

흥국생명과 대한배구협회는 이다영 측이 독단적으로 해외 이적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이다영은 6월 30일까지 흥국생명 소속으로 지난해 체결한 3년 FA 계약이 유효하다. 소속팀이 있는 국내 선수가 해외로 이적하기 위해서 필요한 국제이적동의서(ITC)를 발급하는 것은 대한배구협회의 소관이다. 협회로서는 소속팀의 동의가 없는 데다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선수에게 이적동의서를 독단으로 허가하기 어렵다.

이다영 자매가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싶었다면 학폭 논란에 대하여 대중들 앞에서 제대로 된 입장을 정리하고 구단과 배구계의 공식적인 처분을 요청하는 게 순서였다. 쌍둥이 자매는 학폭 논란이 벌어진 직후 SNS에 짤막하게 올린 자필 사과문 외에는 아무런 입장 표명없이 기나긴 잠행을 거듭해왔다.

그사이에 이들 자매로부터 비롯된 학폭 논란이 불러온 사회적 파장은 단지 당사자들의 법적인 분쟁으로 끝날 수 있는 문제를 넘어선 지 오래다. 어정쩡한 모양새로 배구계에 복귀한다고 해봤자 망가진 이미지는 회복할 수 없고 팬들이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다.

학폭 논란은 절대로 지나간 사건이 아니다. 단지 개인간의 이해관계와 법적 정리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존재하는 프로스포츠라는 분야에서 대중들이 공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상식과 원칙에 관한 문제다.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자신에게 좀 더 유리한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은근슬쩍 말과 태도를 바꾸는 학폭 가해자들의 행태와 그들을 방관하는 배구계의 모습은, 앞으로도 이런 사태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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