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때는 달랐는데... G7 보도 실종사건
[하성태의 인사이드 아웃] 대통령 외교성과 홀대한 한국 언론
▲ 이란을 국빈 방문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오후(현지시간) 테헤란 메흐라바드 공항에 도착, 스카프의 일종인 '히잡(hijab)'을 착용하고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2016.5.1 ⓒ 연합뉴스
이슬람권의 여성이 교리에 따라서 머리와 목을 가리는 천 가리개를 '히잡'이라고 부르죠.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이 착용한 건 '루싸리' 즉 머리카락을 감싸는 두건이란 뜻입니다. 같은 이슬람이라도 교리에 엄격한 나라일수록 더 많은 부위를 가리는데, 이렇게 눈만 내놓은 게 '니캅'이라고 하는 것이고, 눈도 망사로 아예 덮어버리는 '부르카'라고 합니다.
- 2016년 5월 3일 SBS <8뉴스> 중 <'흰색 루싸리' 쓴 박 대통령…히잡의 '정치학'>
'패션 외교'도 모자라 '히잡의 정치학'까지 등장했다. 박근혜 정부 집권 4년 차였던 2016년 5월, 한국-이란 첫 정상회담을 보도한 SBS는 그야말로 '열일' 중이었다. 이틀간 톱뉴스를 포함해 무려 8건(2일 5건, 3일 5건)의 기사를 쏟아냈고, 이를 전후해 출국과 복귀 소식도 빠짐없이 다뤘다.
<박 대통령 "이란과 한반도 비핵화 협력은 큰 의미">란 청와대 논평마저 주요 뉴스로 다룬 SBS를 일례로 들었을 뿐 전반적인 언론의 보도행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씁쓸한 것은 당시 SBS를 포함해 언론들이 대서특필했고 청와대가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42조 규모 수주"가 뻥튀기였다는 점이다.
2박 3일 갔다 와서 42조가 뭐지? 이래서 이란 언론을 봤다. 그런 내용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이란 언론은 한국이 이란에 250억을 투자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크게 나왔다. (42조 수주) 그런 내용은 (이란 언론 보도에) 하나도 없으니까 뻥튀기 이상의 하나의 허상을 (청와대가) 내놓은 거죠, 거짓말로.
- 김원식 국제전문기자, 3일 <정준희의 해시태그> 57회 '문재인 정부 외교와 언론'편
38개국을 49번 순방했다는 박근혜 정부 당시 언론은 '패션외교' 찬양을 넘어 "비 그치고 쨍쨍"과 같은 호들갑 기사를 양산한 바 있다.
한국이 개최한 국가적 이벤트였음을 감안해도 역대급 과장이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 <"G20 두번 하면, 전국민 1년간 놀고 먹는다"?>(프레시안)는 팩트체크가 나올 정도였다. 물론, SBS를 포함한 다수 방송 및 언론이 G20 띄우기에 혈안이었다.
반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회의 자체가 무산된 지난해에 이어 올해 2년 연속 문 대통령이 초청받았고 실제 처음 참석한 G7 정상회의의 경우 호들갑은커녕 유의미한 보도 자체가 가뭄에 콩 나듯 한 수준이었다. 오죽했으면 G7 정상회의 관련 소식을 가장 빨리 정통하게 찾아볼 수 있는 매체가 청와대 소셜 미디어나 외신이란 푸념이 난무했을까. 그럴 만 했다.
뒷전으로 밀려난 G7 보도
분석 결과, '2010년 G20 정상회담 개최' 당시 언론의 보도량(3645건)은 '2021년 G7 정상회담 초청' 관련 보도량(845건)에 비해 약 4.3배 많았으며, 지면 1면에도 훨씬 많은 양의 관련 기사를 배치했음을 확인했다. 물론 G20 정상회의 서울 개최는 G7 소속 국가가 아닌 나라 중 최초이자, 동시에 아시아 최초라는 점에서 상징성을 가졌다. '국내 개최'라는 보도 가치와 취재 편의성도 높았다.
그럼에도 과도한 보도량과 "G20 정상회의 개최로 450조원 이상 경제효과와 240만명 이상 고용 증가에 기여할 것"이라는 식의 지나친 평가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G20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의 호평이 대부분이었던 데 비해, G7참석 성과에 대해서는 아쉬운 부분만 강조하는 보도도 확인할 수 있다.
- 15일 <뉴스톱>, <'이명박 G20' 보도, '문재인 G7'보다 4.3배 많았다> 중
<뉴스톱>은 "정리하자면, '두 사건의 보도량과 태도에 차이가 있다'는 주장은 대체로 사실"이라고 결론 냈다. 해당 기사에서 <뉴스톱>이 활용한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검색 결과가 주요 일간지 및 방송사 기사가 검색 대상인 점을 감안하면, 독자들이 포털 및 방송 등을 통해 피부로 접하는 G7 정상회의 관련 보도는 4.7배 그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제 그랬다. 앞서 일례로 든 SBS <8뉴스> 보도가 딱 그랬다. 영국에서 G7 정상회의가 한창이던 지난 13일, SBS <8뉴스>의 G7 보도는 12번째 꼭지였다. 해당 보도 직전, 이준석 국민의힘 신임 당 대표의 첫 출근 소식이 11번째 꼭지였다. 더 나아가 SBS는 이 대표의 행보를 여타 대선후보들과 병렬 배치하며 이 대표를 일약 대선주자 급으로 격상시켰다.
문 대통령이 G7 정상회의 참석차 영국으로 출국한 것은 지난 11일. 이날부터 14일까지 4일간 SBS <8뉴스>의 G7 정상회의 관련 보도는 단 5건(13일 3건, 14일 2건)이었다. 톱뉴스? 역시나 없었다. 반면 이준석 대표 관련 보도는 당 대표 선출일이던 11일 인터뷰 및 톱뉴스를 포함, 총 9건(11일 5건, 12일 1건, 13일 1건, 14일 2건)이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세계 질서를 논의하는 중요 회의임에도 불구하고 G7 정상회의 뉴스가 '이준석 열풍'보다 푸대접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G20을 넘어 세계 주요 7개국(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과 한국 정상이 어깨를 나란히 해도, 대한민국의 '글로벌 백신 허브'로서의 역할이 강조돼도, 더 나아가 G7이 공동성명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미국의 대북정책을 지지하고 북한에 대화를 촉구하는 안을 채택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이처럼 그 위상과 중요도가 남다른, 코로나19 시대의 현안을 다룬 G7 정상회의에 대한 언론의 홀대는 '비정상'이란 표현이 아깝지 않을 만큼 '극과 극'이라 할 만하다. 포털도 마찬가지였다.
G7 정상회의가 한창이던 지난 13일, 전체 기사량이 주중과 비교해 떨어지는 일요일임을 감안한다면 G7 정상회의는 말 그대로 '핫'한 뉴스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다음과 네이버, 양대 포털의 뉴스 메인화면에서 G7 정상회의 소식은 그야말로 '뒷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13일 오후 5시 기준, G7 정상회의 분석 기사를 온라인판 톱기사로 배치한 주요 언론사는 MBC와 YTN을 빼곤 없었다. 개별 언론사들이 크게 주목하지 않으니 포털이 잠잠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지 않겠는가. 참고로,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검색 결과, 지난 11일부터 15일(정오)까지 '이준석' 키워드 검색 결과는 1989건으로, '문재인'(1969건) 대통령을 뛰어넘었다.
지상파 보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같은 날 지상파 3사 및 JTBC 중 G7 정상회의를 톱뉴스로 내세운 것은 MBC뿐이었다. SBS는 12번째, 13번째 꼭지 2건, KBS는 15번째, 20번째, 21번째 꼭지 3건이었다. JTBC는 아예 G7 정상회의 관련 보도가 없었다.
이날 주최국인 영국의 BBC를 비롯해 뉴욕타임스, 블룸버그 등 세계 주요 외신이 G7 정상회의를 메인뉴스로 보도한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논조였다. 과연 '국격'을 중시하고 우리를 향한 외국의 시선을 신경 쓰는 우리 국민들이 우리 언론의 보도행태처럼 G7 정상회의 소식보다 '이준석 열풍'에 실제 관심이 월등히 많은지 의문이다.
이번 G7 보도와 이명박‧박근혜 정부 정부 당시 세계 정상회의나 해외 순방 및 정상회담 관련 보도를 비교해 보시길. 일례로 2015년 9월, 방송들이 앞 다퉈 생중계하며 호들갑을 떨었던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의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 보도가 대표적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G7 참석이 이뤄졌다면 '히잡의 정치학'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양과 질을 자랑하는 기사들이 쏟아지지 않았을까.
홀대론 아닌 언론의 홀대
▲ G7 정상회의 참석차 영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 양자회담장 앞에서 참가국 정상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 이동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논조나 기사의 질도 이전 정부와 비교하면 선택적이라 할 만했다. 대부분 문재인 대통령과 일본 스가 총리와의 '대접' 비교나 한미 약식 회담 무산에 초점을 맞췄고, 역시나 중국의 견제가 우리 언론의 주요 관심사였다. G7 정상회의 참석의 의의나 성과를 제대로 짚거나 현장 목소리를 제대로 담은 기사가 포털에서 주목을 받기 힘들 수밖에 없는 보도 행태였다.
문 대통령의 크랩 케이크와 스가 총리의 햄버거를 비교하거나 바이든 대통령의 마스크 착용 여부 등이 화제로 올렸던 한미정상회담 보도와 비교해도 크게 나을 것이 없었다. 문 대통령의 G7 참석이 이 정도로 '홀대'받을 이슈인지, 문 대통령이 아니라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이 G7 정상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어도 언론들이 이렇게 무시했을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정상외교 마케팅을 당시 청와대가 굉장히 세게 했었다. 홍보에 열을 올렸던 이유는 자명하다. 한 번씩 해외 순방을 다녀오면 대통령 지지도가 쑥쑥 올랐다. 재임기간 동안 25차례 해외 순방(중복 포함 38개국 총 49번)을 기록했다. 딱 4번을 제외하고 모두 지지율이 올랐다. 평균 3.59%씩 올랐다. 본인 스스로도 해외 정상회담에 대한 욕구가 크지 않았을까.
2016년 11월 <'박근혜 세일즈 외교' 가면 벗겨보니 128조원 증발>이란 기획 기사를 쓴 CBS 권민철 기자의 회고다(3일 <정준희의 해시태그> 57회 '문재인 정부 외교와 언론' 편). 여론조사 전문가들 역시 대통령 해외 순방 직후 적게는 2~3%, 많게는 3~4%씩 국정 지지도가 뛴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이처럼 '패션 외교'를 필두로 '박근혜 해외 순방'을 지지율 상승으로 연결시켜준 그 언론들이, 그 언론보도를 AI 알고리즘으로 배치한다는 포털이 이제는 문 대통령이 참석한 G7 정상회의 자체를 외면하고 무시하며 홀대하려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이전 정부 당시 쏟아졌던 보도 양이나 성과에 대한 칭찬 일색 논조와도 천양지차다.
그 의도가 어찌 됐든 대통령 지지율과의 상관관계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을 뛰어넘는 보도 행태에도 문 대통령은 40% 전후 지지율을 회복 중이다(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25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38.5%, 부정 평가는 57.6%로 나타났다.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반면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OECD 국가와 비교해 바닥을 기는 중이다.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이번 G7 정상회의 보도가 재차 확인시켜줬다고 볼 수 있다. '홀대론'이 불가능하니 대신 무시로 일관한, 아예 언론들이 스스로 홀대해 버린 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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