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듯 살아갑시다, 이 곰과 늑대처럼
[그림책으로 하는 인문학 수업]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걷는다는 것, 그림책 '산책'
인터넷에서 'mbti 유형별 신데렐라 버전'을 봤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데렐라는 궁전 무도회에서 12시까지 춤을 추다 종이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듣고 허겁지겁 뛰어나오다 유리구두 한 짝을 떨어뜨리지요. 그런데 이 이야기의 결말이 각 성격 유형에 따라 달라진다네요.
철두철미한 유형은 12시 이전에 무도회를 나와서 유리 구두를 떨어뜨릴 일이 없답니다. 신데렐라인데 신데렐라가 될 수 없는 거지요. 반면에 다른 유형은 성급하게 뛰어나오다 계단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왕자님의 눈에 띄어 본의 아니게 이른 해피엔딩을 맞이하기도 한답니다.
또 다른 유형은 무도회는 가지만 왕자가 자기 이상형이 아니라 실망을 하기도 하고, 다른 유형은 떨어진 유리 구두를 자신이 주워온답니다.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들께 이 이야기를 들려드렸더니 정말 12시 전에 가시겠다는 분이 계십니다. 이처럼 사람이 참 달라요.
심리학자 칼 융은 인간의 의식에는 '생각, 감정, 감각, 직감' 등 네 가지의 심적 기능이 '작동'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이 네 가지 기능이 다르게 발현된다네요. 생각을, 감정을, 어떤 특정한 기능을 우선적으로 쓰는가에 따라 성격이 정해진다고 합니다. 여기에 의식을 외적, 객관적 세계로 돌리는가 내적, 주관적 세계에 돌리는가 하는 경향성이 덧붙여져서 요즘 인기 있는 mbti의 16가지 성격 유형이 완성됩니다. 16종류나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16종류가 아니라 1600, 16000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처럼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지구라는 별에서 '인간'이라는 종족으로 함께 살아갈까 싶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림책 <산책>의 곰과 늑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곰과 늑대의 산책
다니엘 살미에리의 <산책>의 구성은 단순합니다. 눈오는 날 아기 곰과 아기 늑대가 숲속에서 마주칩니다.
"뾰족한 주둥이, 빛나는 회색 털, 황금빛 눈동자', 그리고 '크고 둥근 머리, 보드랍고 까만 털, 그윽한 갈색 눈동자', 그림책의 표현처럼 곰과 늑대는 서로 참 다릅니다.
저 멀리서부터 한눈에 벌써 서로가 자신과 다르다는 걸 알았지만 두 동물은 다가갑니다. 깊은 밤 숲속에 나온 이유도 다릅니다. 하지만 두 동물은 선뜻 함께 걷습니다. 깊은 밤 숲속을. 서로 다른 두 동물이 함께 걷자고 하는 장면, 이 별다르지 않는 장면에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열립니다.
'간을 본다'고 하나요?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면 우선 저 사람이 나와 얼마나 다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지요. '악수'의 유래가 '내 손에는 무기가 없습니다'라는 의미였다니 '불신'의 유래가 깊습니다. 특히 2021년의 한국 사회는 나와 같지 않음에 거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친한 사람들끼리라도, 심지어 가족이라도 '정치'나 '종교', '젠더'와 관련된 얘기는 금기어입니다.
단거리도, 장거리도, 마라톤도 아닌 산책
그러기에 곰과 늑대의 산책이 주는 울림은 깊습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두 존재가 '산책'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박재규씨와 조성민씨는 <위로의 그림책>에서 '산책'으로서의 삶을 말합니다. 매일 매일 해야 할 일에 치이며 사는 와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산책'으로서의 삶을 말하는 건 '음풍농월'같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약속 시간에 늦을까 택시를 탔습니다. 약속 시간 5분 여를 남긴 조급한 내 마음을 운전하시는 분께 전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 머리가 허연 운전사분은 '젊어서 일할 때는 늦지 않으려고 오토바이까지 타고 다녔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덧없어요'하십니다. 초로의 우리들은 이심전심입니다.
막 달리면 어딘가에 도달할 줄 알았는데, 결국 도달한 곳은 늙음이요, 이제 도달할 곳은 '죽음'이라는 것을. 유한한 삶의 여정을 조금 더 여유롭게 음미하며 살아가자는 의미에서 '산책'이란 말이야말로 '인생'을 빗댄 절묘한 '단어'같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신해철씨는 과거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마 산책을 즐기는 곰과 늑대의 이런 모습일 것입니다.
6월의 산책로, 누가 심은 것도 아닌데 개망초와 토끼풀이 지천입니다. 초봄에 노오란 개나리가, 분홍빛의 벚꽃, 진달래로, 이제 다시 흰색 꽃들의 행렬로 이어집니다. 어느 분의 말씀대로 잎들의 농담에 따라 꽃들은 저마다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색을 골라 피는 듯합니다. 무성해져 가는 산책로를 걸어가다 보면 <첫 번째 질문>의 오사다 히로시의 말처럼 세상의 주인은 바로 이들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인생이 '산책'이라는 건 바로 나를 둘러싼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라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경주마처럼 달릴 때는 절대 볼 수 없는 것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세상을 가득 채운 것들을 '발견'하며 나만이 아닌 존재들의 소중함을 느껴보라는 것이겠지요. 나 홀로 달리는 듯한 외로움이 열심히 애써 피고 지는 것들을 보다 보면 어쩐지 동지가 생긴 듯 녹녹해집니다.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마음, 그래야 역설적으로 함께 하는 상대가 곰이든, 늑대이든 함께 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요.
철두철미한 유형은 12시 이전에 무도회를 나와서 유리 구두를 떨어뜨릴 일이 없답니다. 신데렐라인데 신데렐라가 될 수 없는 거지요. 반면에 다른 유형은 성급하게 뛰어나오다 계단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왕자님의 눈에 띄어 본의 아니게 이른 해피엔딩을 맞이하기도 한답니다.
심리학자 칼 융은 인간의 의식에는 '생각, 감정, 감각, 직감' 등 네 가지의 심적 기능이 '작동'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이 네 가지 기능이 다르게 발현된다네요. 생각을, 감정을, 어떤 특정한 기능을 우선적으로 쓰는가에 따라 성격이 정해진다고 합니다. 여기에 의식을 외적, 객관적 세계로 돌리는가 내적, 주관적 세계에 돌리는가 하는 경향성이 덧붙여져서 요즘 인기 있는 mbti의 16가지 성격 유형이 완성됩니다. 16종류나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16종류가 아니라 1600, 16000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처럼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지구라는 별에서 '인간'이라는 종족으로 함께 살아갈까 싶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림책 <산책>의 곰과 늑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 산책 ⓒ 북극곰
곰과 늑대의 산책
다니엘 살미에리의 <산책>의 구성은 단순합니다. 눈오는 날 아기 곰과 아기 늑대가 숲속에서 마주칩니다.
"길을 잃었니?"
"아니, 넌?"
"난 찬바람을 쐬러 나왔어. 눈 내리는 고용한 숲을 좋아하거든, 너는?"
"난 눈을 밝으러 나왔어. 눈 밟을 때 나는 소리를 좋아하거든, 뽀드득 뽀드득."
"그럼 우리 함께 걸을까?"
"그래, 좋아!"
"뾰족한 주둥이, 빛나는 회색 털, 황금빛 눈동자', 그리고 '크고 둥근 머리, 보드랍고 까만 털, 그윽한 갈색 눈동자', 그림책의 표현처럼 곰과 늑대는 서로 참 다릅니다.
▲ 산책 ⓒ 북극곰
저 멀리서부터 한눈에 벌써 서로가 자신과 다르다는 걸 알았지만 두 동물은 다가갑니다. 깊은 밤 숲속에 나온 이유도 다릅니다. 하지만 두 동물은 선뜻 함께 걷습니다. 깊은 밤 숲속을. 서로 다른 두 동물이 함께 걷자고 하는 장면, 이 별다르지 않는 장면에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열립니다.
'간을 본다'고 하나요?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면 우선 저 사람이 나와 얼마나 다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지요. '악수'의 유래가 '내 손에는 무기가 없습니다'라는 의미였다니 '불신'의 유래가 깊습니다. 특히 2021년의 한국 사회는 나와 같지 않음에 거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친한 사람들끼리라도, 심지어 가족이라도 '정치'나 '종교', '젠더'와 관련된 얘기는 금기어입니다.
▲ 산책 ⓒ 북극곰
단거리도, 장거리도, 마라톤도 아닌 산책
그러기에 곰과 늑대의 산책이 주는 울림은 깊습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두 존재가 '산책'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걸
인생은
단거리도/ 장거리도/ 마라톤도 아닌
산책이란 걸
박재규씨와 조성민씨는 <위로의 그림책>에서 '산책'으로서의 삶을 말합니다. 매일 매일 해야 할 일에 치이며 사는 와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산책'으로서의 삶을 말하는 건 '음풍농월'같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약속 시간에 늦을까 택시를 탔습니다. 약속 시간 5분 여를 남긴 조급한 내 마음을 운전하시는 분께 전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 머리가 허연 운전사분은 '젊어서 일할 때는 늦지 않으려고 오토바이까지 타고 다녔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덧없어요'하십니다. 초로의 우리들은 이심전심입니다.
막 달리면 어딘가에 도달할 줄 알았는데, 결국 도달한 곳은 늙음이요, 이제 도달할 곳은 '죽음'이라는 것을. 유한한 삶의 여정을 조금 더 여유롭게 음미하며 살아가자는 의미에서 '산책'이란 말이야말로 '인생'을 빗댄 절묘한 '단어'같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신해철씨는 과거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은 산책이다.
생명은 태어나는 것 자체로 목적을 다한 것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하는 것은 덤으로 주어진 것이다.
산책하러 가는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있나?
산책을 나가듯 크게 의미 부여하지 말고, 여유 있게 즐기며 살자"
아마 산책을 즐기는 곰과 늑대의 이런 모습일 것입니다.
눈과 귀와 코로 눈내리는 풍경을 느꼈습니다.
나무 껍질 냄새를 맡았습니다.
눈송이가 털 위에 내려앉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눈송이 하나를 가만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 산책 ⓒ 북극곰
6월의 산책로, 누가 심은 것도 아닌데 개망초와 토끼풀이 지천입니다. 초봄에 노오란 개나리가, 분홍빛의 벚꽃, 진달래로, 이제 다시 흰색 꽃들의 행렬로 이어집니다. 어느 분의 말씀대로 잎들의 농담에 따라 꽃들은 저마다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색을 골라 피는 듯합니다. 무성해져 가는 산책로를 걸어가다 보면 <첫 번째 질문>의 오사다 히로시의 말처럼 세상의 주인은 바로 이들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인생이 '산책'이라는 건 바로 나를 둘러싼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라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경주마처럼 달릴 때는 절대 볼 수 없는 것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세상을 가득 채운 것들을 '발견'하며 나만이 아닌 존재들의 소중함을 느껴보라는 것이겠지요. 나 홀로 달리는 듯한 외로움이 열심히 애써 피고 지는 것들을 보다 보면 어쩐지 동지가 생긴 듯 녹녹해집니다.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마음, 그래야 역설적으로 함께 하는 상대가 곰이든, 늑대이든 함께 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요.
말로 할 수 없는 많은 것들로/ 이루어진 것이, 사람의/
인생이라는 작은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조용한 여름날의 오후/햇살 속에 떨어지는 / 황금빛 먼지처럼 아름다운 것/소리없는 음악처럼/ 손으로는 잡을 수 없는 것(중략)
사람의 하루에 필요한 것은/ 의의이지/ 의미가 아니다
- 오사다 히로시, 사람의 하루에 필요한 것 중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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