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 짜리 집에 살며 9억 주택 종부세 걱정하는 현실
[아이들은 나의 스승] 교육의 지표는 의식이 존재를 배반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
▲ 더불어민주당이 공시지가 상위 2%를 종합부동산세 기준선으로 삼기로 당론을 확정했다. 개인별로 합산한 전국 주택 공시가격의 합계액으로 0~100%까지 순서를 매긴 후 상위 2%에서 기준선을 끊는 방식이다. 이 기준선 안에 들어오는 1세대 1주택자는 종부세 대상에서 빠진다. 사진은 이날 서울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강남 일대 아파트 단지. ⓒ 연합뉴스
뉴스는 힘이 세다. 뉴스가 포털에 실리면 영향력은 배가된다. 포털 메인에 걸린 뉴스는 자신과 별 상관이 없는 일이라도 종일 화제가 되고 말을 얹는다. 그런 의미에서 뉴스를 생산하는 기자들은 여론을 반영한다기보다 여론을 유도하는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맞을 성싶다.
며칠 전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뜬금없이 종합부동산세(종부세)가 화제가 됐다. 종부세 부과 기준이 공시가격 기준으로 9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완화될 거라는 뉴스에 대해 모두 한마디씩 했다. 찬반이 갈려 토론이 벌어졌는데, 둘 다 나름의 일리가 있어 내내 평행선을 달렸다.
그런데, 토론 중에 황당한 점을 발견했다. 찬성하는 이든 반대하는 이든 모두 종부세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명색이 광역시로 호남 지역의 중심 도시라지만, 이곳 광주에서는 공시가격이 12억 원은커녕 9억 원이 넘는 아파트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다른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고 있는 종부세 완화 논쟁은 서울 지역, 그것도 집값이 급등한 강남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만 해당하는 사안이다. 극소수에 불과한 그들의 이해관계가 대한민국의 여론을 흔들어대고 있는 셈이다. 포털이 끊임없이 장삼이사의 '부화뇌동'을 부추긴 결과다.
더 황당했던 건, 종부세 완화가 시급하며 내년 대선 승리를 위해 절실하다고 열변을 토한 이가 술자리에 함께한 이들 중에 가장 '가난했다'는 점이다. 그가 사는 아파트값은 갓 2억 원을 넘는 수준이었다. 아마도 세금 부과 기준인 공시가격은 1억 5천만 원도 안 될 것이다.
현재 종부세 부과 기준인 9억 원이면, 지금 그가 사는 집을 6채도 넘게 살 수 있는 액수다. 흡사 쥐가 고양이 생각해주는 꼴이다. 종부세 완화가 실패한 부동산 정책을 바로잡고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대책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그의 확고한 신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가 근거로 제시한 건 죄다 포털에 오르내린 기사들이었다. 기사의 내용이 그의 입을 통해 토씨 하나도 바뀌지 않은 채 복제되어 나왔다. 그 기사들을 진실이라고 믿는 그에게 포털은 지식의 보물 창고이자 세상과 교류하는 창구였고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기준이었다.
'갑'에 대해선 왜 일언반구 없을까
얼마 전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철거 건물 붕괴 참사에 대한 책임을 두고도 설전이 벌어졌다. 인재라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지만, 책임 소재와 크기를 두고선 의견이 갈렸다. 다수는 시공사인 한솔기업과 철거를 담당한 백솔건설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는 담당 공무원의 무사안일이 이번 사달의 주범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정작 놀라운 건, 그 누구도 시행사인 현대산업개발의 책임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외려 시행사가 전문업체에 도급을 맡긴 상황에서 도의적인 책임이 있을지언정 법적으로 책임을 묻는 건 지나치다고 했다.
모두 한솔기업이 지역 철거업체와 맺은 불법적 다단계 하도급과 공사 단가를 후려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이구동성 지목했다. 다단계 하도급이 건설 공사의 오랜 관행인데, 한솔기업이 운이 나빴다고도 했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아니었을 거라는 뜻이다.
시행사와 54억 원에 계약을 맺었으면서 철거업체에 고작 12억 원에 다시 하도급을 준 시공사의 악행을 성토했다. 그들은 한솔기업이 차액을 갈취한 것이라 단정했다. 세부 계약 사항을 알 수 없어 억측에 불과하지만, 그들은 삼척동자도 아는 관행이라며 확신하는 말투였다.
그 돈으로 감리인과 담당 공무원을 '구워삶았을' 테고, 그들 역시 관행으로 여겨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을 거라 했다. 그들 나름 계좌 추적 등에 대비해 '안전장치'도 마련해두었을 거라고도 했다. 그 바닥의 '선수'들인데 그 정도도 대비하지 않았겠느냐고 덧붙였다.
경찰의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하나같이 근거 없는 낭설일 뿐이지만, 이를 부정하는 이는 없었다. 심지어 법적 단죄를 받게 될 사람과 숫자를 예언하며 내기를 걸기도 했다. 불법적 하도급을 준 시공사의 대표와 철거 작업을 한 굴삭기 기사 외엔 처벌이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
2019년 서울 잠원동 붕괴 사고를 근거로 삼기도 했다. 당시 5층짜리 건물이 철거 도중 무너져 도로를 덮치면서 1명이 숨지고 4명이 크게 다친 후진국형 참사였다. 그들은 이번 광주 철거 건물 붕괴 참사가 그때와 판박이라며, 처벌을 받는 사람도 숫자도 비슷할 거라고 예언했다.
당시 법적 처벌을 받은 이는 철거업체의 현장 관리소장 1명뿐이다. 법령과 제도가 별반 달라지지도 않았고 관행 역시 온존한 현실에서 이번 참사도 2년 전과 유사하게 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게 어제오늘의 일이냐'는 푸념은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는 말처럼 모질게 들렸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을'과 '병'의 관계인 한솔기업과 백솔건설, 그리고 그들의 '편의'를 봐줬을 거라고 여기는 감리인과 담당 공무원들은 그토록 성토하면서, 발주처인 지방정부와 시행사 사이에 오간 공사비에 대해서는 왜 일언반구도 없을까. 그들은 이번 공사의 '갑'인데 말이다.
뼛속 깊이 포섭된 강자의 논리
우리는 '갑질'에는 그토록 분노하면서, '갑'을 단죄하는 데엔 왜 이리 무기력하고 관대할까. 그들을 처벌할 법이 허술하다면 함께 어깨를 겯고 법을 만들고 고치는 데에 힘을 모으는 게 당연하지 않나. 그런데도 그 자리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관한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되레 이번 참사로 지역의 건설 업체에 불똥이 튀어 타격을 입게 될 것을 우려했다. 그러잖아도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라며 지역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였다. 대기업을 단죄하면 투자가 위축되고 낙후 지역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는 논리였다. 이는 '갑'을 처벌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돈보다 생명'이, '이윤보다 안전'이 우선인 사회를 만들자고 온 국민이 외쳐왔는데, 막상 뭉칫돈이 도는 현장에선 '구호'만으론 관행을 이길 수 없다. 참다못해 '갑'을 일벌백계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했더니,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라며 면박만 당했다. 다단계 하도급은 워낙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하느님이 와도 해결하지 못한다고 장담했다.
대기업을 단죄하기 시작하면 투자가 위축되어 종국에는 경제적 약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고정관념이 뿌리 깊다. 잘해야 '을'이고 '병'과 '정'일 수밖에 없는 장삼이사들이 '갑'을 두둔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그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보면 묘하게도 일관된 공통점이 있다.
역시나 포털에 걸린 기사의 내용을 그대로 읊고 있다는 것이다. 2억 원짜리 집에 살면서 9억 원짜리 집에 사는 사람의 종부세 인상을 걱정하고,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월급쟁이가 대기업의 법적 처벌을 반대하는 현실이 기괴하기만 하다. 뼛속 깊이 강자의 논리에 포섭된 모양새다.
의식이 존재를 배반한 채 '갑'을 내면화한 그들은 약자 앞에서 '갑질'을 서슴지 않는다. 강자 앞에선 비굴하지만, 약자 앞에선 표독스럽게 군다. 강자에게 당한 굴욕을 약자에게 화풀이하는 것이다. 참으로 못나고 지질한 행태지만, 그들은 세상살이가 다 그렇다며 자위한다. 술자리 토론 중에도 그들은 스마트폰을 켠 채 포털을 들락거렸다.
사족. 그래도 아이들이 희망이다. 이태 전 졸업한 한 아이가 학교에 찾아와 자신의 '알바' 경험을 들려주었다. 편의점 '알바'를 구하면서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구했다가 점주와 얼굴 붉힌 사연과 주휴수당을 받아낸 이야기 등을 쏟아냈다. 나름 '갑질'에 맞서 승리를 맛본 무용담이었다.
부디 아이들이 기성세대의 그릇된 관행에 물들지 않길 바랄 뿐이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해하고 포털을 통해 세상을 읽는 그들의 모습에 적잖이 불안하긴 하지만, 적어도 관행을 당연시하며 '갑질'에 무릎 꿇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사로서 단언컨대, 우리 교육의 지표는 아이들의 의식이 존재를 배반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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