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이 점점..." 전화 한통에 발벗고 나선 친구들
삽교고 11회 동창들, 아픈 친구 수술비 2천만 원 모아
▲ 어려운 처지에 놓인 동문을 위해 의기투합한 삽교고 11회 동창과 선후배들. ⓒ <무한정보> 김수로
삽교고등학교(충남 예산군 삽교읍 소재) 11회 졸업생들이 30년 넘도록 변함없는 우정을 과시하며 어려운 처지에 놓인 벗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시작은 전화 한 통이었다. 지난 3월 초 장성종씨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동창인 '땜보(학창시절 별명)'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달여 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의 모습이 떠올라서다. 당시 땜보씨는 지병으로 눈이 나빠져 수술을 받았지만 경과가 좋지 않아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들은 동문들은 이튿날부터 모금활동을 시작했다. 친구와 선후배 모두 십시일반 마음을 보탠 덕에 일주일여만에 2000만원에 가까운 큰돈이 모아졌고, 그는 무사히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이들의 '친구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6일 아침, '삽교고'가 적힌 형광색 조끼를 입은 50대 청춘들은 땜보씨 집 마당에 모였다. 아픈 그가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고, 80~90대인 부모님이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낡은 건물을 손보기 위해 두팔을 걷어부쳤다.
대대적인 공사가 시작됐다. 벽은 말끔히 도배를 하고 전등을 바꿔 집안을 환하게 밝혔다. 교체한 싱크대에는 새 수저와 그릇을 채웠다. 다리가 아파 바닥에 앉기 힘든 어머니를 위한 식탁과 앞이 보이지 않는 땜보씨가 간편하게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전자레인지도 마련했다.
동문들의 뜻을 모으는 데 앞장선 11회 김주송 회장과 이덕희 총무는 서울에 살지만 친구를 돕기 위해 자주 고향을 찾고 있다. 16일 삽교고 선배가 운영하는 한 식당에서 만난 이들은 "아까 집에 가봤는데 어머니랑 아버지 얼굴이 많이 밝아지셨더라고요. 처음에 수리하러 갔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좋아보이셔요"라며 기뻐했다.
김 회장은 "땜보랑은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어요. 졸업한 뒤로도 종종 만났고요. IMF를 겪으며 사정이 어려워진 건 알고 있었는데 많이 아프다는 얘기를 듣고 당연히 우리가 나서야한다고 생각했어요. 다들 기쁜 마음으로 함께 해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어요"라며 빙 둘러 앉은 친구와 선후배들에게 애정 어린 목소리를 전했다.
▲ 친구가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낡은 집을 손봤다. ⓒ 삽교고총동문회
총동문회도 적극 동참했다. 신선균 재무국장은 처음 소식을 접한 뒤부터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했다. 집수리공사를 할 때는 전기·수도 등 각 분야에서 일하는 동문들을 섭외했고, 땜보씨를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하기 위한 사무업무도 도맡았다.
땜보씨는 "학교 다닐 때 잘 어울리던 친구들인데 이렇게 도움을 줘 정말 고마워요. 선후배들에게도 감사해요"라며 고마운 마음을 나타냈다.
"지난 2020년 눈 수술을 하고 뇌경색이 와 더 나빠졌어요. 앞을 볼 수 없게 돼 불편한 점이 많지만 친구들 덕에 이겨내고 있어요" 그가 씩씩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땜보씨는 오는 7월 눈 수술을 앞두고 있다. 이 총무는 그가 다시 세상을 또렷이 볼 수 있는 날을 그리며 삽교고 동문들이 참여하는 SNS에 '땜보야 힘내'라는 이름으로 응원메시지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때론 환히 빛나고, 때론 막막해지기도 하는 우리 인생에서 변함없이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벗이 있어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게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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