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아이에게 '니체의 시'를 선물 받았습니다
코로나시대 아이들을 위로하려고 시작한 시편지... 쓰면 쓸수록 사랑하게 됩니다
금요일 오후가 되면 교실에 혼자 조용히 앉아 하는 일이 있다. 내가 가르치는 4학년 아이들을 위해 시 한 편을 고르고 작은 편지를 쓰는 것이다. 매달 한 권씩 사 모은 시집을 뒤적이기도 하고, '시요일'이라는 어플을 살펴보기도 한다.
틈틈이 핸드폰에 저장해둔 시들을 다시 찾아보기도 하면서 시를 고른다. 시에서 마음에 남는 한 부분을 적는다. 그 아래 두세 문장으로 전하고 싶은 말을 쓴다. 시를 고르는 동안, 작은 편지를 쓰는 내내, 나는 아이들을 떠올린다.
매주 월요일 아침 수업을 시작하기 전 아이들에게 시를 읽어준다. 시 전문을 낭송한 후에는 시문구를 담은 작은 편지를 건넨다. 그렇게 한 주를 시작한다.
아이들 마음을 다독여주고 싶어서
언젠가 버스를 타고 가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교보문고 글판을 본 적이 있다. 대형 글판에는 비스와봐 쉼보르스카의 시 한 구절이 쓰여있었다.
지쳐있던 나에게 시는 다른 어떤 말이나 글보다 분명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나는 아이들도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를 교실 속으로 가져왔다. 코로나 때문에 많은 것을 양보하고 포기한 아이들에게 '어쩔 수 없다'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 마음을 다독여주고 싶었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좀처럼 줄지 않던 어느 날 나는 이런 편지를 썼다.
나는 아이들에게 계절과 날씨에 관한 시를 많이 읽어주었다. 바쁜 일과와 코로나로 우리는 계절의 흐름과 날씨의 변화를 의식하지 못한 채 하루를 보낼 때가 많다. 나는 아이들이 지금 이 계절, 이 날씨를 온전히 느끼고 감탄하길 바랐다.
어느 봄날엔 아이들에게 이해인의 시 <봄일기>를 읽어주고 시편지에 '너희는 선생님의 봄이야'라는 사랑 고백을 했다. 비가 내리던 날 즈음에는 박남준의 시 '깨끗한 빗자루'를 낭독하고 '빗줄기가 너희들의 마음속 걱정과 고민을 씻겨줄 거야'라고 위로하는 시편지를 주었다.
시편지는 우리의 추억을 모으는 일이기도 했다.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우연히 무지개를 본 날이 있었다. 선명하지 않아 무심코 지나칠 법한 무지개를 한 아이가 발견했다. 우리는 무지개가 잘 보이는 자리를 찾다 운동장 큰 벚나무 아래에 모여 앉았다.
붉게 익은 버찌가 달린 나뭇가지 사이로 반지처럼 동그란 모양의 무지개를 함께 바라보았다. 무지개를 가리키며 맑게 웃던 아이들. 나는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었다. 다음 월요일 아침 아이들에게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무지개>를 읽어주고 '무지개가 우리에게 보여준 희망을 오래도록 간직하자'라고 시편지에 써서 전했다.
때로는 교실 바닥에 떨어져 나뒹구는 시편지를 볼 때도 있다. 그럴 땐 솔직히 조금 섭섭하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 대부분은 시편지를 알림장, 수첩에 붙여놓거나 집게나 고리 등을 이용해 자기 나름대로 정성스럽게 모아둔다.
지난 스승의 날 아이들에게 받은 편지에는 유독 시편지 이야기가 많았다. 마음이 울적할 때 선생님이 주신 시편지를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아이, 시편지를 냉장고에 붙여두고 온 가족이 함께 본다는 아이, 시편지를 받으면 그걸 토대로 일주일을 살아간다는 아이가 있었다.
쓰면 쓸수록 더 사랑하게 되는 아이들
하루는 한 아이가 학교에 오자마자 내게 노란색 작은 편지 하나를 내밀었다. 아이는 쑥스러운 듯 미소를 보이며 선생님의 시편지에 대한 답장이라고 했다. 편지에는 니체의 시 <그대가 값진 삶을 살고 싶다면>과 함께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작은 편지를 건넸을 뿐인데 아이들은 이토록 아름답고 묵직하게 받아주었다. 예전에 나는 아이들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일을 썩 잘하지 못했다. 굳이 그것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게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학년이 끝나는 종업식이 되어서야 "얘들아. 사랑해"라는 말로 그동안 간직해온 마음을 전하곤 했다.
그런데 작년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여러 차례 등교가 미루어졌고,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아이들을 보고, 웃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이 갑작스럽게 줄어드는 상황을 경험하며 나는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사랑과 응원을 보내고 싶었다.
얼마 전 구병모의 소설 <바늘과 가죽의 시>를 읽다 나는 한 문장에 오래 머물렀다.
학기 초부터 시작했던 것이 어느덧 4개월이 지나 아이들에게 열일곱 번째 시편지를 건넸다. 며칠 전 아이들과 학교 가까이에 있는 숲에 갔다가 온 세상을 덮을 만큼 잎이 무성해진 나무들을 보고 여름이 왔음을 느꼈다. 오늘 아침 아이들에게 건넨 편지는 이랬다.
나는 앞으로도 시집이 놓인 책상 앞에 앉아 시편지를 쓸 것이다. 쓰면 쓸수록 아이들과 시를 더욱더 사랑하게 만드는 이 편지를 나는 쓰지 않을 수 없다.
틈틈이 핸드폰에 저장해둔 시들을 다시 찾아보기도 하면서 시를 고른다. 시에서 마음에 남는 한 부분을 적는다. 그 아래 두세 문장으로 전하고 싶은 말을 쓴다. 시를 고르는 동안, 작은 편지를 쓰는 내내, 나는 아이들을 떠올린다.
아이들 마음을 다독여주고 싶어서
언젠가 버스를 타고 가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교보문고 글판을 본 적이 있다. 대형 글판에는 비스와봐 쉼보르스카의 시 한 구절이 쓰여있었다.
두 번은 없다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므로 너는 아름답다
지쳐있던 나에게 시는 다른 어떤 말이나 글보다 분명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나는 아이들도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를 교실 속으로 가져왔다. 코로나 때문에 많은 것을 양보하고 포기한 아이들에게 '어쩔 수 없다'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 마음을 다독여주고 싶었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좀처럼 줄지 않던 어느 날 나는 이런 편지를 썼다.
안녕은 혼자를 뛰어넘는 말이야
안녕은 어제를 묻고 오늘 환해지는 일이지
- <우리는 안녕>, 박준
얘들아. 안녕? 오늘도 너희에게 안녕이라는 인사를 건넬 수 있는 것이 선생님에게는 커다란 기쁨이란다. 우리 환한 오늘을 만들자.
나는 아이들에게 계절과 날씨에 관한 시를 많이 읽어주었다. 바쁜 일과와 코로나로 우리는 계절의 흐름과 날씨의 변화를 의식하지 못한 채 하루를 보낼 때가 많다. 나는 아이들이 지금 이 계절, 이 날씨를 온전히 느끼고 감탄하길 바랐다.
어느 봄날엔 아이들에게 이해인의 시 <봄일기>를 읽어주고 시편지에 '너희는 선생님의 봄이야'라는 사랑 고백을 했다. 비가 내리던 날 즈음에는 박남준의 시 '깨끗한 빗자루'를 낭독하고 '빗줄기가 너희들의 마음속 걱정과 고민을 씻겨줄 거야'라고 위로하는 시편지를 주었다.
▲ 아이들이 모아 둔 시편지 ⓒ 진혜련
▲ 아이들이 모아 둔 시편지 ⓒ 진혜련
시편지는 우리의 추억을 모으는 일이기도 했다.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우연히 무지개를 본 날이 있었다. 선명하지 않아 무심코 지나칠 법한 무지개를 한 아이가 발견했다. 우리는 무지개가 잘 보이는 자리를 찾다 운동장 큰 벚나무 아래에 모여 앉았다.
붉게 익은 버찌가 달린 나뭇가지 사이로 반지처럼 동그란 모양의 무지개를 함께 바라보았다. 무지개를 가리키며 맑게 웃던 아이들. 나는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었다. 다음 월요일 아침 아이들에게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무지개>를 읽어주고 '무지개가 우리에게 보여준 희망을 오래도록 간직하자'라고 시편지에 써서 전했다.
때로는 교실 바닥에 떨어져 나뒹구는 시편지를 볼 때도 있다. 그럴 땐 솔직히 조금 섭섭하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 대부분은 시편지를 알림장, 수첩에 붙여놓거나 집게나 고리 등을 이용해 자기 나름대로 정성스럽게 모아둔다.
▲ 아이들이 써준 답장 ⓒ 진혜련
▲ 아이들이 써준 답장 ⓒ 진혜련
지난 스승의 날 아이들에게 받은 편지에는 유독 시편지 이야기가 많았다. 마음이 울적할 때 선생님이 주신 시편지를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아이, 시편지를 냉장고에 붙여두고 온 가족이 함께 본다는 아이, 시편지를 받으면 그걸 토대로 일주일을 살아간다는 아이가 있었다.
쓰면 쓸수록 더 사랑하게 되는 아이들
하루는 한 아이가 학교에 오자마자 내게 노란색 작은 편지 하나를 내밀었다. 아이는 쑥스러운 듯 미소를 보이며 선생님의 시편지에 대한 답장이라고 했다. 편지에는 니체의 시 <그대가 값진 삶을 살고 싶다면>과 함께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선생님은 제가 값진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시는 존재에요.
나는 작은 편지를 건넸을 뿐인데 아이들은 이토록 아름답고 묵직하게 받아주었다. 예전에 나는 아이들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일을 썩 잘하지 못했다. 굳이 그것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게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학년이 끝나는 종업식이 되어서야 "얘들아. 사랑해"라는 말로 그동안 간직해온 마음을 전하곤 했다.
그런데 작년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여러 차례 등교가 미루어졌고,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아이들을 보고, 웃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이 갑작스럽게 줄어드는 상황을 경험하며 나는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사랑과 응원을 보내고 싶었다.
얼마 전 구병모의 소설 <바늘과 가죽의 시>를 읽다 나는 한 문장에 오래 머물렀다.
사라질 거니까, 닳아 없어지고 죽어가는 것을 아니까 지금이 아니면 안 돼.
학기 초부터 시작했던 것이 어느덧 4개월이 지나 아이들에게 열일곱 번째 시편지를 건넸다. 며칠 전 아이들과 학교 가까이에 있는 숲에 갔다가 온 세상을 덮을 만큼 잎이 무성해진 나무들을 보고 여름이 왔음을 느꼈다. 오늘 아침 아이들에게 건넨 편지는 이랬다.
올여름의 할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
- <여름의 할일>, 김경인
우리 다른 사람의 상처와 아픔을 모른 척하지 않는 삶을 살자. 혹시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선생님께 이야기하렴. 선생님은 항상 네 편이야.
나는 앞으로도 시집이 놓인 책상 앞에 앉아 시편지를 쓸 것이다. 쓰면 쓸수록 아이들과 시를 더욱더 사랑하게 만드는 이 편지를 나는 쓰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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