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임금 및 단체협약 투쟁에 나선 레미콘 노동자들 ⓒ 건설노조
전국의 레미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뭉치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은 레미콘 노동자들과 함께하며 그동안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레미콘 제조사에서 생산하는 레미콘을 레미콘 믹서 트럭에 실어 건설 현장까지 운반하는 일을 하는 레미콘 노동자들은 덤프, 굴삭기 등 일반적인 건설기계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특수고용 노동자들이다. 애초에 레미콘 노동자는 레미콘 제조사들이 가지고 있는 레미콘 믹서 트럭을 운전하는 정규직 노동자였다. 그런데 레미콘 사 측이 산업재해, 차량 관리 등 각종 부담을 떠넘기기 위해 레미콘 노동자들에게 차량을 불하했다. 이때부터 레미콘 노동자들은 특수고용 신세가 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노동조합을 대하는 사측의 전형적인 행태다. 레미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교섭을 요구하면 레미콘 제조사들은 교섭을 회피하거나 시간 끌기로 일관한다. 사측을 압박하기 위해 파업이나 투쟁을 할라치면 사측은 집단 해고를 자행한다. 노동자들이 반발하면 집단 해고가 아니라 정당한 계약 해지라는 식으로 억지를 부린다. 그리고 대체 차량을 동원해 공장을 가동하려 하고, 이를 저지하면 업무 방해로 고소하고 손해 배상 청구 소송으로 압박한다.
교섭 거부, 집단 해고, 대체 차량 투입, 손해 배상 청구 등 노동조합을 말살하기 위한 종합선물세트가 펼쳐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자기네 소관이 아니라며 수수방관하고 경찰은 사측과 손을 잡고 노동자 탄압에 동참하기 일쑤다.
레미콘 노동자들 또한 이러한 현실을 잘 알기에 노동조합 결성을 많이 망설였다. 그러나 가만히 있기에는 현실이 너무 팍팍했다. 건설 현장에 레미콘을 운반하는 횟수에 따라 받는 운반비가 곧 월급인데, 다른 것은 다 올라도 운반비는 제자리걸음이었다. 회사 눈치를 살피며 하소연하고 읍소해야 1회전 운반비를 겨우 몇백 원 올릴 수 있었다.
회사 관리자들의 반말과 무시는 기본이요, 조금이라도 사측의 심기를 건드리면 멀고 힘든 현장에만 골라 가야 했다. 현장에서 언제 레미콘을 요청할지 모른다는 핑계로 회사가 퇴근시켜주지 않으면 일이 없어도 하염없이 대기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건설 현장이 밤샘작업이라도 하면 꼬박 같이 밤새며 쉼 없이 레미콘 타설을 한 경험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했다.
이러한 레미콘 노동자들의 처지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은 건설 현장에 늘어나는 녹색 깃발이었다. 건설노조에 가입하는 건설 노동자들이 많아지면서 레미콘 노동자들도 현장에서 건설노조를 마주할 일이 많아졌다. 건설 공사가 끝나면 일자리도 사라지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노가다'라고 불리는 건설 노동자들이 건설노조에 가입하고 투쟁하며 권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특히나 레미콘 타설 공정을 함께 진행하는 콘크리트 펌프카 노동자와 타설 노동자들이 건설노조로 조직되어 있는 지역에서는 그 영향이 더욱 컸다. 건설노조 또한 레미콘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결과, 지역의 전체 레미콘 노동자들이 건설노조로 조직되어 투쟁을 통해 사측과 임단협을 체결하는 성과까지 나타나고 있다.
2019년에는 울산의 레미콘 노동자들이 두 달이 넘는 총파업을 통해 운반비를 인상했다. 2020년에는 부산 지역 레미콘 노동자들 전체가 총파업 투쟁을 통해 사측을 교섭 자리에 끌어내고 임단협을 쟁취할 수 있었다. 뒤이어 경남 지역 레미콘 노동자들도 교섭과 투쟁을 통해 사 측과 임단협을 체결하였다. 레미콘 노동자들이 똘똘 뭉치고 건설노조가 온 힘을 다해 이룬 성과였다.
이러한 흐름은 대구·경북, 광주·전남, 충남, 강원, 수도권까지 이어지고 있다. 레미콘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은 점점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라고 해서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투쟁해서 권리를 되찾고 있다.
총파업을 통해 임단협을 쟁취한 부산지역 어느 레미콘 노동자의 다음과 같은 글은 레미콘 노동자들이 나아갈 길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 생길까 봐 속아주고 치사해서 모른 척하고 더러워서 져주고 하면 결국에는 어떠한 취급을 당해도 싼 인생입니다. 되돌아보니 참으로 싸게 살아왔습니다. 사측의 온갖 협박과 갑질로 제대로 된 목소리 한번 내지도 못하고 사측의 갑질에 힘없이 이끌려 살아왔던 세월. 어떻게든 팍팍한 현실에서 벗어나자고 앞만 보고 달려왔던 시간. 새벽녘 잠든 어린 자식 얼굴 쳐다보고 새벽 어두운 길 나서는 우리. 말도 안 되는 운반비에 그저 회전수만 많으면 돈 된다고 달리고 또 달리고···.
가족과의 저녁 시간은 그저 꿈같은 일이고, 불어터진 짜장면 한 그릇에 그마저도 잘 먹었다고 트림 한 번 하고 차에 오르며 언제 끝날지 모를 운송길에 나서던 우리. 자정 시간 다 되어 피곤함에 지친 몸뚱어리를 이끌고 집으로 가는 시간만이 유일하게 입가에 웃음을 짓고. 돌고 도는 레미콘 인생, 아들딸 입학식 졸업식 사진 속에 우리 모습은 안 보이고. 우리들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일까? 돈 버는 기계? 사측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머슴? 일벌, 일개미처럼 부지런히 일했더니 사측 자본가 놈들 살만 찌웠고 우리의 삶은 나아지지 않고 보다 못한 아내는 반찬값 번다고 일당치기 나서고.
조합원 동지들, 이제는 이러한 일들이 반복돼서는 안 됩니다. 동지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습니다. 지난날 힘없고 나약했던 우리가 아닙니다. 단결과 투쟁으로 사측 자본들을 속죄의 길로 끄집어내야 합니다. 지금까지도 임단협 교섭에 불성실하게 대하는 사측을 단죄합시다. 아직도 우리를 저들의 도구로 보는 사측을 깨치며 나가고 단결 투쟁만이 살길임을 우리 가슴속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소리쳐 질러도 꿈쩍도 하지 않는 사측 자본가들에게 이제는 단결된 행동을 보여줄 때입니다. 지난날을 배상하라는 게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정당한 운송비 및 수당을 지급하라는 게 우리의 요구입니다. 수십 년을 부당하게 해왔던 악질적이고 병폐된 제도를 버리고 상생을 하자는 제의마저도 한 달 휴업, 내용증명 등으로 우리를 겁주고 윽박지르는 사 측 자본가들. 뭉칩시다. 더욱 옹골차게 뭉쳐서 하나된 단결로 투쟁의 길로 나아가 승리하여 쟁취합시다! 조합원 동지들 투쟁의 힘찬 팔뚝을 걷어붙입시다. 투쟁!"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홍원표 건설노조 조직국장이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7,8월호 '여기, 현장' 꼭지에도 실렸다. http://www.workingvoice.net/xe/index.php?mid=field1&document_srl=312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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