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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의 미학

상추 안 먹던 내가 텃밭 농사를 하면서 상추 예찬론자가 되었다

등록|2021.07.03 17:59 수정|2021.07.03 17:59
아침에 삼겹살, 그게 바로 나다. 삼겹살의 장점은 맛있는 간편식이라는 것이다. 삼겹살이 맛있다는 것을 모르면 간첩일 테고 (말이 그렇지, 간첩이라고 어찌 모를까.) 그렇다면 삼겹살이 간편식이라고? 이 말에는 많은 한국인이 동의하지 않을 수 있겠다.

삼겹살이라 하면 상추, 마늘, 고추, 무생채, 기름장, 된장찌개가 기본 세트다. 친구는 삼겹살에 무조건 콩나물무침이다. 내가 아침에 삼겹살로 간편식이 가능한 이유는 오직 삼겹살만 먹기 때문이다. 특히 상추는 안 먹는다. 오히려 깻잎이나 당귀나 셀러리처럼 강한 맛을 좋아한다. 거기에 비에 상추는 슴슴해 매력이 없다.

한 장 한 장 안 찢어지게 여러 번을 씻어야 하는 것도 귀찮다. 흐르는 물이어야 하니 그 물의 양이 몇 바가지는 되고 마시지도 못하고, 그냥 개수대에 쏟아버리기도 아깝고 해서 통에 모아 두었다가 재활용한 기억도 있다. 쌈을 싸 먹으면 손에 물 천지이다. 손의 물기를 닦아가며 먹는 것도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입에 들어가는 소득에 비해 뒤처리가 귀찮아 한두 번 먹으면 금세 상추의 한계효용에 다다른다.

한반도 사람들은 상추쌈을 진짜 좋아한다. 고기를 먹기 위해 쌈을 싸는 것이 아니라 쌈을 싸 먹기 위해서 고기를 먹는 게 아닌가 생각 들 정도이다. 나는 고기를 상추에 싸 먹는 사람을 이해 못 했다. 고기 맛 떨어지게 왜 저러지? 회도 그렇다. 튀김옷 입히듯 초장에 푹 담그는 것도 당황스러운데 또 거기다가 상추까지 싸 먹는 것은 테러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자신의 몸뚱이를 내어 주시는 고기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상추 예찬론자가 되다
 

상추 뜯기상추 잎을 뜯으면 또 자란다. ⓒ 황승희

   

또 자라는 상추싹 뜯어왔는데 일주일 후에 가보니 고대로 또 다 자라 있었다. ⓒ 황승희


그런데 텃밭 농사를 하면서 나는 상추 예찬론자가 되었다. 상추는 다른 농작물과 달리 수확이 한 차례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여러 나날을 계속 수확을 할 수 있다. 상추 잎을 뜯으면 또 자란다. 싹 뜯어왔는데 일주일 후에 가보니 고대로 또 다 자라 있었다.

바로 일주일 전의 모습으로 완벽하게 변신해 있었던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과거의 똑같은 공간으로 돌아가는 타임 루프 식의 영화가 생각났다. 이거 뭐지? 오늘 또 한 아름을 수익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주식으로 치면 매수와 함께 오르기만 하는 종목이라고나 할까.

물도 주고 때때로 하우스 문을 열어서 바람도 지나가게 해주었다. 그래서인가 이것은 지금까지 내가 먹어봤던 상추가 아니었다. 이제는 상추를 간식처럼 먹는다. 아침이면 냉장고의 상추를 식탁 위에 꺼내놓고 하루 종일 왔다 갔다 하면서 비스킷 집어먹듯이 먹는다. 그냥 맨밥에 된장만 쪼꼼 발라서도 싸 먹는다.

상추의 종류에는 청상추, 적상추 그리고 잎이 너풀거리는 꽃상추가 있다. 우리 상추는 다른 상추에 비해 가장 순하고 수분이 많다고 하는 청상추이다. 색깔이 초록 초록하고 조직이 얇아 야들야들하다. 그래서 더 이쁘다. 어지간한 화초 보다도 이쁘다.

밭에서 엄마 한 봉다리, 나 한 봉다리를 담고 별도로 두 봉다리를 더 담아서 상추 배달 투어를 한다. 아직 회사 퇴근 전인 친구의 집 문고리에 걸어놓았다. 직장에서 지친 하루였을 친구가 문 앞 파란 상추를 보고 입꼬리가 올라갔으면 좋겠다.

퇴근 시간이 지나면서 상추를 발견한 친구로부터 고맙다는 이모티콘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상추 비빔밥 먹는 사진을 보내주는 친구도 있었다. 사실 고마워할 건 없다. 왜냐면 줄 수 없는 제일 좋은 것, 그건 내 거니까. 그건 바로 상추 먹는 기쁨도 아니고 나누는 기쁨도 아닌 상추 뜯을 때의 그 감성이다.
 

친구에게 상추 배달친구가 문 앞 파란 상추를 보고 입꼬리가 올라갔으면 좋겠다. ⓒ 황승희

 
"상추야, 고맙다. 잘 먹을게. 이렇게 키우느라 일주일 애썼다."

안구가 정화될 정도의 초록 밭 한가운데서 낮은 자세로 저절로 대화가 나온다. '톡' 뜯으면 은은한 상추 향이 코를 건드린다. 손톱에 낀 검은 풀 때를 씻어내고도 남아있는 그 향이 참 좋다. 그 향과 감사 인사와 초록색과 한 몸이 되는 그 감성 터짐은 어떻게 나눠 줄 방법이 없다. 오롯이 내 것이다.

엄마와 아빠와 내가 언제까지 텃밭 농사를 할 수 있을까? 올해가 마지막이 될까? 그래도 내년까지는 가능하겠지? 더 추억을 만들고 싶다는 나의 기도를 어느 신이라도 괜찮으니 들어주시면 참 감사할 텐데. 제발, 그리고 부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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