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시골에서 그때 그 기사 쓴 사람, 저희입니다"
[지리산활동백과 - 마치며] 18명의 삶을 기록한 푸른과 자야를 만나다
▲ 함양의 까페빈둥에서 만난 지리산활동백과의 작가 두 사람. 왼쪽부터 자야, 푸른이다.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2020년 봄이었다. 코로나19로 익숙했던 모든 것이 허물어지던 그때,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이하 센터)는 지리산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확진자 수에 따라 하루하루의 계획과 일정이 달라지는 상황에서 매달 두 번씩 꼬박꼬박 인터뷰를 진행한 것은 '행운'이란 말을 빌리지 않고서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을 가린 채 만났으나 그로 인해 소통이 제한되지는 않았다. 보이고 들리는 게 약한 대신, 더 섬세하게 집중하고 경청하는 것이 오히려 가능했다고 할까.
마지막 페이지는 인터뷰 여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며 글을 써온 푸른과 자야의 몫으로 돌린다. 늘 각자의 자리에서 녹음기와 노트북을 앞에 두고 조용히 귀 기울이던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한 공간에 마주앉아 이야기할 준비를 하고 있다. 먼저 이 작업을 제안받은 첫 순간으로 돌아가 그때 그들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들여다본다.
기쁘고도 고단했던 '기록노동'의 뒷이야기
"내가 할 수 있고 또 좋아하는 일이니까 기꺼이 받아들였죠. 마침내 시골에서도 돈을 받고 글을 쓰는구나 싶어서 반가운 마음도 컸고요(웃음). 지역에서는 글 쓰고 원고료 받겠다는 생각 자체를 스스로 비우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유독 글에 대해서만 그런 관행을 당연시하는 것 같아 그 점이 아쉽기는 했어요. 글쓰기야말로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드는 '노동'인데 말이에요." (자야)
자유기고가로 시작해 잡지와 단행본 편집자를 거쳐 줄곧 출판 관련 프리랜서로 일해온 자야에게, 글쓰기란 얼마간 직업적인 성격을 띤다. 그에 비해 푸른은 순수하게 글쓰기를 좋아하고 즐긴 것에 가깝다. 학교 다닐 때부터 글 과제가 어려워도 좋았다는 그는 "꾸준히 쓰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기에 센터의 제안이 기뻤다"고. 다만 "뭘 믿고 나에게?"라는 의문이 살짝 들었다는데, 알고 보니 센터 담당자는 그동안 푸른이 작성했던 에세이 형식의 글들을 보고 '발탁'한 거라 한다.
지난해 5월부터 올 6월에 이르기까지 몇 달의 휴지기를 제외하고 두 사람은 달마다 평균 한 꼭지씩 인터뷰 원고를 작성했다. 세상 어디에도 쉽게만 쓰이는 글은 없지만, 가치관이나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 혹은 가까이에서 오래 지켜본 대상에 관한 글을 쓸 때는 조금 수월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반면 내가 잘 알지 못하거나 사람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주제를 다루는 경우, 나중에 뿌듯함은 남을지 몰라도 쓰는 과정에서 겪는 힘듦과 부담이 상당하다. 두 사람에게는 어떤 기사가 유독 마음에 남아 있고 또 그 이유는 무엇일지가 문득 궁금했다.
"하동 '지리산산악열차반대 대책위원회' 인터뷰 기사 쓸 때 정말 힘들었던 게 기억나요. 관련 정책과 법을 이해하기 위해 계속 자료와 다른 기사들을 찾아보면서 공부하듯이 썼어요. 또 담당 부처와 명칭과 통계수치 등 단어 하나하나가 정확해야 해서, 인터뷰라기보다 시사 취재 글을 쓰는 느낌이었죠. 그거 쓰는 동안 제가 식구들에게 엄청 히스테리를 부리고 머리를 쥐어뜯었던 것 같아요(웃음). 다 쓰고 나니까 후련하긴 하더라고요." (푸른)
"저는 구례 '자연스레 자연농'이나 '지구를위한작은발걸음'처럼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저와 비슷한 분들에 대한 글을 쓸 때 만족도가 높았어요. 특히 자연농 인터뷰 끝나고 밭에 가서 둘러본 시간이 마음에 오래 남았죠. 제게는 글을 쓸 때 현장 감각이 중요한 것 같아요. 단편적인 이야기만으로 기사를 쓰기엔 뭔가 부족한 듯싶다가도, 그가 작업하는 현장을 보면 글의 물꼬가 트이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자야)
두 사람이 돌아가며 쓴 인터뷰 기사는 센터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그리고 <오마이뉴스>에 정기적으로 실렸다. 간혹 <오마이뉴스> 기사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오르면 여느 때와 달리 반응이 뜨거워지곤 했는데, 특히 환경이나 퀴어 이슈 등 우리 사회가 아직 수용하기 어려워하는 내용일수록 조회 수가 오르고 밑에 달리는 댓글들도 과열되기 일쑤였다. 논쟁적 주제를 다룬 만큼 종종 화제의 중심에 서곤 했던 푸른의 말을 들어본다.
"지리산산악열차 기사 댓글 중에 '지리산을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모두가 지리산을 즐길 수 있도록 개발해야 한다'는 내용이 많아서 놀랐어요. 아직도 개발을 성장이라고 믿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게 신기했죠.
또 '지리산을 더럽히지 말라'는 악플들이 눈에 띄었는데 정말 지리산을 더럽히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이면에 어떤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긴 한 걸까 의문이 들더라고요. 보통은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잖아요. 아, 그리고 너무 심한 악성댓글은 신고도 하고 혼자 속으로 욕도 좀 했어요(웃음)." (푸른)
푸른 "필요한 일 중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을 해요"
▲ 이야기를 하고 있는 푸른의 모습이다.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지리산활동백과에 수록된 사람들은 주요 매체에 흔히 노출되는 '귀농귀촌 성공사례'의 주인공이나 청정한 경관을 벗 삼아 은둔자처럼 살아가는 '자연인'과는 거리가 멀다. 도시인의 욕망과 환상이 투사된 이미지 대신 시골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그들은, 다른 주민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하면 이 사회의 변방인 시골에서 '먹고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다만 나와 내 가족만이 아니라 다 같이 '잘' 사는 길을 모색하고, 작게라도 변화의 첫걸음을 먼저 내디디면서 함께할 이들을 손짓한다는 게 다를 뿐이다. 지리산권 곳곳에 생기를 불어넣는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우리는 '활동가'라 부른다. 푸른과 자야 역시 이들의 동료이자 선후배로 각자의 영역에서 움직여왔다.
"저는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게 엄청 많았고 웬만한 건 한 번씩 해봤어요. 발을 조금 넣었다가 빼는 식으로(웃음). 그중 제가 발 빼지 않고 길게 이어가고 있는 게 '어린이'와 '교육' 활동인 거예요.
처음 산청에 온 것도 대안학교 때문이었어요. 거기서 자원교사로 일하다 나중에 정식교사가 되긴 했는데 안 맞는 게 많아서 바로 그만두었어요. 그러고 나서 마음 통하는 분들과 산청 경호강 근처에서 '방정환하늘학교'라는 작은 초등대안학교를 운영했죠. 두세 명의 아이들과 몇 명의 어른들이 같이 살면서 관계하고 배우는 곳이었어요. 일 년만에 해체했지만 제게는 그 시간이 참 즐겁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푸른)
대안학교를 직접 만들어 운영하던 그때 비로소 "산청에 산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는 푸른이 학교의 행방과 상관없이 산청을 떠나지 않겠다 결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학교가 정리되면서 그다음 거주지를 물색해야 했던 시기에 현재의 남편과 연애를 시작하고 곧바로 결혼에 이르게 된 것 또한, 그가 자연스럽게 산청에 뿌리내리는 한 과정이었다.
이처럼 새로운 인연들과 만나고 엮이면서 활동을 모색하던 푸른은 올해 '다시 만난 어린이'라는 제목의 작은변화 지원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5월 5일 99회 어린이날을 맞아 개최한 '사랑하는 내 동무야' 행사에는, 산청과 인근 지역에서 많은 어린이와 어른이 참가해 같은 눈높이에서 따뜻하고 즐겁게 어울리는 시간을 가졌다. 또 하반기에는 어린이의 권리를 어른에게 알려주는 '어린이 알아가기 강연회'도 열 계획이다.
"제가 어린이와 교육이라는 주제를 계속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하긴 어려워요. 초등학교 때 운동선수를 하면서 폭력적인 문화를 수시로 경험한 게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고요. 여러 가지가 작용했을 텐데, 아무튼 그 시절의 중요성이 예민하게 느껴지고 적어도 나 한 사람은 어린이들과 함께 잘 사는 법을 고민하며 살아야겠다 싶었죠. 또 제가 가진 에너지나 마음으로 그들을 잘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겠다는 믿음도 있고요." (푸른)
어린이에 대한 기존의 시선과 태도를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그를 가리켜, 주변에서는 '좋은 일' 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정작 그는 자신의 활동을 지금 여기에서 함께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일로 여길 뿐이다. 더군다나 제아무리 필요한 일이라 한들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면 그는 진작에 발을 '뺐을'지도 모른다.
"필요한 일 중에 제가 하고 싶고, 할 수 있고, 재미있다고 느끼는 걸 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돈 벌고 살래?'라고 하면 솔직히 멈칫하긴 하는데요. 그럴 때 제가 서울에서 지치고 힘들고 아파서 고향으로 내려왔던 것을 떠올리면 큰 욕심 없이 살고 싶어져요. 저는 정말 이런 세상에서 버티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푸른)
자야 "일상과 활동이 사이좋게 만나 서로 스며들 때"
▲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센터의 담당자인 누리, 푸른, 자야가 앉아있다.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산청에 정착한 지 이제 4년 차에 접어든 푸른에 비해 자야는 함양에 내려와 산 세월이 꽤 길다. 시절인연에 따라 금산과 남원의 외딴 '오지들'을 거쳐 함양에 흘러들어온 것이 2009년 여름이라니, 어느새 십 년이 훌쩍 넘었다. 그러나 함양에 와서도 처음 몇 년은 도시에서 하던 일에 주력했기에 서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지역에서는 기껏해야 집과 상림과 도서관과 시장을 오가는 게 전부였다는데.
"그러다가 점점 텃밭 일과 시골길에 빠져들고, '카페빈둥'에서 지역 사람들을 하나씩 알아가고, 그걸 계기로 내가 할 수 있는 뭔가를 '여기'에서 하게 되면서 현재의 생활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전에는 일부러 일을 만들어서 도시에 갔다면, 몇 년 전부터는 차 타는 것도 싫고 도시에 머무는 자체가 힘들어서 일을 피해왔어요. 그러다 보니 그동안 직업적으로 해온 일거리가 차츰 줄어들면서 지금은 주업과 부업과 알바의 경계가 희미해진 상태인데, 이게 묘하게 안정되고 느긋한 느낌을 주네요(웃음)." (자야)
조금씩 지역 사람들과 관계를 트고 확장해간 그는 지난 몇 년 사이 마음수련과 토종씨앗과 책을 매개로 모임을 구성해 다양한 활동을 벌였고, 올해는 '걸으면서 뭐라도'라는 지원사업을 맡아 하는 중이다.
'걷는 기쁨과 자유의 회복'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 이 사업을 통해, 그는 몇몇 사람들과 함양읍 보행환경 조사 작업을 시작해 얼마 전 상반기 활동을 끝냈다. 또 한 달에 한 번은 여럿이 함께 모여 필봉산과 상림을, 담장 아래 꽃들이 어여쁜 운림리 골목길을, 그리고 한 번 가본 적 없는 읍내 동네들과 그 사잇길을 걷는다.
"걷기는 기후위기 시대에 그 중요성이 강조되는 활동이지만, 무엇보다 걷기가 나의 일상이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사업으로 추진해볼 마음을 먹은 것 같아요. 공적 활동이라 해도 첫걸음은 자기 자신의 관심과 기질과 생활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해요.
다만 활동을 하다 보면 목표가 커지기도 하고 없던 비전이 생기기도 하죠. 이 사업도 다른 사람들이 걷기의 즐거움과 의미를 알게 되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에서 출발했지만, 하다 보니 점점 욕심이 나더라고요. 구례처럼 차없는거리도 하고 싶고, 장기적으로는 읍에서만이라도 모든 사람이 차를 놓고 걸어 다니는 그런 교통체계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고도 싶고." (자야)
도시에서는 자신의 '일상'과 '활동'이 제대로 소통하거나 융화하지 못했음을 그는 기억한다. 그럴 때 '나'라는 존재는 곧잘 덜그럭거리며 소음을 내다가 결국엔 어딘가 어긋나거나 부서지곤 했다. 그가 자신의 삶 안에서 일상과 활동이 사이좋게 만나 서로에게 스며들기를 바라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다행히 시골이어서 그게 조금쯤은 더 가능할 거라고, 힘들게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거라고 그는 믿고 있다.
원하는 대로 성장하고 나이 들어가기를
일 년도 어느새 절반이나 흘러간 지금, 활동백과 기록 작업은 마무리됐지만 두 사람은 전보다 더 분주하고 들썩거리는 눈치다. 아닌 게 아니라 푸른은 "눈 뜨면 출근, 눈 감아야 퇴근일 정도로 일이 많고 바쁘다" 한다.
"시부모님은 제가 돈 되게 많이 버는 줄 아실지도 몰라요(웃음). 주어진 일들을 신나게 하고는 있는데 너무 포화상태라 이제는 균형을 잡아야 할 것 같아요. 활동도 하고 돈도 적당히 벌고, 집안일 돌볼 시간도 있으면 좋겠어요." (푸른)
"제가 운영하는 1인출판사에서 무려 4년 만에 두 번째 책을 출간하게 되어서 요즘 좀 바빠졌어요. 여름 안에 책이 나올 예정이니 많이들 사주시면 좋겠네요(웃음). 지금까지는 출판사 일을 너무 띄엄띄엄했는데 앞으로는 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나, 두 번째 책 팔아서 얼른 세 번째 책 내야지, 그러고 있어요." (자야)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는데 빗줄기가 거세어진다. 세 시간에 걸쳐 나눈 이야기들이 축축한 공간을 떠돌다 사라지는 가운데, 유독 어떤 단어와 문장들은 귓속으로 흘러들어 찰랑대는 것이 느껴진다. 이를테면 "20대 초의 내게 쏟아진 훈계들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돌아보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인 게 더 좋은 선택이고 결정이었다"는, "나와 세상 사이에 두려움과 단절 대신 사랑과 연결이 더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잘 늙어가고 싶다"는, 그런 말들.
다음에 어디서라도 두 사람을 만나게 되면 "자신의 선택과 결정을 믿고 존중하는 사람"은 얼마나 더 단단하게 성장해가고 있는지, "사랑과 연결 안에서 나이 들어가고자 하는 이의 삶"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 중인지를 찬찬히 살펴보고 싶다. 어쩐지 지금보다 더 근사하고 충만한 모습일 것 같아, 상상만으로도 흐뭇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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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자야
사진 | 임현택
기획/진행 | 누리
Author 자야
새벽 요가, 산책길의 노래, 지치지 않을 정도의 텃밭일, 마음과 마음의 이어짐, 용기 있고 다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것, 을 좋아하는 함양 주민입니다.
Author 푸른
내 이름도 별명도 살고 싶은 모습도 '푸른'. 나는 따뜻하거나 뜨거운 사람.
어린이의 벗 되어 살고 싶다. 어린이 해방을 꿈꾸며 산청에 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 담당자가 두 사람과 인터뷰한 내용을, 푸른이 풀고 자야가 3인칭 시점에서 구성해 작성한 것입니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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