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도, 아이도 화장실 사용 시간이 길어진 이유
까딱하면 빠지는 유튜브 시청의 늪... 나부터 잘하자
'이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온 노래가 뭐였지?' 궁금한 게 생기면 자연스럽게 유튜브에서 검색한다. 유튜브는 충실한 비서처럼 바로 찾아준다. 그 다음날, 다시 유튜브를 클릭하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여러 OST가 메인 화면에 뜬다. 내가 클릭했던 걸 잊지 않고 '이거, 관심 있으시죠?' 하고 스윽 들이민다.
엄마도 아이도 빠지기 쉬운 그 '늪'
켄 리우의 <종이동물원> 안의 단편 '천생연분'은 인공지능이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추천해 주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공지능 기계인 '틸리'는 주인공이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주고 좋아할 만한 이성을 추천해 준다. 주인공 옆집에 사는 제니는 '틸리'가 단순히 궁금한 것만 알려 주는 게 아니라 뭘 생각해야 할지도 알려 준다고 말한다.
주인공은 제니를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이라 여긴다. 며칠 후, 틸리가 추천해 준 이성과 틸리가 제안한 음식을 먹으며 틸리가 주도하는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주인공의 머릿속에 갑자기 제니의 질문이 떠올랐다.
"당신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알아요?"
순간 짜증이 난 주인공이 '틸리' 기능을 끄자마자, 데이트는 엉망이 된다. 이 소설 속 미래가 아주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유튜브가 내가 봤던 영상과 비슷한 영상을 추천해 주면 별생각 없이 그 속에 파묻혀 시간을 보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버스를 기다릴 때 같은 잠깐의 짬이 생길 때, 화장실에서 일을 볼 때, 잠이 오지 않을 때는 나도 모르게 유튜브의 추천 영상을 클릭한다. 화장실에서 해결해야 할 일은 진작에 끝났는데도 유튜브를 보며 화장실에 오래 머문다. 잠이 안 와서 유튜브를 본 건데 유튜브를 보니 잠이 더 안 오고, 잠이 안 오니 또 유튜브를 보다 훌쩍 흐른 시간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란다.
어른도 이러는데 하물며 아이는 어떨까. 코로나19로 줌(Zoom) 수업이 일상화되면서 어쩔 수 없이 아이용 태블릿 PC를 구입했다. 학교에서는 줌 수업을 할 때 부모님이 옆에 있으면 집중이 안 될 수 있으니 부모님이 없는 조용한 곳에서 수업을 듣게 해달라고 했다. 아이는 자기 방에서 문을 닫고 줌 수업을 한다. 한 번은 수업 시간이 끝났을 것 같은데도 나오지 않아 문을 빼꼼 열어보니 유튜브를 하고 있다.
"어, 딱 걸렸어. 수업 안 하고 유튜브 보고 있네"라고 하니 아이는 후다닥 영상을 끄며 "아니야. 이거 수업 때 선생님이 보라고 한 영상이야"라고 대꾸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학교에서 링크 걸어준 유튜브를 본 다음 그 아래 추천 영상을 보고 또 다른 영상을 이어서 본 거였다. 아이가 걸러지지 않은 많은 정보에 노출되는 게 싫어 핸드폰도 사주지 않고 유튜브 시간도 제한했던 나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만 같다.
잘 쓰면 유용한데... 조절이 참 어렵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이런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아이가 베이킹에 흥미를 갖게 됐다. 난 요리에 관심이 없어 아이에게 별 도움을 줄 수 없었는데 아이는 스스로 유튜브를 찾아보며 빵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비교적 쉬운 카스텔라만 만들었는데 유튜브의 추천 영상을 보며 다른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케이크, 스콘, 식빵, 크로아상, 소보로빵, 머랭쿠키, 초코쿠키 등을 만들었는데 어떤 건 맛있었지만 어떤 건 먹기 힘들었다. 그러면 아이는 다시 카스텔라를 만들며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고 또다시 새로운 빵에 도전했다. 지금은 방역 수칙을 지키며 학교도, 학원도 다니고 있지만 아무 곳에도 갈 수 없어 집에만 있던 그 시간에 유튜브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갑갑하다.
나 역시도 그렇다. 필라테스 학원을 다니기가 조심스러워 작년부턴 집에서 유튜브를 보며 홈트레이닝을 한다. 처음엔 어떤 강사가 하는 영상이 나에게 맞는지 몰라 추천 영상을 이것저것 눌러 보며 내키는 대로 했는데, 그 결과 나에게 맞는 채널을 찾을 수 있었고 지금은 그 채널에서 추천해 주는 운동을 아침마다 열심히 하고 있다. 매일 집에서 운동하니 학원에 다녔을 때 보다 근육이 더 붙었다.
난 평소에 음악을 들으며 일을 하는데 몇 달 전부터는 '공부하면서 듣기 좋은 음악'을 유튜브에서 검색해 듣는다. 한번 그 키워드로 검색을 했더니 추천 영상으로 공부하면서 듣기 좋은 디즈니 음악, 지브리 음악, 팝송 모음, 피아노 연주 음악 등이 주르륵 화면에 노출됐다. 그 영상들을 하나씩 돌려 가며 듣는다. 꼭 카페에 온 것 같고 지겹지 않아 좋다.
결론은, 나부터 잘 하자
대부분의 기술이 그렇듯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득이 될 수도, 실이 될 수도 있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에게 유튜브 알고리즘에 대해 설명하고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니 "나 요즘 유튜브 잘 안 봐서 몰라" 하고 발뺌을 한다.
"엄만 유튜브 알고리즘 때문에 계속 유튜브를 보게 되는 거 있지. 넌 어때?"라고 질문을 바꾸니 역시나 대답한다.
"내가 본 영상과 비슷한 영상이 쭉 떠서 그런 걸 다 보게 돼. 영상이 별로 재미없어도 또 재밌는 게 올라올 수도 있으니까 구독을 누르지. 그런데 나중에 알림 온 걸 보면 '어? 내가 이런 걸 구독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구독 취소를 해. 휴, 한 마디로 귀찮아."
'귀찮은 걸 왜 보니?'라고 핀잔을 주고 싶지만 꾹 참는다. 오늘도 아이는 아침부터 화장실에 가서 나오질 않는다. 아이도 나처럼 큰일을 보러 화장실에 갈 땐 핸드폰을 들고 간다. 십 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 걸 보니 유튜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게 분명하다.
뭐라고 하려다가 꼭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잔소리를 삼킨다. '나부터 잘해야지' 생각한다. 나부터 유튜브 시청의 기준을 잡고 아이를 지도해야 내 말이 조금이나마 아이 맘에 가 닿을 게 분명하다.
엄마도 아이도 빠지기 쉬운 그 '늪'
▲ 아이는 자기 방에서 문을 닫고 줌 수업을 한다. 한 번은 수업 시간이 끝났을 것 같은데도 나오지 않아 문을 빼꼼 열어보니 유튜브를 하고 있다. ⓒ elements.envato
켄 리우의 <종이동물원> 안의 단편 '천생연분'은 인공지능이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추천해 주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인공은 제니를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이라 여긴다. 며칠 후, 틸리가 추천해 준 이성과 틸리가 제안한 음식을 먹으며 틸리가 주도하는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주인공의 머릿속에 갑자기 제니의 질문이 떠올랐다.
"당신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알아요?"
순간 짜증이 난 주인공이 '틸리' 기능을 끄자마자, 데이트는 엉망이 된다. 이 소설 속 미래가 아주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유튜브가 내가 봤던 영상과 비슷한 영상을 추천해 주면 별생각 없이 그 속에 파묻혀 시간을 보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버스를 기다릴 때 같은 잠깐의 짬이 생길 때, 화장실에서 일을 볼 때, 잠이 오지 않을 때는 나도 모르게 유튜브의 추천 영상을 클릭한다. 화장실에서 해결해야 할 일은 진작에 끝났는데도 유튜브를 보며 화장실에 오래 머문다. 잠이 안 와서 유튜브를 본 건데 유튜브를 보니 잠이 더 안 오고, 잠이 안 오니 또 유튜브를 보다 훌쩍 흐른 시간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란다.
어른도 이러는데 하물며 아이는 어떨까. 코로나19로 줌(Zoom) 수업이 일상화되면서 어쩔 수 없이 아이용 태블릿 PC를 구입했다. 학교에서는 줌 수업을 할 때 부모님이 옆에 있으면 집중이 안 될 수 있으니 부모님이 없는 조용한 곳에서 수업을 듣게 해달라고 했다. 아이는 자기 방에서 문을 닫고 줌 수업을 한다. 한 번은 수업 시간이 끝났을 것 같은데도 나오지 않아 문을 빼꼼 열어보니 유튜브를 하고 있다.
"어, 딱 걸렸어. 수업 안 하고 유튜브 보고 있네"라고 하니 아이는 후다닥 영상을 끄며 "아니야. 이거 수업 때 선생님이 보라고 한 영상이야"라고 대꾸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학교에서 링크 걸어준 유튜브를 본 다음 그 아래 추천 영상을 보고 또 다른 영상을 이어서 본 거였다. 아이가 걸러지지 않은 많은 정보에 노출되는 게 싫어 핸드폰도 사주지 않고 유튜브 시간도 제한했던 나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만 같다.
잘 쓰면 유용한데... 조절이 참 어렵네
▲ 난 요리에 관심이 없어 아이에게 별 도움을 줄 수 없었는데 아이는 스스로 유튜브를 찾아보며 빵을 만들었다. ⓒ elements.envato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이런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아이가 베이킹에 흥미를 갖게 됐다. 난 요리에 관심이 없어 아이에게 별 도움을 줄 수 없었는데 아이는 스스로 유튜브를 찾아보며 빵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비교적 쉬운 카스텔라만 만들었는데 유튜브의 추천 영상을 보며 다른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케이크, 스콘, 식빵, 크로아상, 소보로빵, 머랭쿠키, 초코쿠키 등을 만들었는데 어떤 건 맛있었지만 어떤 건 먹기 힘들었다. 그러면 아이는 다시 카스텔라를 만들며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고 또다시 새로운 빵에 도전했다. 지금은 방역 수칙을 지키며 학교도, 학원도 다니고 있지만 아무 곳에도 갈 수 없어 집에만 있던 그 시간에 유튜브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갑갑하다.
나 역시도 그렇다. 필라테스 학원을 다니기가 조심스러워 작년부턴 집에서 유튜브를 보며 홈트레이닝을 한다. 처음엔 어떤 강사가 하는 영상이 나에게 맞는지 몰라 추천 영상을 이것저것 눌러 보며 내키는 대로 했는데, 그 결과 나에게 맞는 채널을 찾을 수 있었고 지금은 그 채널에서 추천해 주는 운동을 아침마다 열심히 하고 있다. 매일 집에서 운동하니 학원에 다녔을 때 보다 근육이 더 붙었다.
난 평소에 음악을 들으며 일을 하는데 몇 달 전부터는 '공부하면서 듣기 좋은 음악'을 유튜브에서 검색해 듣는다. 한번 그 키워드로 검색을 했더니 추천 영상으로 공부하면서 듣기 좋은 디즈니 음악, 지브리 음악, 팝송 모음, 피아노 연주 음악 등이 주르륵 화면에 노출됐다. 그 영상들을 하나씩 돌려 가며 듣는다. 꼭 카페에 온 것 같고 지겹지 않아 좋다.
결론은, 나부터 잘 하자
대부분의 기술이 그렇듯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득이 될 수도, 실이 될 수도 있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에게 유튜브 알고리즘에 대해 설명하고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니 "나 요즘 유튜브 잘 안 봐서 몰라" 하고 발뺌을 한다.
"엄만 유튜브 알고리즘 때문에 계속 유튜브를 보게 되는 거 있지. 넌 어때?"라고 질문을 바꾸니 역시나 대답한다.
"내가 본 영상과 비슷한 영상이 쭉 떠서 그런 걸 다 보게 돼. 영상이 별로 재미없어도 또 재밌는 게 올라올 수도 있으니까 구독을 누르지. 그런데 나중에 알림 온 걸 보면 '어? 내가 이런 걸 구독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구독 취소를 해. 휴, 한 마디로 귀찮아."
'귀찮은 걸 왜 보니?'라고 핀잔을 주고 싶지만 꾹 참는다. 오늘도 아이는 아침부터 화장실에 가서 나오질 않는다. 아이도 나처럼 큰일을 보러 화장실에 갈 땐 핸드폰을 들고 간다. 십 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 걸 보니 유튜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게 분명하다.
뭐라고 하려다가 꼭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잔소리를 삼킨다. '나부터 잘해야지' 생각한다. 나부터 유튜브 시청의 기준을 잡고 아이를 지도해야 내 말이 조금이나마 아이 맘에 가 닿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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