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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의견 들어주러 왔어요" 이 말이 슬프다

[주장] 학교 운영에 학생 참여는 시혜가 아닌 권리

등록|2021.07.09 09:32 수정|2021.07.09 09:32

▲ 민주주의는 더 많은 사람이 의사결정에 참여할 때 더 큰 꽃을 피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투표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듯이, 학교에서도 많은 사람이 의사결정에 참여할 때 민주주의가 꽃을 피운다. 그 시작은 학교운영위원회 학생 참여다! ⓒ 픽사베이


나는 경기도의 한 중학교 교칙개정심의위원회 학생위원이다. 솔직히 말해서, 교칙이 바뀌어봤자 올해를 마지막으로 학교를 졸업하는 나에게 좋을 건 없다. 오히려 친구들은 "우리가 당했으니 애들(후배)도 당해봐야 한다"라는 진담 같은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학교를 학생이 존엄한 학교로 바꾸어간다는 자부심이 있다.

지난 5일 교칙개정심의위원회 회의가 있었다. 치열한 격론 속에 네 시간이 넘는 회의로도 마무리하지 못하고 12일에 이어서 회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긴 회의 시간이 아니라 "학생들 의견 들어주러 왔어요"라는 말이다. 정확히는 "교칙 개정안이 학교운영위원회에 올라가게 되어도 학생은 의결권이 없어 학생의 의견이 경시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하자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이 한 말이다.

물론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주러 온 것에 감사하다. 그조차 하지 않았다면 학부모위원과 교원위원, 지역위원으로 구성된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학생들의 의견은 다루어지지도 않았을 테니까. 참관하신 분은 나름 최선의 방안을 고민하시고 고안하셨을 것이다. 그러한 노력은 대단한 노력이다.

그러나 저 말이 슬펐던 이유는 학생의 의견 반영이 시혜로 여겨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다. 학생이 자기 학교 교칙을 만드는 데에 아무런 권리도 행사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학생의 의견이 다루어지기라도 하려면 의견을 들으러 오는 시혜를 기대해야 한다. 이 얼마나 서글픈 현실인가.

두 주체와 하나의 종속 주체

학교에서는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교육 3주체의 의견 수렴을 말한다. 교원, 학부모, 학생이 학교의 주체라는 말이다. 나는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학교의 '교육 3주체론'은 허상이다. 교육의 세 주체 중 하나를 빼놓고 학교 운영을 논하는 것은 교육의 세 주체가 만들어나가는 학교가 아니다. 두 주체와 하나의 종속 주체라는 표현이 차라리 솔직할 것이다.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이 없는 일은 엄밀히 말하면 학교 탓은 아니다. 초·중등교육법이 학교운영위원회를 학부모, 교원, 지역위원으로 구성한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학생이 빠져 있으니 의결권도 없다.

학생이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석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59조의 4, 2항에 의해 심의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학생 대표를 참석시켜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학교운영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시혜' 없이 발동될 수 없는, 유명무실한 조항이다.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이 들어가면 정말로 학교가 달라진다. 교육의 두 주체와 한 종속 주체가 세 주체가 되고, 학생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이 참가하는 것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시작을 말한다. 학생의 다양한 의견이 학교 운영에 반영되는 것만큼 민주적인 일이 어디 있겠는가. 민주주의의 배움터인 학교가 빼앗긴 민주주의를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을 때가 되었다.

교칙개정심의위원회를 진행하면서 내가 몇 번 했던 말은 "이의 있습니다"이다. 이의는 다를 이(異)자에 의논할 의(議)자를 쓴다. 다른 의견이라는 뜻이다. 그동안 학교에서 다른 의견은 얼마나 의논되었는가? 더 많은 사람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민주주의다. 그동안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던 학생들이,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이의 있습니다"를 당당하게 외치는 것이 곧 정의고, 민주주의다.
덧붙이는 글 기자는 중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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