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엄지 척' 하는 이 김치, 엄청 간단합니다
시어머니의 깊은 손맛은 못 따라가도... 여름 별미 '고구마순 김치' 만들기
▲ 지인의 텃밭 작물힘들게 농사 지은 채소를 받았어요. ⓒ 서경숙
주말 아침에는 아무리 피곤해도 일찍 눈을 떠서 월명산 산책을 나선다. 같이 가는 지인 동생이 준비가 끝나면 차를 가지고 집 앞에 와서 나를 데리고 간다. 조수석에 앉는데, 푸른 비닐봉지 안에 채소가 있다.
뭔가 한참을 바로 보고 있으니, "언니 고구마순이야~ 언니는 껍질 깔 시간 없을까 봐 내가 까왔어"라고 말한다. 고맙게도 껍질을 벗겨서 가져왔다.
농사꾼 다 된 동생이 가져다준, 귀중한 선물
▲ 지인의 텃밭 작물텃밭을 가꾸면서 풀 뽑기가 가장 힘들다고 합니다. 돌아서면 풀이 나고~ ⓒ 서경숙
지인은 일주일에 2~3일은 노부모와 동생네 땅에 농사를 지으러 간다. 처음에는 작은 평수에서 시작했다. 동생네 시댁의 넓은 땅이 놀고 있다는 소리와 부모님들의 욕심에 농사 규모가 커졌다.
여름 채소들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밭으로 출발해서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 5시간 이상 앉아서 풀 메고 땅 파고 씨 뿌리고... 지인은 텃밭 농사를 그만하고 싶은데, 노부모가 하고 싶은 걸 하게 해 준다며 차로 모시고 가서 힘든 일을 도맡아 한다.
주말 운동을 다니면서 그렇게 힘들게 농사짓는 이야기를 수다로 들었기 때문에 그가 한 번씩 가져다주는 채소들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 우리 같이 글 쓰고 책 읽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카시아 꽃 피는 것을 보면 달달하고 향긋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데, 농사짓는 지인은 "언니 아카시아 꽃 필 때는 콩 심어야 해" 이런 소리를 한다. 웃음이 나오고 '농사꾼이 다 되었네' 하고 생각하게 된다.
힘들게 농사지은 채소를 받았으니, 저 고구마순으로 무엇을 할까. 삶아서 나물을 해 먹을까? 된장에 멸치 넣고 자글자글 지져 먹을까? 아니다. 김치를 담가 먹어야겠다.
▲ 고구마순 김치지인의 텃밭에서 나온 고구마줄기 ⓒ 서경숙
전라도에서는 여름에 고구마 줄기가 나오면 한 번씩 줄기를 잘라 줘야 하기 때문에 고구마순 줄기를 잡고 잘라내서 똑똑 끊어 껍질을 벗겨서 김치를 담가 먹는다.
여름만 되면 시어머님께서 고구마순 김치를 큰 김치 통에 한 통씩 담아주어서 아주 잘 먹었다. 그 기억을 더듬어 요리를 시작해 보았다. 요리까지는 아니고 살짝 겉절이처럼 담아 보기로 했다. 무로 무생채, 오이로 오이무침 담가 먹듯 간단하게 하기로 했다.
고구마 줄기는 소금물에 살짝 담가서 껍질을 벗기면 잘 벗겨진다.
- 고구마순을 깨끗하게 씻어 소금에 살짝 절여놓는다.
- 부추를 씻어서 물기를 빼서 큼직큼직하게 잘라 놓는다.
- 양파, 당근은 채를 썰어놓는다.
홍고추는 믹서에 물을 조금 넣고 갈아놓는다.
볼에 고구마순, 부추, 마늘, 양파, 홍고추, 고춧가루, 소금, 매실청, 까나리액젓, 설탕 조금. 조미료 살짝, 깨소금을 넣고 잘 버무려 준다.
매실청을 넣으면 달달 해서 설탕도 조금만 들어가도 되고 여름에 생것을 먹으면 배앓이하는 것도 예방할 수 있다. 난 매실을 음식에 잘 넣는다. 김치 담글 때 쌀이나 밀가루로 풀을 쑤어 넣는데, 이번에는 겉절이로 조금만 하고 조금만 먹을 것만 하기 때문에 풀 쑤어 넣는 것은 생략했다.
텃밭 덕분에 푸짐해진 여름 밥상
▲ 고구마순 김치지인이 준 고구마줄기 ⓒ 서경숙
전라도에서는 채소로 여러 음식으로 많이 만들어 먹었다. 여름에 먹는 고구마순 김치는 나이 먹은 사람들도 좋아하지만, 우리 집 아이들도 잘 먹는 음식이다. 많이 담가서 김치가 푹 익었을 때는 살짝 씻어서 된장에 지져 먹어도 맛이 있고, 씻지 않고 고등어 한 마리와 푹 지져(끓여) 먹으면 그 맛이 별미이다. 이번에는 양이 적어서 지져 먹을 것은 없을 것 같다.
고구마순 김치가 성공적으로 되었다. 시어머니께서 담가주신 김치의 깊은 맛은 흉내 낼 수 없지만, 맛이 아삭아삭 제법 김치 맛을 내었다. 지인의 텃밭 야채 때문에 오늘 점심 밥상이 푸짐해졌다.
▲ 텃밭 채소로 차려진 음식지인은 텃밭에서 나온 채소로 만들었습니다. ⓒ 서경숙
아이들도 여름에만 먹을 수 있는 고구마순 김치에 밥 한 그릇을 뚝딱 먹으면서 엄지 척을 해준다. 엄마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법을 아는 것 같다. 함께 가져온 호박은 오징어와 부추를 넣고 부침을 하고 오이는 새콤하면서 시원한 오이냉국과 오이무침으로 만들었다. 채소가 가득한 지인의 텃밭 밥상이 되었다.
부지런한 지인의 텃밭 때문에 예전의 요리 솜씨를 다시 찾을 수 있었고, 맛있고 푸짐한 한 상으로 행복한 식사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작은 것의 나눔으로 큰 행복을 받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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