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학교의 교문을 걸어 잠그는 게 능사일까
[아이들은 나의 스승]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여긴다면
▲ 한 고등학교 수업 모습. 자료사진 ⓒ 연합뉴스
"선생님, 마스크 때문에 집중이 안 돼요."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라고 했더니, 한 아이가 짜증을 냈다. 지금 학교는 기말고사가 한창이다. 광주광역시의 경우, 지난 5일부터 학교 내 거리 두기 제한이 풀려 전 학년이 등교하고 있다. 모두가 한날한시에 시험을 치르는 건 코로나로 비대면 수업이 일상화된 이후 처음이다.
그땐 지역에서 한두 명의 확진자만 나와도 기겁했다. 학교는 전면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했고 각자 외출을 삼가며 사태를 예의주시했다. 그런데 이젠 두 자릿수가 나와도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다. 경각심은커녕 긴장감마저 풀어져 언뜻 '될 대로 되라지' 식의 체념마저 느껴진다.
"마스크 때문에 얼굴이 가렵고 자꾸 뾰루지가 나요."
"마스크 끈에 귓바퀴 뒤쪽이 헐었어요."
"점심시간 마스크를 벗었다 다시 쓸 때면 역겨운 쉰 냄새가 나요."
아이들은 마스크를 벗기 위해 온갖 핑계를 댄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보아 거짓말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나무라기도 뭣하다. 나 역시도 그런 경험이 있고, 동료 교사들도 서로 '좋은' 마스크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여기서 '좋은' 마스크란, 방역 효과가 뛰어난 게 아니라, 착용하기 편한 제품이란 뜻이다.
추운 겨울에는 방한대로서 나름 유용한 도구이지만, 요즘 같은 여름엔 그야말로 '얼굴에 채우는 차꼬'다. 가만히 쓰고만 있어도 땀이 차는데, 한 시간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 마스크가 젖은 빨래 마냥 축축해진다. 그 상태에서 다시 착용하는 건 차라리 고문이다.
그런 까닭에 출근할 때 두어 개를 더 챙겨 집을 나선다. 최소 오전과 오후에 각각 한 개씩이 필요하다. 그나마 마스크의 가격이 내려가서 망정이지 품귀 현상이 벌어졌던 작년이었다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습기 찬 마스크는 방역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는 뉴스도 들은 터다.
개당 1500원, 그것도 요일에 맞춰 줄을 서서 사야만 했던 작년 식품의약품안전처 인증(KF) 방역 마스크가 올해엔 말 그대로 '똥값'이 됐다. 마침 마스크가 떨어져 똑같은 제품을 인터넷을 통해 구매했는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쌌다. 200개들이 한 상자가 고작 2만 5000원이었다. 개당 125원인 셈이다.
시험 감독관이라기보다 시험실 방역 관리자
시험 도중 아이들과 실랑이를 벌여서는 곤란하다. 시험 감독관에겐 철칙이 하나 있다. 어떠한 경우라도 수험생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 부정행위로 의심되는 행동이 아니라면 무조건 수험생을 배려해야 한다. 감독관은 부정행위를 적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험생이 불편함 없이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 우선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마스크를 벗도록 허용할 순 없다. 더욱이 교실의 창문이 닫힌 데다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는 상태에서 마스크 착용이 중요한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코로나 와중에 치러지는 기말고사에서 교사는 시험 감독관이라기보다 시험실 내 방역 관리자다.
종료령이 울리고 감독관이 교실을 나가기 무섭게 아이들은 참았던 숨을 몰아쉬듯 마스크를 벗거나 턱에 걸친다. 그 모습에 놀라 교실로 들어가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지만 그때뿐이다. 교사가 지켜보면 쓰고, 안 보면 벗는 아이들의 철딱서니 없는 행동을 보면서도 지치면 안 된다.
점심시간은 아이들이 일과 중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유일한 때다. 줄을 서거나 배식할 때까지는 착용해야 하지만, 적어도 자리에 앉아 식사할 때만큼은 마스크로부터 해방된다. 하지만 이때도 교사는 급식소의 방역 책임자로서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혼자 묵묵히 식사만 하고 급식소를 나서는 경우가 드물어서다. 옆 친구와의 대화는 점심시간에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호사라, 밥 먹다 말고 자꾸만 급식 지도 교사의 눈치를 본다. 떠들다 걸린 몇몇 아이들은 식판만 쳐다보며 홀로 먹는 밥에 체할 것 같다며 푸념하기도 한다.
식탁 위에 설치한 칸막이도 무용지물일 때가 있다. 학년별로 급식 시간의 차이를 두는 한편, 서로 격리해 앉을 수 있도록 지정석을 마련해두었지만, 교사의 눈을 피한 아이들의 수다는 이어진다. 만약 학교에서 집단 감염이 일어난다면, 그 시작점은 점심시간 급식소가 될 것이다.
▲ 한 고등학교 급식실을 관계자들이 소독하고 있다. ⓒ 연합뉴스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는 기대
"선생님들은 좋으시겠어요. 이달 말부터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됐으니 말이에요. 이번 여름도 마스크를 쓴 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괴로워요."
얼마 전 급식 지도를 마치고 나오는데, 한 아이가 마스크를 손가락에 건 채 대뜸 이렇게 말했다. 마스크 안쪽에 음식물 찌꺼기가 묻어 다시 쓰기가 찝찝하다고 했다. 새것을 건넸더니 그는 고맙다고 말하기는커녕 코로나에 감염되는 것보다 종일 마스크 쓰는 게 더 싫다고 말했다.
그는 이달 말부터 고3 수험생과 고등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백신 접종이 시작된다는 뉴스를 들었다고 했다. 백신의 부작용은 겁내 하면서도 자신의 순서는 언제 돌아오느냐며 하루빨리 접종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이유는 단 하나,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물론, 오해다. 백신을 접종했다고 해서 당장 마스크를 벗어선 안 된다. 학교가 대규모 밀집 공간인 데다 여전히 아이들 다수가 미접종 상태인 곳에서 섣불리 마스크를 벗는다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변이 바이러스까지 창궐하는 마당에 마스크만큼 효과적인 백신은 아직 없다.
백신 접종으로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는 오해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백신 접종을 유도하기 위해 방역 지침을 완화한 건 섣부른 조치였다. 근래 공공장소와 길거리에서 마스크 차림이 아닌 이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부러 다가가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말하면 입이라도 맞춘 듯 퉁명스러운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이미 두 차례의 백신 접종을 모두 마쳤으니 문제 될 게 없습니다."
얼마 전 4차 대유행이 현실화하면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이들의 모습이 주변에서 거의 사라졌지만, 그만큼 백신에 대한 기대도 낮아졌다. 계속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면 부작용이 우려되는 백신을 굳이 맞을 이유가 없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백신만 맞으면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그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주어야 하나 싶다.
학교 밖에서 마스크 착용 통제가 제대로 될까
▲ 9일 오후 한 고등학교 앞에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하교하고 있다. 교육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시행으로 14일부터 여름방학 이전까지 수도권 학교가 전면 원격수업으로 전환된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마스크로 답답했던 시험이 끝났다. 하굣길 교문을 나서며 마스크를 손에 들거나 턱에 걸친 아이들이 종종 보인다. 아예 마스크를 호주머니에 구겨 넣은 아이도 있다. 마스크를 쓰라는 잔소리를 더는 듣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아이들의 하교와 함께 그들과 벌인 한판 '두더지 잡기' 게임도 끝났다. 그제야 나도 은근슬쩍 마스크를 벗고 한숨을 돌린다. 명색이 교사로서 일과 중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교사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솔선수범이다.
그런데 하교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노라니 문득 걱정이 앞선다. 학교 밖에서 마스크 착용에 대한 통제가 제대로 될까 싶어서다. 부모의 퇴근이 늦다면, 그때까지 그들만의 '자유시간' 아닌가. 학교의 조치란 고작 '귀가 후 가급적 외출을 삼가라'는 가정통신문을 보내는 게 전부다.
몇몇 아이들의 방과 후 일과를 들어보면, 학교의 철저한 방역이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다. 곧장 학원과 독서실을 가고, 저녁 먹고 친구들과 잠깐 노래방과 PC방에 가는 건 이미 '루틴'이 됐다고 했다. 학교 밖이 통제가 안 되면, 학교는 집단 감염의 숙주가 될 수밖에 없는데 큰일이다.
12일,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모든 학교의 교문이 다시 닫혔다. 엉뚱한 생각일지 모르나, 과연 방역을 위해서 학교 교문을 걸어 잠그는 게 능사인지 의문이다. 차라리 방역 관리가 가능한 학교에 아이들을 오래 머물도록 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을까. 그들이 학교와 집만 오가도록 동선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학교는 '돌봄 기관'이 되어야 한다. 지진이나 홍수 등 천재지변을 당한 사람들의 피난처이듯, 비록 재난의 성격은 다를지언정 감염병의 창궐에도 학교에 맞춤한 역할이 있을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여긴다면, 이 와중에 학교는 '제2의 가정'이어야 하고, 교사는 '제2의 부모'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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