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구름 위 걷는' 철부지 교사로 낙인찍혔으나
[아이들은 나의 스승] 아이들 일상에 관한 한, 학교 밖보다 학교 안이 안전하다
▲ 지난 12일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기사 '다시 학교의 교문을 걸어 잠그는 게 능사일까' ⓒ 오마이뉴스
댓글의 조롱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기사(다시 학교의 교문을 걸어 잠그는 게 능사일까)를 읽은 사람이면 친한 지인들조차 한마디씩 던졌다. 현실적이지 않다며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하라고 나무랐다. 심지어 제정신에 쓴 글이냐고 비아냥거리는 이도 있었다. 순식간에 '구름 위를 걷는' 철부지 교사로 낙인찍혔다.
엉뚱한 제안이라는 말이 나올 거라고 짐작은 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사실상 힘든 학교와 같은 밀집된 공간이 집단 감염의 숙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는다. 밀폐와 밀접, 밀집, 곧 '3밀'의 환경을 피하는 것이 코로나 방역의 ABC라는 건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전국의 모든 학교, 모든 교사가 혼연일체가 되어 방역지침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고 확언할 순 없다. 다만, 그 어느 때보다 교사들의 책임감이 강하다고 말할 순 있다. 또, 일사불란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상황 변화에 따른 세부적인 행동 요령도 학교마다 나름 잘 갖춰져 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는 조롱을 듣곤 있지만, 여전히 방역 관리에 있어서 학교만 한 곳은 없다고 믿는다. 어딜 가든 손 소독제가 비치되어 있고, 급식소에는 칸막이가 설치돼 있으며, 밀집도를 낮추기 위해 학년별 학급별 점심시간이 조정되어 있다. 심지어 교실 환기 담당자까지 지정되어 있다.
교실 내에서도 거리 두기를 위해 책상의 간격을 띄웠고, 정부가 지원한 방역 도우미들이 수시로 아이들 출입이 잦은 휴게실과 화장실, 도서관 등을 소독한다. 종례 이후에는 담임교사가 교실과 복도 안팎을 소독한 후에 퇴근한다. 하물며, 교사와 실랑이를 벌일지언정 일과 중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아이는 단 한 명도 없다.
학교 밖의 모습은 어떤가. 아이들이 방과 후에 제집 드나들 듯이 오가는 학원도, 독서실도, 노래방도, PC방도 방역지침을 철저히 지킨다고 반박하지만,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사뭇 다르다. 당장 방역지침을 지키지 않아도 학교에서처럼 일일이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요즘엔 독서실이나 노래방 등이 무인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곳이 많아 통제 자체가 안 된다고 덧붙였다. 입구에 방역지침을 깨알같이 적어놓은 안내문은 붙어 있지만, 무용지물이라고 잘라 말했다. 옆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마스크를 쓰는 척할 뿐 안 보면 바로 벗게 된다며 경험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책임질 일도 없다
그런가 하면, 학원에서도 관리가 허술하다고 선선히 말하는 아이들이 많다. 마스크를 착용하라고는 하지만, 수업 도중 답답해 벗는다고 해도 딱히 나무라지는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 발열 체크를 했다면 강의실 안에서는 벗어도 된다고 버젓이 말하는 강사도 있다고 말했다.
밀집도로 치면 별반 다를 바 없는데, 학원이 학교보다 상대적으로 느슨한 이유는 뭘까. 한 아이는 학교는 강제할 수 있는데, 학원은 강제할 수 없는 차이라고 단언했다. 학원은 아무 때나 그만둘 수도,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있는데, 학교는 그럴 수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아이들과 꽤 긴 시간 동안 솔직한 대화를 나누면서 대안을 나름대로 생각해보게 됐다. 이모저모 따져보면 볼수록 학교가 감당하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판단이 섰다. 적어도 아이들의 행동이 교사에 의해 통제가 되는 학교 안이 학교 밖보다 훨씬 더 안전하다는 생각에서다.
학교에선 방역지침과 교칙이 동시에 적용된다. 손 소독과 마스크 착용 등 기본적인 방역지침을 위반했을 때, 당장 교칙에 따라 처벌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도 알고 있다. 이 와중에도 그들은 방역지침보다 교칙을 더 두려워한다. 아이들에게 헌법은 멀고 교칙은 가까운 법이다.
학교가 감당하자는 제안에 반대하는 교사도 많을 줄 안다. 방역지침을 충실히 이행할 역량도 있을뿐더러 감염병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있어, 학교가 나름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저 학교가 법적 책임을 떠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책임질 일도 없다. 확진자가 늘어날 때마다 당국은 교문을 걸어 잠그고 전면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하라는 공문을 내린다. 담임교사라면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 반 아이들을 파악하고 방역지침을 안내하는 것이 추가된 업무 전부다.
비대면 수업이라는 말조차 어색했던 작년엔 기술을 익히느라 애를 먹었지만, 지금은 교사들 대부분이 다양한 기기를 자유자재로 다룬다. 소수일지언정 비대면 수업을 더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익숙해지니 편하다는 것이다. 교내 생활지도는 아예 사라진 업무가 되다시피 했다.
현란한 IT(정보기술) 장비를 동원해 비대면 수업의 모양새는 갖췄지만, 학습 효과는 대면 수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효과는커녕 성적의 극단적인 양극화만 불러왔다고 뭇매를 맞는 상황이다. 얼마 전 이 와중에도 전면 등교를 결정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비대면 수업의 일상화는 교사에게도 무력감과 안일함을 안겼다. 수업 부담과 잡무야 줄어들진 않았지만, 아이들과 직접 부대낄 일이 없다 보니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극심한 학력 격차와 일상의 흐트러진 생활 습관을 바루는 건 나중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공공서비스 제공하는 '작은 도시'
▲ 수도권 지역 사회적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된 12일 오전 수도권의 한 고등학교에서 원격수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성적의 양극화는 비대면 수업으로 지식을 전수하는 데 실패했음을 방증한다. 행정적인 잡무를 빼면 수업이 전부인데 수업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학교의 존재 이유는 달라져야 한다. 지금 학교에 맡겨진 역할은 지식의 전수가 아니라 방역과 돌봄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비대면 수업 때 화면만 켜놓고 딴청 피우는 아이들이 태반이라는 걸 모르는 교사는 없다. 그것이 법정 수업시수를 채우기 위한 당국의 고육지책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시간 때우기'에 불과하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나 몰라라 하는 건 교사로서 직무 유기에 가깝다.
혹시나 발생할지 모를 집단 감염의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교사는 공동체의 일원이자 아이들의 스승으로서 방역 관리자의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이야말로 코로나 시국에 학교와 교사의 존재 이유다. 사회는 학교 교육에 대한 맹목적인 불신을 거두고, 교사 스스로 초임 시절의 열정을 발휘한다면 학교는 감염병의 숙주가 아닌 피난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전면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고 아이들이 각자 집에서만 머문다면,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학교 폐쇄가 능사인 건 맞다. 하지만 그들은 '짧은 방학'이라고 여긴다. 조악한 통계일지언정 한 학급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두문불출한다는 답변은 채 다섯 중 한 명이 안 됐다.
학원과 독서실, 노래방, PC방 말고도, 삼삼오오 모여 시내에 쇼핑하러 간다거나 심지어 중학교 때 친구들과 만나 축구를 한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딜 가든 마스크는 꼭 챙겨 쓴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부모의 책임이라고 말하긴 쉬워도, 그들의 천둥벌거숭이 행태를 통제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그래서 아이들을 학교에 가급적 오랫동안 머물게 해 일상 속 그들의 동선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요즘 학교는 수업만 이뤄지는 공간이 아니다. 휴게 시설이 마련되어 있고, 비어있는 교실도 많다. 도서관과 체육관, 동아리방과 운동장 등 활용하자면 쓸 수 있는 공간이 적지 않다.
점심과 저녁을 챙겨주는 급식소도 있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저녁 급식을 먹기 위해 부러 방과 후 수업을 신청한 아이들이 태반이다. 그들의 입에서 학교 급식이 집밥보다 더 좋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모름지기 학교는 아이들에게 모든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작은 도시'다.
사족 하나. 오늘 아침 출근길, 거리에서 마스크를 턱에 걸친 중학생들을 만났다. 부러 그들에게 다가가 똑바로 쓰라고 했더니, 불쾌하다는 듯 바닥에 침을 뱉은 후 쓰는 시늉을 했다. 모르는 아저씨라 그렇지, 적어도 학교에서 교사가 지적했다면 군말 없이 그대로 따랐을 것이다.
그때 도로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도 마스크를 턱에 걸친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은 아예 마스크를 손가락에 걸친 채 빙빙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정류장에 서 있던 그 많은 사람 중에 누구 하나 그들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라면 달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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