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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3기 투병 중 펴낸 시집, 그 가운데 찾은 힘

시집 <내 곁에 있는 사람> 발간한 조유정 시인 "더 좋은 시 쓸 것"

등록|2021.07.15 16:40 수정|2021.07.15 16:46

설마 했다. 2년 전부터 호흡기가 안 좋아 병원에 다녔는데 지난 겨울부터 기침이 자주 나왔다. 병원에서는 천식으로 진단하고 처방을 해주었지만, 기침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그날따라 늘 진료하던 의사가 일이 생겨 다른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는데 의사는 놀랍게도 폐암을 의심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건강검진 때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놀란 가슴을 억누르고 정밀진단을 위해 서울대병원에 예약했으나 다시 취소해야만 했다. 그날 손녀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곧 태어날 아기를 임신한 딸에게 차마 암 선고를 말할 수 없었다. 산모 삼칠일이 지난 후에야 겨우 고백하듯 말했다.

폐암 3기였다. 내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오진이길 바랐다. 그러나 현실은 한시라도 치료를 늦추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한 달이나 걸리는 검사를 마치고 지난 3월부터 본격적인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항암치료는 고통 그 자체였다.

조유정 시인은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면 기가 막혔다. 수시로 구토가 나오고 어떻게 이렇게 아프고 힘들 수가 있을까. 정신력과 신앙에 기대어도 그 고통을 필설로 표현하지 못한다"며 그때를 회고하며 고개를 저었다.
 

조유정 시인. 조유정 시인은 암 투병 중에도 씩씩하고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 노준희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 깨치는 삶, 몸으로 겪어 

3월 이후 공식 외출은 처음이라는 조유정(70) 시인은 아픈 사람 같지 않게 밝은 미소가 가득했다. 탈모가 심해 가발과 모자를 썼는데 잘 어울렸다. 얼마 전에 세포 독성항암치료를 끝내고 면역항암치료를 시작했다고 했다. 많이 좋아졌다는 거다.

"충남문화재단 창작지원금 대상에 선정돼 작년부터 시집 발간을 준비했었어요. 그런데 올 1월 암 진단을 받고 말았죠. 시들은 암 진단받기 전 약 10년간 쓴 것들이어서 암과 직접적인 상관은 없었어요. 하지만 투병 중에 책을 내는 일이었고 매우 오랜만의 발간이라 망설였어요."

병중에 시집을 내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주변에 그를 돕는 문인들이 많았다.

"준비한 거 내보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어요. 그러면서 희망도 생기고 하는 거라며 독려해 주셨지요. 그래서 시집을 발간할 용기를 갖게 됐어요."
 

꽃 앞에 앉은 조유정 시인 암을 이기는 사람은 세상을 어떤 눈으로 볼까. 그가 꽃과 함께 한 시간은 무척이나 조화롭게 느껴졌다. ⓒ 노준희


무언가 새로 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용기가 필요하다. 더욱이 투병 중에 일생에 남을 일을 한다는 건 용기와 함께 결심도 필요했다. 그가 주변의 격려에 용기를 얻어 결심하고 세상에 내놓은 시집이 <내 곁에 있는 사람>이다.

그도 처음엔 자연, 꽃에 대한 시를 많이 썼다. 지금은 사람 얘기를 더 많이 쓰게 된다고 했다. 가족, 주변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 신앙 등 소중한 것에 관한 시인데 이번 시집이 그렇다. '그 남자가 사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존경하는 지인들 이야기를 시로 옮기기도 했다. 후반부에는 여행하면서 느낀, 건강할 때 다녔던 곳을 쓴 시도 있다.

"시는 항상 첫 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것만 떠오르면 쭉 써 내려갈 수 있어요. 나이 들어서는 진실하게 진정성 있게 명료하게 전달하는 것이 시인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나이 먹은 값이라고 할까, 독자가 바로 느낄 수 있는 시를 쓰려고 노력해요."

그는 너무 각박하고 표피적인 삶, 보여주는 삶 말고 내면으로 사고할 수 있고 좋은 생각을 이끌어주는 시를 가까이하는 게 모든 이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시 한 줄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시집 '내 곁에 있는 사람' 조유정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시인에게는 암 투병 중에 발간해서 더 의미있고 소중한 시집이다. 암 투병 전에 쓴 10년의 시를 모은 건데 살면서 겪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인생의 문학적 성찰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 노준희



아껴둔 봄을 꺼내듯 따스한 깨달음이 가득한 시집 

이번 시집은 그의 세 번째 시집이다. 수록된 60여 편의 시는 10년간 조유정 시인이 체감한 문학적 감성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암 투병 전에 쓴 시라지만, 그는 겪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인생의 깊은 깨달음을 시에 투영했다. 그리고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윤성희 문학평론가는 "이번 시집에 수록된 작품 중에 〈12월의 노래〉가 범상치 않게 다가온다. 이 시가 품고 있는 생의 인식을 잠시 펼쳐 보는 일은 보편적 인간 한계로서의 실존적 조건을 인식하고 나아가 자기 존재에 대한 사유와 성찰을 심화하는 일일 수 있겠다"고 말했다.

절망의 끝에 내일을 준비하듯
시작과 끝이 나란히 서 있다
인간의 시간과 신의 시간을 이어주는 시점
과거는 인간의 몸에 새겨져 있지만
오지 않은 시간은 신의 몫이다

사는 것 살아내야 하는 것이
신에 대한 의무이듯
고난의 바다를 헤엄쳐 도달한 오늘
다시 시간의 정점을 찾아 떠나는
쓸쓸해서 아름다운 12월이다

돌아가고 싶은 날이 있는 것
잊고 싶은 날이 있는 것
아득하다 몸으로 지나간 것들

미로 속에 숨겨둔 신의 영역
내일이여 달려오소서
                   ― 〈12월의 노래〉 전문


그러면서 윤 평론가는 "12월은 경계의 시간이다. '시작과 끝이 나란히 서 있'는 시간, 지나온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 마주 서 있는 경계의 시간이다. 시인에게 12월에 이르는 시간은 '고난의 바다를 헤엄쳐 도달한' 시간이고, '잊고 싶은 날'의 시간이다. 누구나 살아봐서 알겠지만, 우리에게 그렇지 않은 지나온 시간이 있었던가. 그런 점에서 12월에 이르는 시간은 오르막의 고단하고 팍팍한 한 사람의 생애일 것이다. 우리는 그 생애를 받아들여야 한다. 시인도 그러할 것"이라고 평론했다.

조유정 시인은 "12월은 신 앞에 겸손해지는 계절이다. 모든 사람이 비슷한 정서를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1년을 잘 살아왔는지, 기대하는 마음 등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했다"고 시를 쓰게 된 배경을 말했다.

이정우 충남문협 회장도 "조유정 시인은 2015년 2월, 천안문인협회장을 맡으면서 지역 글 판 가꾸기의 선봉에 섰다. 그는 그동안 관념적이었던 협회의 패러다임에 변화를 주는 일을 시작했고 역동적인 협회 이미지를 만들어야 문학의 저변이 확대된다는 지론을 실천했다. 천안문협 40년사에 길이 빛날 40주년 기념식과 「천안문학」 60호 발간 헌정식, 문학세미나, 운초문학상 시상식, 양성평등 문학작품 공모와 시민 애송시 낭송페스티벌 등 크고 작은 문학행사를 펼쳤다"고 밝혔다.

이어 이 회장은 "속이 야무진 사람이라는 평을 받는 그의 맵고 예리한 통찰력은 4년 동안 천안문단 대표자 역할을 충실히 했고, 다양한 장르의 문학동인을 이끌게 했으며, 천안문단 최초로 문학상을 제정하는 저력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조유정 시인 주고 받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 더욱 생기가 도는 조유정 시인. 암 투병 중임을 모를 만큼 가발과 모자가 잘 어울렸다. ⓒ 노준희


"유치원 원장 40년 경력 허투루 버리고 싶지 않아"  

조유정 시인은 2주에 한 번씩 반나절이 걸리는 주사치료를 받는다.

"이 병으로 죽진 않을 듯해요. 여생은 암과 동행하며 사는 건데 부담스럽지 않아요. 새 생명 받은 거니 신께 좋은 글로 보답해야죠. 더 좋은 시를 쓰는 것이 인생의 제1 목표가 됐어요. 또 인생 마무리를 잘하고 싶어 아이들을 더욱 진심으로 사랑하고 가르치고 보답할 거예요."

그는 유치원 원장으로 40년의 경력을 갖고 있다. 그 좋은 경험과 노하우를 그냥 버리고 싶진 않다. 육아에 관한 무궁무진한 경험으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도움이 될 글을 쓰고 싶고 아이들과 많이 살아봤기에 에피소드를 모은 동시집도 내고 싶다.

조유정 시인은 신께 기도할 것이다. 항암치료까지 무사히 끝내고 갈망하던 글을 쓸 수 있도록, 세상에 도움이 되는 작은 일을 허락해달라고.

할 일이 생긴 그는 살아야 할 이유가 더 많아졌다. 이젠 실천을 위한 노력을 차근히 투입하면 된다. 그가 베풀고 배려한 만큼 그 실천을 지킬 수 있게 힘을 주는 사람들이 그의 곁에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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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정 시인은 2006년 <문예사조>에서 시 '난'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2007년 시집 '내 삶의 빛이 되신'과 2010년 '이 세상 어떤 말로도'를 펴내고 10년여 만인 올해 시집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발간했다. 2020년 충남문학상, 천안시문화상 수상했고 천안문협 회장을 연임하며 천안문협 발전에 대내외적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제37회 천안시민의 상'을 수상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천안아산신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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