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부터 대한항공 사건까지... "피해 강조 아닌 극복의 이야기"
[현장] 영화 <갈매기> 언론 시사회
▲ 영화 <갈매기> 관련 이미지. ⓒ 영화사 진진
성폭행 피해를 당한 여성의 투쟁을 다뤘지만 이 영화 조금은 다른 지점이 있었다. 우리와 아주 가까운 일상의 단면을 드러냈고, 보통 사람들의 변화 과정을 쌓아나갔다. 주인공은 딸 아이의 결혼을 앞둔 한 중년 여성이었다. 영화 <갈매기>의 언론 시사가 열린 19일 서울 용산CGV에서 감독과 출연 배우들이 작품에 대한 자신들의 소신을 한껏 드러냈다.
영화는 시장 골목에서 생선을 팔며 자식을 키워 온 오복(정애화)이 뜻하지 않게 동료 상인에게 폭행당하며 내면적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 단편 <혐오가족> <혀> 등을 연출한 김미조 감독의 첫 장편이며, 지난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부문 대상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처음엔 딸의 시점이었는데 친언니이자 배우인 김가빈과 가족의 도움으로 중년 여성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 경우였다. 김 감독은 "노량진 구시장과 신시장 갈등이 시나리오 쓸 때부터 크게 다가왔고, 친한 사람들이 남보다도 못한 사이로 변하는 걸 보고 가슴이 아팠다"며 "서지현 검사 미투 사건을 되짚으며 영화에 적용했고, 대한항공 사건 등도 참고했다"고 말을 이었다.
"서지현 검사도 처음에 사과를 원했는데 그게 묵살되면서 사건이 점점 커지고 드러나더라. 영화 속 오복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특히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건이 충격이었다. 그분의 아내께서 남편은 성폭력을 한 게 아닌 불륜을 한 거라 말했는데 그게 기이하게 다가왔다. 성폭력이든 불륜이든 모두 정의가 아니잖나. 그런 모습을 시장 상인에 투영하려 했다."
이어 김미조 감독은 "성폭력 피해자라고 해서 영화에 그걸 묘사하지 말자는 게 원칙이었다"며 "오복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집중하는 게 아닌 오복이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라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가장 무서운 건 제대로 밝히지 않고 덮어버리는 것"
▲ 영화 <갈매기> 관련 이미지. ⓒ 영화사 진진
오복 역의 정애화는 "사실 처음엔 오복에 공감이 안 갔는데 시나리오를 다시 읽어보니 하나씩 이야기가 넘어가는 면에 재밌더라"며 "영화의 메시지를 떠나 재밌겠다 싶어 함께 하게 됐다"고 출연 계기를 밝혔다. 오복의 선택과 행동에 대해 그는 "우리 때 부모님은 가부장적이었기에 (불의에) 맞서야 한다는 생각은 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작품 속 실제 제 모습이라면 아마 내 탓을 하며 조용히 살아갔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성인인 두 딸을 둔 엄마라는 지점에서 정애화는 "사실 스스로도 내 엄마를 안 닮으려 노력하며 살아왔는데 어느새 닮아 있더라"며 "이번 작품을 할 때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많이 욕하며 살았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오복을 통해 저 또한 많이 성장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큰딸 인애 역의 고서희는 "옛말에 첫딸은 살림 밑천이란 말이 있는데 되게 이상한 말인 것 같다"며 "감독님이 쓰신 이야기가 너무 현실적이라 연기하는 데에 부담일 수 있는데 정말 잘 쓰신 것 같다"고 소감부터 전했다. 이어 그는 "오복이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더라도 아마 관객분들은 응원할 것"이라며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강한 전사의 이미지는 아니지만 일상을 살면서 서서히 전사의 모습을 갖게 된다. 이런 게 정말 전사다운 모습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인애 친동생 지애 역의 김가빈은 "오복의 최종 선택이 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집이 딸만 넷인 집안인데 부모님이 항상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아닌 건 아니라고 정확하게 얘길해야 한다고 교육하셨다"며 "사실 오복의 행동은 특이한 게 아닌 당연한 건데 사람들은 그걸 용기 있다고들 표현한다. 모든 여성이 용기 있게 자기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 가장 무서운 건 제대로 밝히지 않고 덮어버리는 것이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김미조 감독은 <갈매기>라는 제목을 두고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라는 작품을 너무 좋아해서 장편을 찍으면 무조건 제목을 그걸로 하려고 했다"며 "한편으론 어디든 날아갈 수 있음에도 육지에 발붙이고 살아야 하는 갈매기의 모습이 오복과 닮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갈매기>는 오는 28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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