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마음의 눈으로 바라본 멋진 풍경

캐러밴으로 돌아보는 호주 (5): 예푼(Yeppoon)

등록|2021.07.28 16:22 수정|2021.07.28 17:47

▲ 돌산을 배경으로 조성된 아름다운 항구 ⓒ 이강진



흔히 보기 어려운 일몰과 달맞이 구경을 했던 허비 베이(Hervey Bay)를 떠난다. 다음 목적지는 예푼(Yeppoon)이다. 허비 베이에서 450km 정도 떨어진 먼 거리다. 예전과 다름없이 1번 고속도로를 타고 따뜻한 북쪽으로 달린다. '따뜻한 북쪽'이라는 표현이 조금 어색하게 들린다. 한국에 살면서 가지고 있던 '북쪽은 춥고 남쪽은 따뜻하다'는 고정관념이 호주에 살면서도 무의식 속에는 자리 잡고 있다.

지방 고속도로에는 트럭이 많이 다닌다.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는 트럭들이다. 육중한 트럭과 왕복 2차선에서 마주칠때는 신경이 쓰인다. 트럭에서 작은 돌덩이가 가끔 날아오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트럭이 지나가면서 제법 큰 소리가 자동차에서 난다. 자세히 보니 앞유리창이 조금 파여있다. 작은 돌덩이가 튀었을 것이다. 호주에서 장거리 여행 중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따라서 각오를 하긴 했지만, 너무 일찍 피해를 보았다.

가는 길에는 도로공사도 많이 한다.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쪽으로 많이 올라왔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자동차에서 가리키는 온도계는 30도를 넘나들고 있다.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지만 에어컨을 켜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더위다.

목적지에 가까이 왔다. 제법 큰 도시 록햄턴(Rockhampton)에 들어선다. 도시에 커다란 동상이 버티고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유명한 사람을 기념하는 동상이 아니다. 멋진 뿔을 자랑하는 늠름한 소를 동상으로 만들어 관광객에게 자랑하고 있다. 동상이 있는 네거리에서 목적지를 향해 바다 쪽으로 핸들을 꺾는다. 얼마 가지 않아 또 다른 소 동상이 보인다. 힌두교를 믿는 인도에서도 소 동상을 본 기억이 없다. 그러나 록햄턴에서는 목축업으로 유명한 동네임을 소를 동상으로 만들어 알리고 있다.

야영장에 도착했다. 해변에서 가깝다. 동네 중심가에서 떨어진 한가롭고 시설 좋은 야영장이다. 넓은 야영장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캐러밴으로 붐빈다. 많은 시간 운전했다. 조금 지친다. 샤워를 끝내고 포도주를한 잔 마신다. 적당한 피로감이 온몸에 퍼진다. 오늘 밤은 잠에 푹 빠질 것이다.

게으름 피우며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예푼이라는 동네를 구경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늦은 아침에 동네 중심가로 향한다. 예푼 중심가로 향하는 해안 도로는 무척 아름답다. 드라이브하는 것만으로도 상쾌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흔히 말하는 드리이브 코스로 최고다.

동네 중심가는 여느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식당과 선물 가게로 넘쳐난다. 관광객이 많은 중심가를 벗어나 높은 지대에 자리 잡은 동네를 자동차로 올라가 본다. 가파른 도로 막다른 골목에 도착했다. 앞마당 정원을 정리하던 할아버지가 손을 흔들어 보인다. 경치가 좋은 곳에 살아 좋겠다는 덕담을 건넸다. 할아버지도 이곳을 좋아한다면 나의 말에 동감을 표시한다. 경치 좋은 집에서 정원을 가꾸면 보내는 노년의 삶이다.

할아버지와 헤어지고 조금 내려오니 공원이 있다. 차를 세웠다. 바다와 동네 중심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원이다. 공원 뒤로는 규모가 큰 리조트가 있다. 예푼이 관광 도시임을 알 수 있다.
 

▲ 동네 공원에서 바라본 예푼 전경 ⓒ 이강진


예푼 구경을 끝내고 아름다운 해안 도로에 다시 들어선다. 얼마 가지 않아 전망대가 있다는 화살표가 보인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치 또한 멋있다. 해안을 따라 이어진 도로, 멀리 보이는 항구 그리고 크고 작은 섬들이 바다에 그림같이 떠 있다. 카메라를 꺼낼 수밖에 없는 풍경이다.

전망대는 재향 군인을 기념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호주를 다니다 보면 아주 작은 동네에도 전쟁에 참가한 군인을 위한 기념비가 있다. 이곳에는 전쟁에서 침몰한 군함을 예술적으로 잘 표현한 구조물이 눈길을 끈다. 호주 사람의 군인 사랑을 다시 한번 예푼에서 확인한다.
 

▲ 전쟁에서 침몰한 배의 잔해를 보여주는 조형물 ⓒ 이강진


바위산을 배경으로 조성된 항구도 들러 본다. 여느 항구와 다름없이 크고 작은 배가 많이 정박해 있다. 선착장에서는 원주민 몇 명이 낚시하고 있다. 제법 큰 도미가 잡혀 올라오는 것을 보아 낚시터로도 손색이 없는 항구다.

항구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바위산으로 가본다. 가파른 절벽에는 금방 떨어질 것 같은 크고 작은 돌덩이가 붙어 있다. 옆에는 돌덩이가 떨어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가 있다. 중국 사람을 위해 한자로도 쓰인 경고판이다. 중국 사람이 예푼까지 찾아온다는 증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관광지마다 중국 사람으로 붐볐다. 그러나 요즈음은 코로나19로 중국 관광객을 보기 힘들다.
 

▲ 예푼 항구에 있는 돌산, 많은 낙석이 뒹굴고 있다. ⓒ 이강진

   

▲ 선착장에서 열심히 도미를 낚고 있는 호주 원주민들 ⓒ 이강진


해가 질 무렵 산책 겸 야영장 앞에 있는 바다에 나갔다. 해안을 따라 산책로가 잘 마련되어 있지만, 산책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해변은 모래사장이 아니다. 그렇다고 갯벌도 아닌 어중간한 해변이 넓게 펼쳐져 있다. 걷기에 부담 없는해변이다. 경사가 완만하다. 따라서 지금은 썰물이라 바다에 발을 담그려면 한참 걸어야 한다.

천천히 해변을 걷는데 멀리서 자동차 한 대가 해변으로 들어온다. 자동차에서 내린 부부는 아이와 함께 작은 그물로 고기를 잡는다. 그물을 올릴 때마다 작은 물고기 서너 마리가 팔딱거린다. 하루가 저물어 가는 바닷가에서 고기 잡는 모습이 정겹게 다가온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이라는 그림을 생각나게 하는 풍경이다.

이번 여행에는 골프채를 가지고 왔다. 골프채는 짐이 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망설였다. 그러나 캐러밴을 가지고 다니는 여행이라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다. 예전에는 텐트와 먹을 것 그리고 식사 도구까지 자동차에 싣고 다녔기에 골프채를 가지고 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오랜만에 골프장을 인터넷으로 찾아본다. 조금 외진 곳에 개인이 운영하는 골프장이 있다. 동네 구경도 할 겸 조금 떨어진 골프장으로 향한다. 사거리를 만나니 리조트와 골프장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있다. 리조트와 골프장만을 위해 조성한 도로에 접어든다. 자동차 하나 보이지 않는 한가한 도로다.

규모가 큰 리조트에 있는 골프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리조트는 문을 닫았다. 골프장도 두 개 있으나 하나만 운영한다고 한다. 골프 치는 가격이 무척 저렴하다. 그러나 분위기는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골프장이다. 골프장 관리도 잘 되어 있다. 한가한 골프장에서 반나절을 보낸다. 일본 사람이 주인이라고 한다. 일본 관광객을 상대로 야심차게 조성한 리조트와 골프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지금은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다.

마지막 날에는 예푼에서 조금 떨어진 그러나 관광 명소로 나와 있는 아처 산(Mount Archer)을 찾았다. 비가 오락가락한다. 그러나 푸른 하늘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어 산을 찾아 나섰다. 산길에 들어서면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올라갈수록 빗줄기가 굵어진다. 후회가 들기는 했으나 너무 늦었다. 정상까지 올라간다.

정상에 오르니 원주민 그룹이 있다. 그러나 비 때문인지 특별한 활동은 하지 않고 주위만 서성거리고 있다. 우산 하나 들고 차에서 내려 잘 조성된 산책로를 걷는다. 뒤에서는 젊은 남녀가 우산 하나에 의지해 걷고 있다. 산책로 중간에는 원주민 냄새가 물씬 풍기는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다. 아마도 원주민들이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려고 했으나 비 때문에 포기한 것 같다.
 

▲ 산 정상 공원에 조성된 원주민 조형물 ⓒ 이강진


가장 높은 곳에 설치된 전망대에 도착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구름에 가려 경치가 보이지 않는다. 실망이다. 단지 산책로 걷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주차장으로 걸어간다. 주차장으로 차가 들어선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리지 않고 잠시 비 오는 것을 지켜보다가 돌아간다. 구름 때문에 경치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눈치다.

주차장에 설치된 안내판을 보니 조금 전에 걸었던 전망대에서 찍은 사진이 있다. 경치가 멋지다. 안내판에 있는 사진을 내 카메라에 담았다. 지금은 구름 때문에 보이지 않는 풍경, 그러나 구름 아래의 모습은 포스터 사진과 다름없을 것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만 의지해 많은 것을 재단하고 판단한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 보면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할 때도 있다. 마음의 눈으로 보면 삶이 좀 더 여유로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 관광 안내판에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 ⓒ 이강진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