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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제가 너무 부끄러울 거 같습니다"

[가상 편지] 대체복무 신청자에게 보내는 대체역 심사위원의 편지

등록|2021.07.28 19:44 수정|2021.07.28 19:44
7월 29일이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 여부를 심사하는 대체역 심사위원회가 출범한 지 1년이 된다. 위원회를 통해 대체복무에 편입된 사람은 1502명에 이른다. 심사위원으로 그동안 적지 않은 사람들의 양심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심사가 끝나면 인용이든 기각이든 결정문을 발송한다. 위원회는 판결문을 옮겨놓은 것 같은 결정문 양식을 두고 새로운 '공문서'를 만들어보려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결정문이 한 통의 편지로 전달된다면 어떨까, 문득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정문을 가상의 인물에게 보내는 편지글이다. 누군가의 3년을 결정짓는 건조한 공문이 아닌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기자말]

▲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인 2017년 5월 1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주최로 열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처벌 중단 및 대체복무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에서 2005년 출소한 나동혁씨가 포승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체복무를 신청하신 귀하께

귀하께서는 대체복무를 신청하셨군요. 우리 위원회는 귀하의 대체복무 신청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보내주신 신청 이유와 대면 심사에서 밝힌 내용을 진지하게 검토한 끝에 귀하의 신청을 받아들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정부는 양심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존중하며 어떤 경우에도 훼손되지 않도록 대체복무라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국가가 개인의 신념을 지켜주기 위해 이와 같은 심사위원회를 운영하게 된 것은 우리 시대 인권의 진일보입니다. 많은 분들이 수인의 신분을 감당하면서 오랫동안 묵묵히 자신의 신념을 지켜온 결과입니다.

하지만 어떤 제도이든 개인의 자유를 모두 보장하지 못하듯이 대체복무제 역시 한계를 품은 채 만들어진 것이 사실이라는 점을 먼저 고백합니다. 다만 때로는 개인의 신념을 지켜주기 위해 국민의 의무가 유보되거나 변형될 수 있다는 것을 국가가 인정했다는 점이 각별한 의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위원회가 양심 감별사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체복무의 도입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계기로 했고 그 판단이 엄격하게 양심을 정의한 사정으로 인해 대체복무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신청인이 자신의 신념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어떤 이유로 형성되었고 그 시기는 언제였는지를 소상히 밝히게 합니다.

그것을 근거로 우리 위원회는 신청인이 밝히고 있는 신념이 대체복무를 하기에 충분한지를 판단합니다. 신념을 존중하기 위해 만들어진 위원회가 자칫 잘못하면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경계에 놓여 있습니다.

귀하는 종교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것이 존재 이유의 전부라고 했습니다. 더 열심히 믿고 싶어서 학교 다니는 시간마저 아까워 검정고시를 선택했다고 하니 그 신앙의 깊이는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감히 헤아리기 어려운 정도라고 해야 할까요. 자신이 믿는 종교에서 금하는 일은 조롱을 받더라도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다지요. 전쟁을 직접 수행하지 않더라도 전투에 이기기 위해 받는 모든 교육을 거부하기 때문에 3주간의 군사훈련도 받을 수 없다고 했지요.

사회복무요원으로 갈 수 있는데 3주간 눈 딱 감고 버티면 되지 않겠냐고, 내면의 어떤 목소리가 자꾸 채근하지만 또다른 내면은 그런 결정을 내리려는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이 그렇게 묻기도 했습니다. 작고 떨리는 목소리로 귀하는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너무 부끄러울 거 같습니다."

귀하의 작고 떨리는 목소리, 그것이 국가가 존중하고 보호해야 할 개인의 양심입니다.

영혼을 채우는 시간이 되길
 

▲ 종교나 비폭력·평화주의 신념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가 처음 시행된 2020년 10월 26일 오후 대전교도소 내 대체복무 교육센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63명의 입교식이 열린 가운데 입교생들이 입교식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그렇듯 신앙에 신실했던 귀하는 잠시 딴 세상을 경험하고 왔군요. 회의가 들고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그래서 집을 떠나 친구들과 어울려 지낸 세월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누구에게나 집을 떠나 방황의 시간을 보내는 오디세이가 있습니다. 오디세우스처럼 긴 여행을 떠나는 가출이 아니더라도 주어진 삶에 대해 회의하고 방황하는 모든 시간을 우리는 오디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 이미 세례를 받고 견실한 신앙인으로 자라다가 갑자기 그 진실성에 회의가 생기고 소중했던 것을 외면한 채 알지 못했던 세상을 향해 질주하는 방황의 시간이 있었다할지라도, 지금 귀하가 국가에게 존중받기 원하는 그 종교적 신념이 결코 얄팍하고 변덕스럽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잘 아는 믿음의 신화들은 오디세우스와 같은 가출담을 포함하고 있으니까요. 대부분의 가출은 귀향을 전제로 합니다. 돌아온 탕자가 다시 탕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성경에서 발견하기 힘듭니다. 귀하가 방황할 때 경찰의 조사를 받은 기록을 보게 되었습니다. 작은 시비에 휘말려 경찰 조사까지 받았지만 귀하는 죄가 없어 기소나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조사과정에서 귀하는 자신의 종교를 밝히지 않았군요. 왜인지 묻지 않았습니다. 예수를 알고도 알지 못한다고 했던 '베드로의 부인'이 그를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고 말할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태도와 양심이 일치해야 한다는 건 어쩌면 인간에게 불가능한 주문일지도 모릅니다. 종교적 신념의 실천에서 완벽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대체복무는 병역의무를 실행하는 하나의 제도입니다. '신념의 흠 없는 실천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높은 허들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귀하는 방황에서 돌아와 군복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아직 대체복무가 도입되기 전이라 군복무를 거부하면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귀하는 감옥에 가겠다고 결심했다고 했지요. 그래서일까요, 귀하가 남기고 간 이 평범한 말이 여전히 큰 여운을 남깁니다.

"더 이상 범죄자가 되지 않고 떳떳하게 나의 종교를 밝힐 수 있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대체복무는 36개월입니다. 교정시설에서 교정 업무를 돕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실형을 살 때보다 더 긴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야 합니다. 그래도 죄인이 아닙니다. 그것에 감사하는 귀하를 향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귀하가 국가의 의무를 위해 보내야 할 36개월의 시간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제도를 보완해 나가겠습니다.

3년 동안 건강과 함께 영혼을 채우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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