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베이비박스 아이들은 어디로 갔나, 확인해봤더니

[베이비박스 심층리포트 ⑤] 부모 없는 아이들에게 국가와 사회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등록|2021.08.03 07:16 수정|2021.08.03 08:31

▲ 부모없는 아이에게 국가와 사회는 어떤 존재인가? ⓒ 픽사베이


'아동은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야 한다.'

아동 최우선의 이익을 명시한 1993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이하 헤이그협약) 제1의 원칙이다. 그러나 현행 입양특례법이 시행된 2012년 이후 10년이 다 되는 지금까지 이 원칙은 우리나라에서 망자의 비석에나 새겨진 비문이었다. 

934명. 2015년부터 올해 3월까지 베이비박스에 들어왔다가 시설로 가야 했던 아이들이다. 같은 기간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들이 모두 1242명이었다. 무려 75%의 아이들을 시설로 보내는 현실이 세계 경제 10위권으로 국제연합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선진국으로 공인된, 대한민국 아동복지의 민낯이다.

지난 10년 동안 낳은 부모가 양육을 포기한 어린 생명들이 속절없이 시설로 가는 상황을 만든 것은 입양법이었다. 통상 2년 주기의 순환근무로 인해 전문성이 없는 공적 책임자들은 이 아이들에 대한 대책 마련은 고사하고 관행적인 일 처리로 일관하다 자리바꿈만 할 뿐이었다.

시설이 마냥 나쁜 곳이라는 말은 아니다. 시설은 시설대로 아동을 위한 쓸모가 분명 있지만, 국제사회가 염원하는 '아동 최우선의 이익'을 기준으로 하면 장기보호시설은 가장 최후의 수단이다. 북유럽을 포함한 아동복지 선진국은 우리나라 보육원과 같은 장기보호시설이 아예 없다. 그 자리를 위탁가정이 대신하고 있다. 이른바 탈시설이 아동 인권의 바람직한 정책으로 고착되어 있다.

우리가 쉽게 간과하고 있던 사실

보호아동에 대한 국제 공통의 해법이 담겨있는 헤이그협약의 근간인 보충성의 원칙을 지침서에는 다음과 같이 해석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 아동이 원가정에서 양육되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아동을 학대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 일반적으로 국내 입양 또는 기타 영구적인 가정 양육이 바람직하나, 적절한 국내 입양가정이나 양육자가 부재하고, 해외에 영구 배치할 수 있는 적합한 가정이 존재할 경우 아동을 시설에서 대기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 영구 보호의 옵션으로서의 시설보호는 일부 특수 상황에서는 적합할 수 있을지 모르나, 일반적으로 아동을 위한 최선의 이익이라고 보지 않는다.
- 1993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의 이행과 운영_모범적 이행을 위한 지침 중 일부

헤이그협약에서 말하는 보충성의 원칙은 보호아동이 발생할 경우, 원가정 → 국내입양가정 → 국제입양가정 → 시설 순으로의 보호조치 경로가 아동 최우선의 이익임을 못 박은 것이다.
 
국내 시설보호가 아닌 해외입양이 우선 되어야 할 정도로 문명국가의 기본 이념은 '영구한 가정 보호'에 방점이 찍혀 있다. 게다가 우리가 쉽게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하나 있다. 보호아동 최우선의 이익 중 가장 최상인 원가정 보호에도 사실은 조건이 있다. 헤이그협약 서문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동의 완전하고 조화로운 인격 발달을 위해 가정환경이 행복하고 애정이 있으며 이해하는 분위기 속에서 성장해야 함을 인정한다.

낳은 가정에서 아이가 자라야 함은 보편적 상식이나 그렇다고 모든 가정이 '행복하고 애정이 있으며 이해하는 분위기' 일리는 없다. 낳은 부모로부터 양육이 포기된 아동을 원가정 우선 원칙 만을 내세우며 다시 낳은 부모에게 강제적으로 안기기 전에 '행복하고 애정이 있으며 이해하는 분위기' 인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최근 우리 사회 보호아동에 대해 심층 취재한 <그렇게 가족이 된다>를 출간한 정은주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 정부는 무조건적인 원가정 보전 원칙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함께 1996년에 새 정책을 채택했습니다. 위기 아동이 발생하면 '동시사례계획'을 세워 원가정 회복과 입양 가능성을 동시에 타진하도록 한 것입니다. 아동이 장기간 위탁가정이나 시설을 전전하는 오랜 폐단을 겪은 희생을 치르고서야 마련된 대책입니다. 우리도 미국의 전철을 밟아왔습니다."

불과 12%만 가정에서 새로운 삶 시작
 

▲ 베이비박스 내부 모습. ⓒ 김지영

    
베이비박스에서 원가정 복귀도 실패하고 낳은 부모로부터 출생신고서 작성도 포기되어 유기 아동이 된 아이들은 헤이그협약에 따른다면 국내입양 → 국제입양 → 시설 순서로 보호조치 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 공적 체계 속에서의 보호조치는 시설 → 국내입양 → 국제입양 순서가 현실이다. 2015년부터 올해 3월까지 베이비박스에서 발생한 1242명의 유기아동 중 75%인 934명이 시설로 간 이유다. 국가로부터 방임된 이 아이들의 삶은 이제 법적 후견인이 된 시설원장의 선택에 달려 있다.

2019년 감사원 보고서에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아동복지시설로 최초 보호조치 된 베이비박스 유기 아동 929명 중 차후에 가정보호로 변경된 아동은 입양 111명, 가정위탁 17명으로 총 128명(13.8%)에 불과하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를 다시 헤이그협약 지침에 따른 실제 '영구적인 가정보호' 조치로 보면 18세까지 보호기간이 법으로 규정된 한시적인 가정위탁을 제외한 111명(12%)만이 가정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2021년 7월 정부는 보호종료 시점을 18세에서 24세로 상향 조정했다).

우리는 분명 아동 인권지수가 높아지고 있다는 걸 학교나 가정 등에서 체감하고 있는데, 생부모로부터 양육이 포기된 이른바 부모가 사라진 어린 아이의 인권은 국가나 사회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은 채 겨우 통계로만 확인될 뿐이다. 이는 그 아이들에게는 전 생애를 걸고 다투는 문제다. 하지만 비정하게도 그 아이들은 대체로 누가 대신해주지 않으면 아직 제 입으로 말도 못하는 처지의 어린 아이들이다. 국가의 비정함은 그래서 더 참담하다.

국가로부터 모든 책임이 방임된 상태에서 민간에서 운영하는 장기 보육시설로 간 아이들 가운데 절대다수는 성인이 될 때까지 그 시설 안에서 자기 삶을 의탁한다. 그 삶은 수동적이고 집단적이며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계획된 일상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2019년 감사원의 지적
   

▲ 2019년 11월 발표된 감사원 감사보고서. 보호대상아동지원실태 관련 체계전체를 감사한 최초의 사례다. 그 이전 보호대상 아동은 관심 밖 대상이었다는 방증이다. ⓒ 김지영

 
베이비박스 유기 아동은 서울시 아동복지센터 내 일시보호시설에서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입소 당일 혹은 며칠 사이로 민간보육원으로 넘겨진다. 이런 무책임함 속에 보호조치 되는 아동복지시설은 서울시 관내 36개다.

매년 200여 명 이상의 아이들이 베이비박스로 몰려들었던 2015년에서 2018년 사이에는 이 시설도 부족해 아이들이 전국에 있는 시설로 흩어져야 했다. 보호아동이 발생한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 아동의 보호조치를 책임져야 하는 원칙은 이미 오래 전부터 현실에서는 폐기되었다.

그렇게 보육원으로 간 아이들의 삶은 순전히 원장의 손에 운명이 결정된다. 미성년 아이들의 법정후견인은 아이가 성년이 될 때까지 부모가 되며 아이에 대한 모든 결정을 법적으로 보장받는다. 베이비박스에서 보육원으로 간 아이들 중 11%만이 입양되었다는 건 입양이 가능한 89%의 아이들 삶이 그들 법정후견인인 시설 원장의 손에 붙잡혀 있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물론 그 아이들 중 입양이 어려운 처지의 아이들도 있겠지만 대체로는 다른 현실적인 이유가 작동한다. 예컨대 보육원 보호아동 인원 대비로 정부에서 주는 각종 지원에 대한 현실적인 운영문제, 과거 비밀입양 문화에 익숙한 원장들의 입양에 대한 거부감 등이 입양을 보내지 않는 이유로 파악이 된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보호아동의 운명이 제도와 정책 또는 공적 아동보호 체계 안에서 결정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순전히 시설 원장의 사적 판단에 좌우되는 현실이다. 게다가 이런 현실을 국가가 만들었고 지금껏 수수방관하고 있다.
    
부모 없는 아이들은 국가와 사회에 과연 어떤 존재인가? 2019년 감사원에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감사원은 2019년 감사보고서를 통하여, 시설보다는 입양, 가정위탁 등 가정보호 우선 원칙에 따른 보호를 위해 입양 대상 등 선정, 의뢰 절차와 최초 보호조치 후 변경 절차 등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한데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가 보호대상아동 업무처리 매뉴얼에 입양은 부모가 의뢰한 아동에 대해서만 절차를 정하고 부모가 없는 유기아동은 시설보호만 제시하여 가정보호 우선 원칙에 따라 처리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고, 시설로 보호조치된 아동에 대한 입양, 가정위탁 등의 변경조치를 위한 절차도 없어서 시설로 보호조치된 아동에 대한 가정보호로의 변경조치가 시설장의 재량에 맡겨져 있는 실정인 등으로 가정보호 비중이 2014년의 41.9%에서 2018년 37.4%로 감소하였고 시설 중심의 보호체계가 심화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확인한바 있다.
- 2019. 11. 보호대상아동 지원실태 감사보고서

앞선 질문을 뒤집어 다시 한번 묻는다. 부모 없는 아이들에게 지금 국가와 사회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