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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사회학자, 왜 젠더 강의를 '거부'했을까?

1020과 함께 하는 천샘의 젠더수업 1

등록|2021.08.06 08:22 수정|2021.08.06 08:22
내 주 전공은 문화사회학, 사회이론입니다.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서 몇몇 학교에서 시간 강의를 했습니다. 당시 젠더(여성학) 강의 제안을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전공이 아닌 강의를 요청받으니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여성이고 사회학자이니 전공과 무관하게 '당연히' 할 수 있지 않냐는 살짝 무신경한 발언에 애써 가능한 한 친절한 어조로 거절을 하는 일은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관련 강의 부탁을 몇 번 거절하던 어느 날, 한 번은 해보자 싶어졌습니다. 여성인 사회학자로서 젠더 이슈에 대해 관심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강의는 재미있었습니다. 예민한 부분이 있어 다른 강의에 비해 에너지 소모가 컸으나, 그만큼 보람도 컸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젠더(여성학) 강의를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전임이 되고 나서도 1년에 한 번씩은 강의했으니, 햇수로는 벌써 이십 년을 해온 셈입니다.

초짜 선생이었던 나는 왜 젠더(여성학) 강의를 거절했었을까요? 소위 '보따리장사' 주제에 말입니다. 나름으로는 '최소한의 소심한 저항'이었던 것 같습니다. 명색이 사회학 전공자들조차 여성이고 사회학자면 '당연히' 젠더(여성학) 강의 정도는 할 수 있어야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여류작가 아니고 그냥 작가로 불리길 바라는 분들처럼, 나도 여성사회학자 아니고 사회학자, 그리고 문화사회학 또는 사회이론 전공자로 불리길 바랐습니다. 지금도 썩 자신은 없지만, 당시 내가 대단히 높은 젠더의식 소유자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여성인 사회학자는 전공이 여성, 젠더, 가족과 관련이 있어야 취직에서 그나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상황도 불편했습니다. 남성사회학자가 거의 선택하지 않는 전공 분야이니까요.

내가 구직을 하던 당시 여성 전문인력 채용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지만, 그러자 사회학계에서는 전략적(어쩌면 거의 '본능적인') 선택을 합니다. 우선적으로 남성사회학자들의 전공과 겹치지 않는 전공에 여성을 채용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었지요. 사회적 요구에도 부응하고, 기존 질서(?)도 흔들지 않는 나름 괜찮은 전략이었을 겁니다.

그 시절, 나는 큰 목소리로 부당하다 소리치지는 못했지만, 내 전공이 아닌 강의는 못 하겠다 말하는 아주 소심한 방법으로라도 최소한의 자존을 지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여성사회학자인 내 경력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내 '젠더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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