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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도 막지 못한 동성 커플의 '험난한' 투쟁기

[리뷰] 영화 <우리, 둘>

등록|2021.08.09 14:46 수정|2021.08.09 15:19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진화 심리학자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동성애의 진화론적 논거를 찾기 위해 여전히 고심 중이라 한다. 종족 번식은 생물종의 존재에 있어 제 1원칙과도 같은 것인데, 그러한 종족 번식의 원칙을 이반하는 동성끼리의 사랑이 인류의 역사 이래 유구하게 존재해 왔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설명하기에 난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7월 28일 개봉한 <우리, 둘>을 보고 있노라면, 과학자들이 애초에 사랑의 유래를 찾고자 하는 것 자체를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人)을 뜻하는 한자 자체가 두 사람이 서로 맞대고 있는 모양을 형상화시켰듯이, 인류에게 있어서는 종족을 보존하는 것만큼이나, 서로 함께 공감하고 연대하며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삶의 기본 원리라는 믿음을 영화 <우리, 둘>은 보여준다. 서로 기대어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 우리, 그 대상이 이성이건 동성이건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복도를 마주한 두 사람의 사랑 
 

▲ 우리, 둘 ⓒ 버킷 스튜디오


영화는 일흔 줄로 보이는 니나와 마도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스피노자는 철학자로서 드물게 인간의 감정에 대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그의 사상을 풀어주는 <강신주의 감정수업>은 성애를 인간과 인간의 실존이 만나는 순간이라 말한다. 몸과 몸이 만나는 순간, 인간은 본능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내가 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지, 그게 아니면 순간적 연민에 불과한 것인지. 영화는 그들이 만난 이래 20여 년이 흘렀건만 여전히 상대에 매료되는 성애를 통해 두 사람의 사랑을 전제한다. 그러나 이십 여 년 이어온 사랑이지만, 집을 사이에 둔 복도처럼 두 사람이 함께 하는 데는 여전히 세상이라는 간극이 존재한다.

영화는 먼저 마도(마틴 슈발리에 분)의 시점을 보여준다. 그녀는 남편과 사별하고 장성한 세 명의 자녀를 둔 여성이다. 그녀와 니나(바바라 수코바 분)는 이제 복도를 마주한 별거를 정리하고 함께 로마로 떠나 그곳에서 함께 남은 인생을 보내려 한다. 로마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곳이다.
 

▲ 우리, 둘 ⓒ 버킷 스튜디오


그런데 막상 자신이 살아왔던 터전을 정리하려니 쉽지 않다. 자식들도 각자 독립해서 살아가고 있건만 모성이라는 사회적 존재의 틀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평생 자신을 존중해주지 않은 남편 때문에 맘고생을 하며 살아왔건만, 아들은 외려 아버지의 죽음 앞에 냉랭했다며 마도에 대한 유감을 숨기지 않는다. 독거노인이지만 마도는 여전히 그녀를 옭아맨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니나와의 로마행을 주저한다.

자신의 삶을 정리하지 못하는 마도로 인해 갈등이 극에 달한 와중에 그만 마도가 쓰러지고 만다. 뇌졸중이다. 반신불수에 언어까지 마비된 마도. 자신의 육체조차 컨트롤할 수 없는 그녀에게 사랑에의 의지란 불가항력이다. 그녀에 대한 권한은 자식들에게 일임되었으며 일상은 간병인에게 맡겨진다.

마도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그런 그녀를 니나가 발견하면서부터 영화는 니나의 시점으로 옮겨진다. 마도의 병원에서 겨우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니나,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온 집은 마도와 똑같은 구조의 아파트이지만 황량하기 그지없다. 말이 니나의 집이지 그저 말 그대로 집이라는 틀만 있을 뿐, 니나의 삶은 마도의 집에서 마도와 함께 이루어졌음을 니나의 집을 통해 알 수 있다.

이후 마도 딸과의 대화에서 드러나듯이, 독일에서 태어난 니나는 여행 가이드로 각국을 자유롭게 오가다 마도를 만나 이곳에 20여 년째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다. 낯선 국가, 가구 하나 변변치 않은 공간, 그곳을 통해 역설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던진 마도에 대한 니나의 열정적인 사랑이 읽힌다. 그리고 왜 니나가 자식들도 독립한 처지임에도 자신의 근거지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마도에게 분노했는 지도.

주저하던 마도의 사랑은 이제 병으로 인해 자유를 잃었다. 마도에 분노하던 니나는 여전히 마도에 대한 사랑을 깨닫지만 말조차 할 수 없는 반신불수 마도와의 사랑은 이미 놓친 열차와도 같은 처지가 되어 버린다. 그저 복도를 사이에 둔 친절한 이웃집 여인 니나가 자식들에게 결정권이 있는 반신불수 마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였다.

사랑의 듀엣, Deux
 

▲ 우리, 둘 ⓒ 버킷 스튜디오


평범하게 복도를 마주한 아파트의 두 집이라는 공간은 이제 마도와 니나의 은밀한 사랑의 아지트가 아닌 니나가 간병인과 마도의 아들·딸을 넘어 자신의 사랑을 전하는 데 장애물 그 이상도 아니다.

그러나 마도를 향한 니나의 사랑은 그런 제약도 허들처럼 거침없이 뛰어넘도록 만든다. 늦은 밤 니나는 가지고 있던 마도네 집 열쇠로 마도의 집 문을 연다. 그저 얼굴을 쓰다듬고, 볼을 맞대며,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는 것, 그리고 그녀의 등을 감싼 채 함께 눕는 것, 니나는 그저 그걸 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마도를 돌보고 싶을 뿐이다.

심지어 간병인을 쫓아내는 무모함을 마다하지 않는 니나, 이런 니나의 무모한 열정에 마도가 응답한다. 말과 육체의 자유를 잃었던 마도가 사랑에의 의지만으로 니나를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를 알아챈 마도의 자녀들은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려 한다. 두 늙은 레즈비언의 사랑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잘린 간병인은 두 사람이 애써 모은 로마행 경비를 털어가 버린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을 뇌졸중도, 요양원도 막을 수는 없었다. 이미 곁에서 떠난 자식들이지만 가족을 놓지 못하던 마도의 애착이 무색하게 자식들은 마도를, 마도가 그토록 원하는 사랑을 끝낸 인정하지 못한다. 모든 것을 잃고 비로소 사랑을 향한 자유를 택한 마도는 니나와 떠날 결심을 한다. 영화는 이를 통해 묻는다. 당신 인생에서 지금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5252-jh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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