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알리려 60명 포섭? 실제론 징계받고 쫓겨났다
[대해부] '북 지령' 혐의 활동가들, 금속노조 가입 거부당하고 진보정당서 문제 일으켜 탈당
▲ ⓒ 연합뉴스
미국 스텔스기 도입 반대운동뿐만 아니라 '대기업 노조를 장악하고 진보정당 인사 60여 명을 포섭하라'는 등의 북한 지령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충북 청주 지역 활동가 4명이 실제로는 민주노총 가입을 거부당하고 진보정당에선 징계를 받거나 스스로 탈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포섭은커녕 노동계와 진보정당에 제대로 접근조차 하지 못한 셈이다.
또 수사 대상에 놓인 4명이 북한 지령에 따라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려는 목적으로 2017년 지하 전위조직인 '자주통일 충북동지회'까지 결성했다고 전해졌지만, 실상은 매우 단촐했다. 이들이 진행한 활동은 1인시위와 기자회견, 자신들이 운영하는 신문사와 인터넷 블로그에 글을 올린 것이 전부였다. 활동에 참여한 인원도 구속영장이 청구된 4인과 가족 1명, 평소 이들과 함께 활동했던 1명 등 6명 정도에 불과했다.
대기업 장악? 금속노조 가입 거부당하고 제명
최근 몇몇 언론들은 직접 입수한 구속영장을 토대로 '피의자들이 속한 자주통일 충북동지회가 2017년 7월부터 올 5월까지 북한의 대남공작부서 문화교류국의 지령을 받고 대북보고문을 작성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7일 <"생명 다할 때까지 원수님과 함께" 발견된 보고·지령문만 84건>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구속영장청구서에 따르면 구속된 A씨는 "민노총 전직 간부 등과 연계해 지역 노동 운동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도대로 전개하는 임무"를 맡았다는 내용이다.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A씨는 민주노총 소속 전국금속노동조합(아래 금속노조)에 2016년 12월 개별 조합원 가입 신청서를 접수했다. 금속노조는 대전과 충북 지역에 조합원 5000명 이상을 확보하고 있으며 한국타이어 등 제조업 분야 대기업 노동자들이 집중 가입돼 있다.
▲ 북의 지령을 받아 지역 대기업등과 민주노총 인사를 포섭하라는 지령을 받았다고 전해진 A씨. 그는 2016년 민주노총 소속 금속노조에 조합원 가입신청을 했다. 금속노조는 A씨가 조직력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이를 거부했다. 사진은 금속노조가 A씨에게 보낸 공문 ⓒ 충북인뉴스
그러나 금속노조는 두 달 뒤인 2017년 2월 "조직력 훼손을 우려한다"며 A씨에게 조합 가입을 거부한다고 통보했다.
1년 뒤인 2018년 3월 A씨는 변호사를 선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금속노조를 상대로 '조합원 지위 확인의 소'를 제기했다. 재판부는 1심과 2심 모두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7월 금속노조는 서울고법 항소심 판결에 대해 상고를 포기해 그대로 확정됐다.
승소한 A씨는 금속노조를 찾아와 면담하면서 관련된 각종 변호사 비용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A씨의 요청을 규약상 수용할 수 없어 거절했다. 이후 A씨는 조합비를 납부하지 않았다. 1년 이상 조합비를 납부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지위를 상실한다는 규정에 따라 조합원 자격이 박탈됐다"고 전했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민주노총 가입조차 거부당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누굴 포섭한다고 하니 웃음도 안 나온다. 이들이 활동하는 노조가 실체가 있나?"라고 말했다.
함께 구속된 B씨는 민주노총 여성연맹 사무처장 출신으로 충북 보육교사의 의식화 및 포섭 임무를 맡았다고 보도됐다. 하지만 B씨 역시 이미 2003년 민주노총 소속 여성연맹에서 제명돼 노동계를 포섭할 조직력을 지녔다고 보기 어렵다.
당시 민주노총 여성연맹 위원장을 맡았던 L씨는 "2003년 B씨가 사무처장으로 일했는데, 이때 터무니없는 사실을 이유로 내가 위원장이 아니라고 하며 B씨가 위원장 직무대행을 사칭한 일이 있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L씨는 "B씨가 위원장 직무대행을 사칭하며 A씨 등을 동원해 사무실을 강제로 점거하는 등 소란을 피웠다"며 이듬해 정기대의원대회를 열어 제명했다고 밝혔다.(관련기사 : 문재인 특보? 안철수 싱크탱크? '북 지령 활동가' 다른 과거 http://omn.kr/1uqjl)
충북 지역 간호사 조직화·포섭 역할을 담당했다는 C(A씨 배우자, 구속)씨도 영향력 있는 네트워크를 조직했을 가능성이 낮다. C씨는 2017년 4월 문재인 대선 후보 지지선언 당시 자신의 이력을 '전 ○○병원노동조합 사무국장'이라고 표기했지만, 해당 노조는 20여 년 전인 1990년 초반에 해산됐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이들이 관여된 노동조합 활동은 ○○○대전충북노동조합 정도 밖에 없다"며 "이조차도 실체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번에 구속영장이 청구된 사람 외에 가입한 조합원이 더 있는지도 의문이 든다. 이들이 지역에서 노동운동이나 노동조합에 관여된 활동을 한 것이 거의 없다"고 증언했다. ○○○대전충북노동조합 은 A씨가 위원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을 잘 아는 또 다른 노동계 관계자는 "2000년 초기부터 이 사람들은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동계에는 이미 소문이 나 있어 기피 대상이다. 노동운동은커녕 어떻게 생계를 꾸려가는지도 궁금할 정도"라고 말했다.
진보정당 이름 무단 사용... 징계받고 탈당
▲ 2일 오후 북한의 지령을 받아 미국산 스텔스 전투기 도입 반대 활동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충북 청주 지역 활동가 4명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또한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입건된 활동가 중 일부가 2018년 북한으로부터 "진보정당 중 하나인 민중당(현재 진보당) 안에 산하당 조직을 내오기 위한 준비사업을 면밀히 하라"는 지령을 받고 실제로 이행했다고 판단했다.
민중당 충북도당에 확인한 결과, 2018년경 B씨와 D씨, 그리고 D씨의 부인이 인터넷을 통해 당원으로 가입했다. 이들은 가입 직후 분회 3개를 만들었다.
민중당 관계자는 "당원 5인 이상이면 분회를 결성할 수 있다"며 "해당 분회는 이들끼리 만든 것이지만 당규상 제지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스텔스전투기 F-35A 도입 반대운동을 진행하면서 당내 의사결정을 거치지 않고 '민중당 ○○분회' 등의 이름을 사용하며 지역의 다른 시민단체나 인사에게 공문 또는 제안서를 보냈다.
민중당 관계자는 "당의 의사결정 과정을 무시하고 자신들 마음대로 당의 명칭을 사용하면서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며 "그러지 말라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이들이 묵살했다. 이런 이유로 B씨와 D씨, D씨의 부인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고 전했다.
민중당이 지난해 1월 이들 3명을 징계위에 회부하자 D씨를 뺀 2명은 바로 탈당했다. 이후 당권정지 3개월 징계를 받은 D씨는 민중당 충북도당 관계자 2명을 상대로 각각 소송을 제기했다. 하나는 D씨가 공직선거에 출마 못하게 방해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당 징계에 따른 손해를 보상하라는 내용이었다.
민중당 측에 따르면, 공직선거와 관련된 D씨의 소송은 법원이 기각했고, 나머지 소송은 지난 5월 돌연 D씨가 취하했다.
북한지령 수행? 가족끼리 1인시위 등이 대부분
▲ 지난 2일 북한의 지령을 받아 F-35 스텔스기 도입반대 운동을 펼친 혐의로 청주 등지에 에서 활동하던 3인이 구속됐다. 사진은 이들이 전개한 1인 시위 모습 ⓒ 충북인뉴스
이밖에 다수 언론들은 수사당국의 구속영장을 근거로 이들이 북한 지령을 실제로 이행했다는 식으로 전했지만, 이들이 노동계나 시민단체, 정치권에 영향력을 미치기엔 활동 규모가 매우 협소했던 것으로 보인다.
입건된 활동가 4명이 인터넷에 공개한 활동일지를 보면 기자회견, 1인시위, 서명운동이 전부다. 활동 영상을 살펴봐도 구속영장이 청구된 4인과 관련된 가족 이외의 인물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민중당 관계자는 "참석했다거나 제안 단체로 표시된 단체 모두 이들끼리 구성한 단체일 뿐이다"며 "당사자의 동의 없이 특정 인사들의 이름을 도용하거나 소속된 당에서 승인 받지 않은 채 당 명칭을 사용하기도 했다"라고 지적했다.
▲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D씨가 대표인 것으로 알려진 인터넷매체 홈페이지 메인 화면. 해당 페이지는 현재 폐쇄됐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D씨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충북 지역 인터넷매체 역시 언론사로 보기엔 단체 홈페이지에 가까운 모습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김정은 동향이나 자신들과 관련된 단체들이 낸 성명서 등이 대부분이다. 문장도 비문이거나 북한식 어투로 쓰여 있다. 해당 매체 홈페이지는 현재 폐쇄됐다.
한 충북지역 일간지 기자는 3일 칼럼을 통해 '간첩사건 연루 언론사 진정한 언론인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이 기자는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후 20여 통의 전화를 받았다. 물음은 한결같았다. '지역 언론사가 어디냐'는 것이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사건에 연루된 언론사의 실체를 아는 터라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이 사건에 연루된 인터넷 매체를 과연 언론사라고 해야 할까"라고 말했다.
D씨는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유급직원은 없고 자신 외에 시민기자 형식으로 2명 정도가 같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사당국은 북한 공작원이 D씨가 대표인 매체를 언급하며 '신문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의 위대함을 선전하라'는 지령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6일 <국민일보>는 간첩죄가 적용돼 구속된 3인 중 1명이 북한으로부터 받은 공작금 일부를 유용했다고 보도했다. <청주활동가 "1만불 유용" 北에 보고... 북 "사태 파악" 지령> 기사에 따르면, A씨는 지난 3월 함께 활동해온 B씨를 비난하며 "본사 사업비 2만불 중 1만불이 유용, 횡령됐다"는 내용의 대북 보고를 한 것으로 국정원과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이후 북한 문화교류국이 약 1주일 뒤 2019년 접수한 본사 자금 중 1만불을 B씨가 자의적으로 처리한 원인을 상세 보고하라는 지령문을 보냈다. 국정원은 지난 5월 활동가들의 거주지를 압수수색해 확보한 USB에서 이러한 보고와 지령을 확인했다.
이에 대해 구속영장이 기각된 D씨는 "국정원에게 증거가 있는지 물어봐라. 모두 조작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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