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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힌 사람만 천여 명일 듯... '100m 학살 무덤' 또 나왔다

[대전 골령골 유해발굴 현장] 매장 구덩이 서너 개 추가 확인, 마을주민 증언과 일치

등록|2021.08.09 09:31 수정|2021.10.18 15:21

▲ 1950년 군인과 경찰에 의해 총살된 대전 골령골 유해매장 추정지를 시굴 조사한 결과 1학살지에서만 약 100m짜리 유해매장 구덩이가 서너 개 확인됐다. ⓒ 심규상

 

▲ 시굴조사 결과 푸른 색의 포장을 덮은 곳에서 유해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곳에만 최소 수백여 구의 유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 심규상


1950년 군인과 경찰에 의해 총살된 대전 골령골 유해 매장 추정지를 시굴 조사한 결과 1학살지에서만 약 100m짜리 유해 매장 구덩이가 서너 개 확인됐다. 이곳에서만 이미 500여 구의 유해가 발굴돼 남아 있는 유해까지 약 1000여 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행정안전부와 대전 동구청(구청장 황인호)은 지난해 유해발굴 사업을 통해 골령골에서 234구의 유해와 5백여 점의 유품을 발굴한 데 이어 올해도 6월 초부터 유해발굴 작업을 벌이고 있다. 발굴 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선사문화연구원(원장 우종윤) 등은 지난 7일 1학살지의 유해 매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시굴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산기슭 경계를 따라 가로 100m, 세로 10여m에 달하는 타원형 모양의 구덩이에 유해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구간 내에는 폭 2m 남짓한 3개의 구덩이가 나란히 늘어서 있다.  이 구간에서만 지난해와 지난 7월 말까지 500여 구의 유해가 발굴돼, 남아 있는 유해도 최소 수백여 구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약 560㎡(약 170평) 남짓한 공간에 1000여 명이 매장된 셈이다.(관련기사: 천막 들추자 유골밭... 모습 드러낸 40m 학살구덩이)

해당 구간 아래쪽에 있는 가로 50m 구역에서도 희생자 유해로 보이는 유해 일부와 고무신 등 유품이 발견됐다. 하지만 이 구간에 있는 유해 대부분은 도로 공사 또는 건축 과정에서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1학살지에서만 최소 300여m가 넘는 유해 매장 구덩이가 재확인된 것이다.
 

▲ 1950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 현장. 구덩이 위에서는 시신을 내던지고 구덩이 아래에서는 던져진 시신을 나란히 정돈하고 있다. 산자락 바로 아래로 폭 3m, 깊이 2m 가량의 'ㄱ'자 형태의 구덩이가 길게 뻗어 있다. 미 극동군사령부 연락장교 애버트(Abbott) 소령이 찍고, 고 이도영 박사가 1999년 말 NARA에서 발굴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이는 <오마이뉴스>가 만난 마을 주민들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주민들은 1학살지에서는 폭 2~3m, 길이 100m 가까운 구덩이가 2개, 같은 폭의 50m 길이의 구덩이가 1~2개로, 모두 3~4개의 구덩이가 있다고 증언했다. 1학살지에서만 암매장 구덩이 길이가 250~300여m에 이른다는 마을주민들의 증언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앞서 영국 일간신문 <데일리 워커>의 편집자이자 특파원이었던 앨런 위닝턴 기자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 사건 직후 유해가 매장된 모습을 목격하고 쓴 '나는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I saw the truth in Korea) 기사에서 암매장 구덩이 수를 모두 6개라고 썼다.

"6개의 구덩이는 모두 6피트(2m)의 깊이다. 세로는 6피트(2m)에서 12피트(4m)에 이르렀다. 구덩이의 길이는 가장 긴 것이 200야드(200m)였고 두 개가 100야드(약 100m), 가장 짧은 것이 30야드(약 30m)였다."
 

▲ 해당 구간 아래쪽에 있는 가로 50m 구덩이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서도 희생자 유해로 보이는 유해 일부와 고무신 등 유품이 발견됐다. ⓒ 심규상

 

▲ 오마이뉴스가 마을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추정한 골령골 1학살지의 구덩이 위치와 개수. 너비 2m, 깊이 2m 가량의 100m 길이 구덩이 2개와 50m 구덩이 1~2개로 모두 3~4곳으로 추정했었다. 첫번째 열 사진은 스카이뷰, 두벌째 열은 지도이고, 우측에는 지적도를 표시한 것이다. ⓒ 심규상


위닝턴 기자가 본 200m 구덩이는 골령골의 2학살지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1학살지에는 100m(100야드) 2개, 30m(30m) 1개 등 모두 세 개의 구덩이가 있다고 기록해 지역 주민들과의 증언과 유사하다.

골령골에서는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3차례에 걸쳐 국민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을 대상으로 대량 학살(1차 : 6월 28~30일, 1400명/ 2차 : 7월 3~5일, 1800명 / 3차 : 7월 6일~17일, 1700~3700명)이 벌어졌다. 당시 가해자들은 충남지구 CIC(방첩대),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이었고, 그들에 의해 법적 절차 없이 집단 살해됐다.

유해발굴단은 올 하반기 동안 1학살지에서 확인된 유해 매장지에 대한 발굴을 벌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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