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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가 아니라 성노예 피해자입니다

[서평] 아시아 성노예피해자의 기록집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

등록|2021.08.17 09:40 수정|2021.08.17 10:03
한 달 전, 한 북카페에 갔다가 우연히 이 책을 보았다. 책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 '위안부'가 아니라면 뭘까. 호기심에 집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무식하고 몽매했고 무신경했다.

이 책의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안세홍씨는 말한다. 그들은 '위안부'가 아니라 '성노예 피해자'라고.

이 책에는 아시아 일본군 성노예 피해 여성 21명의 이야기와 그들의 사진이 담겨있다. (이 중에는 그 사이 돌아가셔서 생존하지 않는 분도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안세홍씨가 근 25여 년에 걸쳐 취재하고 정리한 기록들이다. 140여 명을 인터뷰했고 그 중 21명을 이 책에 소개했다.

피해자들이 대부분 고령자들인데다 건강도 좋지 않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으므로 그들의 기억은 작은 파편이나마 모두가 소중하고 귀하다. 기억을 기록할 수 있는 시간들이 그리 많지 않다.
 
"일본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일부 피해 여성들에게 대해서만 언급할 뿐 다른 나라의 피해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해 동남아시아의 피해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식을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를 한일간의 감정적인 역사 문제로 보는 폐해가 생겼다. 피해국 간의 긴밀한 연대를 통해 다양한 피해의 목소리가 기록되고 알려져야 한다." p. 6

우리가 그동안 듣지 못했던 목소리
 

▲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표지 ⓒ 글항아리


부끄럽게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위안부'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성노예 피해 여성들만 떠올렸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동티모르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전역에 성노예 피해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충격 그 자체였다.

이 책에 소개된 여성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가난하다는 것. 둘째 병들었다는 것, 셋째 변두리나 오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종교에 귀의했다. 신앙을 가지고 기도를 하며 살아야만 여생을 버텨낼 수 있는 것일까. 신앙은 어쩌면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마지막 한 오라기 빛일지도 모른다.

피해 여성들은 이제 갓 소녀티를 벗어난 14세, 15세에 끌려간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13세도 있었다. 중학교 1, 2학년의 나이다. 왜 이렇게 어린 나이의 소녀를 끌고 갔던 걸까.

태평양 전쟁 후반, 일본에서 태평양 연안의 나라까지 가는 해양 보급로가 차단되자, 일본은 물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 품목에는 '돌격1호'라 불리는 콘돔이 포함되어 있었고, 일본군은 임신이 안 되는 어린 소녀들을 골라서 끌고가는 악랄한 짓을 저지른다.

너무 어린 나이에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피해 여성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내버려지다시피 했다. 천신만고 끝에 집에 돌아왔어도, 그녀들을 맞이한 건 주변의 싸늘한 시선과 따돌림, 멸시였다. 물론 따뜻하게 대해준 가족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원만하지 않았다.

이슬람 문화권의 경우, '명예살인'을 하라며 목숨을 위협을 하기도 했다.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역시 평탄치 않았으며 심지어 결혼 후 낳은 자식조차 일본인을 닮았다며 의심받는 기막힌 경우도 있었다 한다. 고통은 대를 이어가고, 사람들은 시간이 가며 그들의 고통을 잊는다.

언어도 원활하게 통하지 않고 지역도 산간 오지인데다, 생존자들의 현황조차 희미하게 남아있어 물어물어 발품 팔아가며 그들의 기록을 조심스레 채집했을 작가의 노고가 느껴진다. 육체적인 노고도, 경제적인 어려움도 컸을 테지만 역시나 '남성'인 자신이 다가갔을 때 피해 여성들에게 또 한 번의 트라우마를 상기시키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며 염려하는 정신적 어려움도 행간에서 느껴진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 겹겹프로젝트를 통해 소개된 성노예피해여성들 ⓒ 겹겹프로젝트

 
"이야기의 꼬리를 조금씩 이어가지만 그녀의 기억이 토막 나 있고 떠올리기 힘들어 해 깊이 있는 진행이 어려웠다. 더 깊게 들어가려면, 피해자에게 더 큰 고통을 감내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증언을 더 듣기 위해 또 다른 고통을 불러일으킬 수는 없다.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말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p. 148

직접 보지 않았어도, 알 것 같다. 애써 더듬더듬 기억해내며 증언을 했을 그녀들이 얼마나 힘들어했을지. 얼마나 죽을 듯이 힘들게 짜내어 한 자 한 자 토해냈을 지를. '너희가 부끄러운 거지 우리가 창피한 것이 아니야'라고 말한 박두리 피해자의 말처럼, 부끄러운 사람은 따로 있는데 피해자들이 부끄러워하고 힘들어 하고 아직도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지난 8월 10일 MBC<PD수첩>에서 방송한 <부당거래-국정원과 日극우>를 보았다. 일본 우익단체인 국가기본문제연구소라는 단체에서 한국인 두 명에게 특별상을 수상한 소식을 전했다.

그들은 '위안부의 진실'이라는 글을 써서 상을 받았는데, 그 글의 요지라는 건 '위안부'는 '위안부'가 되기 전에 매춘부였으며, '강제 징집 당했다'라는 그들의 증언만으로 사실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인터뷰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당당'했다.

50년 전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전쟁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직도 소리 없는 총성이 그녀들을 두 번, 세 번 죽이고 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이 아직까지 제대로 된 사과와 용서, 배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늙어서까지 트라우마와 공포, 분노에 시달리며 삶을 마감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더 큰 방해의 손이 있는 것은 아닐까.

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진실을 은폐하고 묻어버리려는 국가 폭력이 아직도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것이다. 피해 여성 중 한 중국 여성은 '일본군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 정부가 더 문제'라며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는 정부를 비난한다.

진실을 밝히고 기록하려는 목소리가 없다면, 그런 '가짜 뉴스'가 판칠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 기록들은 더 귀할 수밖에 없다. 이 책에 소개된 스물 한 명의 이름을 한 명씩 불러본다. 얼마나 많은,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성노예피해자들이 스러져갔을까. 한 줌 남은 그 목소리를 기록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도 부끄러워하고 함께 연대해야 한다.
 
겹겹프로젝트 후원

이 책의 맺음말에는 안세홍 작가가 이 녹취 작업을 추진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다. 성노예 피해 여성들을 만나고 취재하고 다니는 과정중 겪어야 했던 신변의 협박과 생명의 위협은 아찔할 정도다. 오죽했으면 가족들을 피신시켰으며 상해보험에도 가입했을까.

이 사실을 일본인들이 가장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일본에서 전시회를 추진하기를 몇 차례, 그러나 알 수 없는(?) 석연치 않은 이유와 거절로 수포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매번이 가시밭길이었으며 고행이었고, 사선을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나날이었다. 그럼에도 안세홍 작가는 이 일을 멈출 수 없다. 성노예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안세홍 작가는 2012년 3월 '겹겹프로젝트' 단체를 일본에서 만들었다. 세계 도시에서 사진전과 강연회를 열고, 피해 여성들의 복지와 건강,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혼자가 아닌 사람들의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작은 개울이 모여 강을 이루고 바다가 되듯 겹겹이 한다는 의미로 '겹겹프로젝트'라 이름 지었다.

성노예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는 더 많이 더 널리 알려져야 한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공분하고 연대할 수 있다. 피해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여기서 뭘 할 수 있겠어' 지레 포기하지 말자. 체념하지 말고, 함께 하자.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은 프로젝트에 동참하는 것이다. 미약하나마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보탤 수 있다면 진실은 은폐되지 않는다. 밝은 세상에 마침내 그 실체를 드러내 보일 날이 분명 올 것이다.

겹겹프로젝트 홈페이지 https://juju-project.net
이메일 jujuproject1996@gmail.com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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