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코시국'... 대형견 여름이는 갈 곳이 없다
[코로나 시대의 반려생활] 좁아진 생활반경... 대형견을 위한 공간과 인프라가 필요하다
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반려인의세계'는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룹니다. 이번 주제는 반려인들에 대한 '코로나 시대의 반려생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순식간에 기가 빨리는 타입이라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지 않게 된 건 그다지 변화라고 할 수도 없었다. 물론 새벽까지 술집에서 흥청망청 소주를 마실 수 없게 된 것은 아쉽지만, 대신 집에서 온라인 주문이 가능한 다양한 전통주를 사서 즐기는 것으로 대신했다. 술에 취하면 바로 침대에 쓰러져 잘 수 있으니 그럭저럭 만족하기로 한다.
코로나가 바꾼 대형견의 일상
개는 매일 산책을 해야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건강한 바이오리듬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여름이는 실외 배변을 고집하는 편이라서 적어도 하루에 세 번은 배변 겸 산책을 하러 나온다. 하지만 대형견의 산책은 넘쳐흐르는 에너지를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사람의 걸음 속도에 맞춰 느릿느릿 걸으며 여기저기 냄새를 맡고 걷는 것은 말 그대로 산책일 뿐이지, 운동이나 놀이가 될 수는 없는 듯했다.
3kg 남짓한 소형견들은 집안에서 노즈워크(간식을 숨겨서 찾게 하는 등 후각을 활용하는 활동)나 간단한 공놀이를 해도 그다지 층간소음을 유발하지 않지만, 대형견은 사실상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에너지 소모 활동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런데 에너지 소모가 부족한 개는 사람의 기준에서 '문제 행동'을 일으킬 확률이 높아진다. 집안에서 물건을 물어뜯거나 짖는 행동으로 욕구를 발산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마당 없는 좁은 집에서 대형견을 키우는 보호자로서 필수적으로 여름이의 에너지 발산 기회를 따로 마련해줄 수밖에 없었다. 펜스가 둘러진 반려견 전용 운동장에 가서 목줄 없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서울에는 시에서 운영하는 무료 반려견 놀이터가 세 군데 있다. 어린이대공원, 월드컵경기장, 보라매공원이다. 대형견과 소형견 운동장이 펜스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덩치가 비슷한 친구들끼리 비교적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물론 동물등록이 되어 있어야 이용할 수 있고, 놀이터 내에서도 배변봉투를 지참하여 배변을 치워주어야 하며, 다른 친구들과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항상 보호자가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 보라매공원의 반려견 놀이터 ⓒ 박은지
▲ 보라매공원의 반려견 놀이터 ⓒ 박은지
사실 서울 전체에 세 군데이니 결코 많다고는 할 수 없는 숫자지만, 대형견이 입장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보니 그나마도 감지덕지다. 여름이는 원래 일주일에 두 번은 이 반려견 놀이터를 이용하곤 했다. 주말에 한 번, 평일에도 수요일쯤 남편이 퇴근 후에 놀이터를 데리고 갔다.
다른 대형견들도 비슷한 주기로 놀이터를 찾는 듯 익숙한 얼굴들도 생겼다. 그렇게 산책 외에 두 번 정도 놀이터를 이용해 뛰어놀고 나면 여름이는 그다지 답답한 기색 없이 나머지 일주일을 평온하게 지냈다.
그런데 그런 루틴이 깨지게 된 것은 역시나 코로나 때문이었다. 반려견 놀이터는 일시적이라고는 하지만 언제 오픈할지 모르는 채로 폐쇄되었고(참고로 거리 두기 단계에 따라 운영 상황이 바뀌니 그때그때 확인해봐야 한다), 여름이도 전보다는 야외 활동을 자주 할 수 없게 됐다.
물론 유료로 이용할 수 있는 애견카페 등이 있지만, 서울에서는 아무래도 대형견도 입장해서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 많지 않다. 주말에는 수도권 외곽에 있는 반려견 놀이터를 찾아가 이용하지만, 대형견에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가까운 '생활권'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생각보다 불편하고 아쉬운 일이다.
개를 키우는 데 필요한 것은 먹고 자는 생존 요소뿐만이 아니다. 건강한 루틴으로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여건과 보호자의 노력이 더해져야 우리 사회에서 대형견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반려동물로서 어우러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원래도 그리 넓지 않은 생활 반경이 코로나로 더욱 좁아진 것이 한층 안타까운 이유다.
만약 대형견 보호자가 코로나에 걸린다면
대형견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과 인프라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것은, 결국 보호자 개개인이 그만큼 부지런하게 움직여서 채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 보호자가 병에 걸리면 어떻게 될까. 코로나 상황이 길어지고 확진자 수가 무서울 정도로 치솟으면서 반려동물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한 번쯤 자신이 부재한 상황을 상상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부부는 대형견 한 마리와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고 있다. 만약 우리가 코로나에 걸려서 둘 다 집을 비우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양이들은 자신의 영역을 떠나면 스트레스를 받는 동물이라 집에서 돌봄을 받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다행히 나는 우리 아파트에서 고양이 집사끼리의 돌봄 커뮤니티를 가지고 있어서 서로 집을 비울 일이 있으면 이웃끼리 고양이를 돌봐주곤 한다.
하지만 대형견 여름이는 어떨까. 여름이를 입양한 후로 우리는 해외여행 갈 때를 제외하면 여행을 가도 아예 여름이를 데리고 다녔다. 집을 비울 때 강아지는 동물병원이나 애견카페 등에서 호텔링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대형견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일단 도심에서는 여름이를 맡길 곳이 별로 없다. 대형견 호텔링을 해주지 않는 곳이 많지 않기도 하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오가며 보는 도심 속 시설은 대형견이 지내기에는 마땅치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며칠만 운동을 안 해도 에너지가 넘치는 대형견은 운동장이 있는 넓은 곳에서,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되는 시설에 맡기는 것이 좋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웬만하면 서울을 벗어나 여름이가 훈련을 받았던 시설에다 호텔링을 맡기는데, 구로에서 출발해 남양주나 양평 같은 곳에 여름이를 맡기고 인천 공항에 간 다음, 돌아오는 길에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여름이를 픽업하러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었다.
▲ 양평에 있는 한 대형견 운동장. 여름이가 위탁 훈련을 받기도 했던 시설. ⓒ 박은지
코로나 확진으로 보호자가 격리될 경우 남은 반려동물이 돌봄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를 지자체에서도 고민하고 있고 실제로 시행하고 있는 곳도 있지만, 아직 대형견에게 도심 내 적절한 공간과 서비스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면 만약 우리 부부가 모두 코로나에 확진된다면, 누가 여름이를 수도권 외곽까지 데리고 나가 적당한 곳에 호텔을 맡겨줄까? 아니면 격리 시설에 들어가기 전에 여름이를 운송(?)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질까? 그런 걸 생각하면 벌써 앞이 막막하다.
여름이는 이제 2.5살, 견생의 절반을 코로나와 함께 살아온 셈이다. 아무리 더워도 밖에서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 대형견의 일상이 원래의 루틴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얼마나 걸릴까. 적어도 우리 부부가 아프지는 말아야 할 것 같다.
이번 주에 우리 부부는 둘 다 잔여 백신 예약에 성공해서 1차 백신을 맞았다. 백신을 맞아도 델타변이에서 안심할 수는 없다고 하니, 앞으로도 최대한 불필요한 외출을 줄이고 조심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하지만 야외 활동이 절실한 대형견과 살아가다 보니 하루빨리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이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 더욱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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