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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승리의 표상'은 어떻게 '도핑의 화신'이 됐나

[신작 도서 리뷰] 스포츠 도핑에 대한 모든 것, '도핑의 과학'

등록|2021.08.29 11:38 수정|2021.08.29 11:38

▲ 책 <도핑의 과학> 표지 ⓒ 동녘사이언스


지난 8월 6일, 제32회 도쿄올림픽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던 그때 한국과 브라질의 여자배구 4강전이 있었다. 세계 랭킹 14위의 우리나라 여자배구가 4강 신화를 써낸 한편에선, 브라질 에이스 카이세타가 도핑에 적발되어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귀국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녀는 금지약물이 우연히 몸 안으로 들어갔다며 일말의 고의성이 없었다는 걸 호소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한국도핑방지위원회는 '도핑방지규정 위반행위는 선수의 고의성 여부와는 무관하게 성립되며 세계반도핑기구는 엄격한 책임 원칙을 채택하고 있습니다'라고 못 박는다.

도핑은 운동선수가 일시적으로 경기 능력을 높이기 위해 종류를 불문하고 해당 종목에서 금지된 약물을 복용 또는 주사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빠른 속도로 발달하는 첨단 과학기술이 운동선수들의 경기 도구에도 적용되면서 소위 '기술 도핑'의 시대로 들어섰다. 도핑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 양상이 더욱 가열될 거라는 우려가 현실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최강 작가가 <한겨레>를 통해 연재했던 기사들을 모아 단행본으로 만들어 내놓은 책 <도핑의 과학>(동녘사이언스)은 다분히 의학적인 관점으로 도핑 사례와 의견을 정신, 근육, 힘, 도구, 성별로 나눠 전한다.

'도핑의 과학'보다 '도핑의 역사'로 보는 게 맞을 듯한데, 아무리 의학적인 관점으로 도핑을 보고 있다지만 도핑의 시작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총체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라는 측면에서 과학 책이 아닌 인문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충분히 단련된 몸, '정신'을 다루는 도핑

스포츠에선 몸이 절대적이라지만 정신이 외려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겨루는 대회에 출전할 정도라면 이미 몸이 충분히 단련되어 있을 테고, 보다 차분하게 또는 섬세하게 긴장하지 않고 집중력을 발휘하는 게 중요하게 작용할 테니 말이다.

미국의 사격 선수 매튜 에몬스는 올림픽에서 늘 마지막 한순간에 무너지곤 했다.  '에몬스 징크스'라는 말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2004년 아테네 때는 1위에서 꼴찌로, 2008년 베이징 때는 1위에서 4위로, 2012년 런던 때는 1위에서 3위로 주저앉은 바 있다.

이런 경험을 해 봤거나 두려워하는 이가 비단 에몬스뿐만은 아닐 터, 많은 선수들이 도핑의 유혹에 넘어가 마약 물질 '코카인'을 이용했다. 전설적인 축구 선수 마라도나는 1991년 복용 사실이 적발되어 15개월 출장 정지를 당했고, 1990년대 후반 세계를 호령했던 테니스 선수 힝기스는 2007년 윔블던 대회에서 양성 반응이 나와 2년 자격 정지를 당했다.

또, UFC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이었던 존 존스는 2015년 도핑 검사에서 코카인이 검출되어 중독 치료 프로그램 이수 처분을 받았다. 비록 코카인이 운동 능력에 영향을 끼칠 만큼 대사 작용을 활성화시킨다는 근거는 없지만, 고양된 기분과 명료해진 사고를 유발하는 건 맞기에 쓰이는 게 아닌가 싶다.

도핑은 뭐니뭐니 해도 '근육 강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를 그야말로 2등분한 미국과 소련의 '냉전'은 많은 산물을 낳고 또 변화시켰다. 미국과 소련은 모든 분야에서 자웅을 겨뤘는데 스포츠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1960년을 전후한 그때, 비록 아직 약물 복용의 윤리성이 문제시되지 않았었지만 미국과 소련 모두 근육 강화를 위한 약물을 선수들에게 투여해 전쟁 같은 경기를 치뤘다. 그 악명 높은 '스테로이드 도핑'의 시작이다.

스테로이드 중에서도 성 호르몬, 그중에서도 남성 호르몬 안드로겐이 도핑에서 주로 사용되어 금지 약물 목록에 올라 있다. 그중에서도 테스토스테론이 대표이자 상징이랄 수 있는데, 투여만 해도 근육이 늘어나고 힘이 향상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은 서독과 동독으로 나뉘는데, 동독은 만성적인 불황에 시달리며 국가의 자존심까지 짓밟히자 운동 경기에서 성과를 내는 데 골몰했다. 비교적 빠르고 저렴하게 체제의 우월함을 선전하고 나라의 명망을 높이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동독은 자국 여자 선수들에게 조직적으로 또 비밀스럽게 테스토스테론을 투여했고 국제 경기에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좋은 성적을 냈다.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도핑은, 동독 뿐 아니라 이후에 러시아에서도 큰 사건으로 번져 계속되고 있다.

도핑을 둘러싼 논란들

여기, 위대한 전설에서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한 이가 있다. 세계 최고의 사이클 대회 '투르 드 프랑스' 7연패에 빛나는 랜스 암스트롱, 그는 고환암을 이겨내고 전설이 되면서 '인간 승리의 표상'으로 칭송받았다. 하지만, 치밀하게 계획해 오랫동안 계속한 도핑 적발로 '도핑의 화신'이 되었다.

그가 맞은 건 'EPO'로 적혈구생성인자이다. 늘어난 적혈구만큼 근육에 산소가 더 많이 공급되고, 경기력과 지구력이 향상하는 효과를 낸다. 암스트롱은 온갖 기지를 발휘해 용의주도하게 EPO를 투여했고 같은 팀 선수들을 조직적인 도핑에 가담시켜 공범을 만들고는 협박을 일삼았다. 스포츠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도핑의 정수를 선보인 것이다.

도핑 논란 한가운데에 있는 '도구'들이 생각 외로 많다. 수영의 수영복, 자전거 대회의 자전거, 장애인 선수의 보조기구, 야구 선수의 팔꿈치 수술(토미 존 수술)까지. 복장인지 도핑 도구의 일환인지, 보조기구인지 도핑 도구의 일환인지, 수술의 영역인지 도핑 도구의 일환인지. 어떤 목적을 두고 어떤 생각으로 해당의 것들을 대하는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이를테면, 수영복을 예로 들어 수영하는 데 수영복은 필수일 텐데 이왕 입는 수영복을 수영 기록 단축에 최대한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만들면 어떻겠는가?

참으로 오래전부터 인간 사회에 존재한 스포츠, 대중은 선수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그리고 채 1초도 되지 않는 순간에 승부가 결정되는 것에 일찍이 느껴 본 적 없는 감정을 느낀다. 하여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포츠는 그리고 선수는 대중의 열광을 먹고 살며 어떻게든 한 발 더 나아가려 한다. 그러다 보니 도핑의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도핑의 역사가 곧 스포츠의 역사인 이유이다.

이 책 <도핑의 과학>을 보면, 도핑을 달리 볼 것이고 스포츠를 달리 볼 것이며 우리 자신을 달리 보게 것이다. 우리는 스포츠를 좋아하고 스포츠는 도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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