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2021년 '미라클 작전'과 1991년 모가디슈의 탈출

[김성호의 씨네만세 334] <모가디슈>

등록|2021.08.27 17:58 수정|2021.08.27 17:58
미라클 작전이 뜨겁다. 미군 철수로 탈레반 수중에 넘어간 아프가니스탄에서 민간인 학살과 테러, 인권침해 보고가 이어지는 가운데 들려온 소식이다.

26일과 27일 2차례에 걸쳐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탈출한 군 수송기가 인천국제공항에 내렸다. 76가구, 390명의 아프간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피해 한국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들은 난민이 아니다. 주 아프간 한국 대사관과 병원, 직업훈련원, 재건기관인 코이카 등에서 근무한 사람과 그 가족이다. 미국과 함께 아프간에서 터전을 마련한 한국 관련기관 종사자들로, 현지에 남을 경우 탈레반의 목표가 될 우려가 컸다. 한국은 그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난민이 아닌 특별공로자 자격으로 한국에 장기체류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탈출을 위해 수송기에 매달렸다 추락하는 현지인, 제 아이라도 받아달라며 아이를 철조망 위로 건네는 부모의 모습이 외신을 통해 보도된 게 며칠 전이었다. 정부에 반하는 활동을 한 이들이 죽어나갔다는 소식도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살기 위해 탈출하려는 이들에게 기꺼이 손을 내민 정부는 국민들에게도 찬사를 받았다.
 

모가디슈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미라클' 지원받던 나라에서 지원하는 나라로

390명을 살린 탈출작전에는 동맹인 미국과 파키스탄의 도움도 컸다고 했다. 처음 집결지까지 무사히 온 가구는 단 6가구뿐이었다. 다 합쳐도 26명밖에 되지 않았다. 정부가 탈출할 협력자 명단에 작성한 76가구 가운데 70가구가 자력으로 집결지에 오는 데 실패한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을 무사히 데려오기 위해 정부는 미군을 태운 버스 6대를 다시 배치했다. 그 버스를 통해 나머지 364명을 더 구할 수 있었다. 정부가 파견한 공중급유수송기와 군 수송기, 특수병력도 제 역할을 다했다. 정부의 외교력과 국방력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직역하면 기적인 '미라클 작전'을 한국이 거둔 또 다른 기적을 떠올리게 한다. 다름 아닌 한국의 눈부신 발전, 한강의 기적이다. 한국전쟁과 전후 복구과정에서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았던 한국이 내로라하는 선진국이 되어 다른 나라에게 도움을 주었으니 말이다.

돌이켜보면 당연한 일은 아니다.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한국은 전혀 다른 상황에 놓여있었던 것이다. 한국이 UN에 가입한 건 1991년이다. UN에 가입하기 위해 투표권을 가진 가입국들의 환심을 사야만 했다. 서울올림픽을 1년 앞둔 1987년,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 대사가 처음 파견된 것도 이 때문이다.
 

모가디슈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천만감독 류승완, 30년 전 소말리아로 가다

<모가디슈>는 천만감독이자 한국에서 가장 시원한 액션을 찍는 흥행감독 류승완의 작품이다. <베를린>과 <군함도>에 이어 지명을 제목으로 뽑은 세 번째 작품으로, 모가디슈의 상황이 있는 그대로 영화의 줄기가 되었다.

영화는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군을 소말리아 반군이 축출하는 1991년을 배경으로 한다. 외세를 뒤에 업고 출신 부족 중심의 정치를 하던 사이드 바레 장군이 밀려나자 도시는 질서가 사라진다. 정부군과 반군이 내전을 벌이고 거리엔 시체가 즐비하다. 각국 대사관이 안전한 외국으로 도망치는 와중에 한국 대사들도 탈출을 시도한다.

실제 역사로도 유명한 1991년 탈출 당시엔 한국 대사와 북한 대사가 공항에서 만났다고 했다. 안면이 있는 데다 말도 통했던 이들은 서로를 위로했고, 탈출선이 닿은 한국이 북한 대사 일행 14명을 데리고 탈출했다.

류승완 감독은 역사적 사실에 상업적 감각을 가미해 호쾌한 액션영화를 완성했다. 질서가 사라진 도시에서 탈출하려는 두 나라 대사관 사람들의 탈출기를 그린 것이다. 당장 달아날지 모를 생명 앞에선 이념경쟁도 수십 년 간 쌓아온 적개심도 좀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 특수한 상황에서 감독은 한국이 처한 상황의 부조리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모가디슈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불편한 공존을 극대화한 각색, 성공

단순하지만 분명한 부조리를 표면 위로 끌어내기 위해 영화는 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한국 대사관을 찾는 설정을 채택했다. 살아남기 위해 한국 대사관 문을 두드린 이들과 그들에게 문을 열어준 이들의 미묘한 공존과 갈등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추가 된다.

이들은 서로 엿듣고 감시하며, 발길질과 주먹질을 하고, 떨어지지 않는 깻잎 꼭지를 잡아주기도 한다. 함께 생사를 넘는 탈출을 시도하고, 서로에게 탈출로를 마련해주는 배려도 한다. 가장 위협받는 순간에 발현된 인간애와 동포애는 베테랑 감독에게 여지없이 포획된다. 액션은 호쾌하고 자동차 추격전은 속도감 넘치며 함께 위기를 건너는 이들은 조금씩 뜨거워진다.

전작 <군함도>에서 혹평과 마주했던 류승완 감독은 절치부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군함도>에서 유머와 가족애, 연대와 반전에 이르는 장치를 과도하게 사용한 그이지만, <모가디슈>에선 흥행을 위한 전형적 코드 대신 기본기에 충실한 인상이다. 감정표현은 상당히 억제했고 슬로우모션이나 지나친 클로즈업도 비교적 자제했다. 모가디슈의 폭력과 두 나라 사람들의 탈출을 위한 공존을 보이는 것으로 충분한 메시지가 되리라 확신한 모습이다.

미라클 작전은 <모가디슈>에게도 기적이 될 듯하다. 1991년의 소말리아와 2021년의 아프간이 결코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미군의 주둔과 철수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혼란과 인명피해가 이어졌다. 내전은 여전히 수습되지 않고 있다. 그 공통점은 아프간에 대한 관심을 <모가디슈>로 돌릴 수도 있을 듯하다. 생존을 위해 타국 대사관으로 도망치기 바빴던 1991년으로부터, 약자에게 손을 내밀고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기까지 우리가 건너온 것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모가디슈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