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킨 것 : 91년 '모가디슈'와 2021년 미라클 작전
[하성태의 사이드뷰] 아프간 협력자 390명 구출이 보여준 국가의 역할
▲ <모가디슈>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대한민국 외교사에 있어 우리가 인도적 고려에 따라 적극적으로 인력과 자산을 투입해 현지인들을 구출해 온 첫 번째 사례입니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의 설명처럼, 아프간인 390명을 극적으로 구출해낸 '미라클 작전'의 의의는 최초라는 데 있을 것이다. 마치 탈출 장르 영화를 연상케 하는 극적인 장면의 주체가 할리우드 영화 속 미군 특수부대가 아닌 국방부, 공군 등 66명으로 구성된 우리 특수임무단이었다. 아프간 카불 공항에서 김일응 주아프간 공사참사관과 아프간 현지 대사관 직원이 감격에 젖어 포옹하는 장면 또한 그 자체로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얼굴은 안도감의 정체를 정확히 확인시켜줬다. 전쟁과 내전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와 여성 등 약자라는 진리, 그리고 이들을 구하는 인도적 행위의 필요와 당위 말이다.
진짜 영화와 영화같은 현실
▲ 26일 오후 인천공항 1터미널에서 아프간에서 한국을 도왔 던 조력자들이 특별입국자 신분으로 입국하고 있다. ⓒ 이희훈
노태우 정권이던 1991년은 대한민국과 북한이 UN 회원국 가입을 위해 경쟁하던 시기였다. 훗날 동반 가입을 예상치 못했던 양쪽 외교관들은 저 멀리 소말리아에서까지 경쟁을 펼쳤다. UN 회원국들의 투표로 UN 가입이 정해지는 상황에서 강대국들 사이 일종의 캐스팅보트를 쥐었던 것이 바로 아프리카 국가였고 소말리아도 그 중 하나였다.
<모가디슈>는 소말리아가 내전의 포화에 휩싸였던 1991년 연말연시를 배경으로, 외교 총력전을 펼치던 남북 양국 외교관들이 어떻게 협력해 탈출했는가를 그린 작품이다. 당시만 해도 공산국가들을 중심으로 20년 앞서 외교전을 펼친 북한이 우리보다 외교력이 월등할 때였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내전 상황에서 그런 우위는 백해무익이었다.
<모가디슈>는 한신성 대사의 시점으로 남북 외교관들과 그 가족들이 포성에 휩싸인 소말리아 수도를 탈출하기까지의 과정을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은 해외 로케이션과 출중한 연출력을 바탕으로 실감나게 그려낸다. 그리고 실화영화의 숙명처럼, 영화 속 김윤석 배우가 연기하는 한신성 대사의 실제 인물인 강신성 전 대사도 <모가디슈> 개봉과 함께 덩달아 주목을 받기도 했다.
모가디슈(소말리아 수도)에 있는 이탈리아 대사관 앞에서 북한 외교관들과 함께 죽을 힘을 다해 태극기를 흔들었어요. 북한 외교관 손에 태극기가 들려 있었으니…. 이념을 초월해서 함께 살아나가 보겠다는 거였죠. - 강신성(84) 전 주(駐) 소말리아대사, 3일 <중앙일보>, <"모가디슈 총성 속, 남북은 함께 태극기 흔들었다"> 중에서
남북한의 분단이라는 이념을 초월한 생존 의지. <모가디슈>의 주제는 고스란히 이번 미라클 작전의 목표와 맞닿아 있다. 그 이념을 이번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가로지르는 정치와 종교로 치환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정치와 종교를 초월해 현지 조력자들과 그 가족들까지 구출해낸 2021년과 달리, 30년 전 우리 정부는 특수임무단을 급파할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 영화는 통신 두절 등 급박하게 돌아가는 내전 상황이나 국내 정치 상황을 그 배경으로 언급하긴 했다.
하지만 당시는 자국민 보호라는 국가의 당연한 존재 의미가 강조되는 시절이 아니었음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아덴만 작전, 즉 대한민국 해군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 주얼리호를 소말리아 인근 아덴만 해상에서 구출해낸 작전을 정부가 치적으로 앞세웠던 것도 불과 10년 전이다.
당시 강신성 대사는 우리 정부에 구조 요청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자 소말리아와 가장 가까운 이집트 대사관 측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집트 대사관에서 한국 총영사관에 연락해 이들의 상황을 알렸지만, 우리 외교부가 당장 구조기를 보낼 형편이 될 리 만무했다.
<모가디슈>가 소환한 1991년 우리 외교관들의 '남북화합 자력갱생' 탈출기가 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강신성 대사와 남북 외교관들은 이탈리아 대사관의 협조로 타국 군용기를 타고 가까스로 소말리아를 탈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이들
▲ 26일 오후 인천공항 1터미널에서 아프간에서 한국을 도왔 던 조력자들이 특별입국자 신분으로 입국하고 있다. ⓒ 이희훈
<모가디슈> 속 아이들의 존재는 미비하다. 그래도 딱 두 번 강조된다. 한 번은 북한 아이들이고, 또 한 번은 소말리아 아이들이다. <모가디슈>는 우여곡절 끝에 대한민국 공관에 첫발을 들인 북한 외교관 부인들이 아이들의 눈을 가리는 장면을 삽입했다. 남한의 신진문물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않기 위한 이념적 행위이자 분단 상황과 이념 대결을 강조하는 영화적 연출이다.
또 다른 장면은 북한 외교관 가족들이 모가디슈 거리를 헤맬 때다. 북한 공관에 들이닥친 무장강도들로 인해 무작정 거리로 내몰린 림용수 대사(허준호)와 태준기 참사관(구교환), 그리고 직원들과 가족들은 거리에서 무장한 소말리아 아이들을 맞닥뜨린다. 놀라 멈춰선 북한인들에게 아이들이 총을 쓰는 시늉을 하자 림 대사와 대사관 식구들 전체는 식겁해 한다.
그러자 한바탕 깔깔대던 소말리아 아이들은 잘 놀았다는 듯 소총을 허공으로 갈겨댄다. 소말리아 아이들을 타자화하는 동시에 내전의 참상을 압축적으로 묘사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전쟁 상황에서 누가 가장 피해를 입는지,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를 말이다.
인천공항 입국 당시 아프간 조력자들 아이들의 품에 안겨 있던 인형들에 눈길이 간 건 그래서였다. 생명의 위협을 받는 본국을 떠나 머나먼 타국에 도착한 아이들의 당황스러움을 덜어주기 위해 법무부가 마련했다는 그 인형 말이다.
금번 '미라클 작전'을 두고 대한민국 신뢰도 상승이나 국격 상승을 자평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같은 작전에 실패했거나 성과가 미비했던 일본이나 유럽 국가들과 비교하면 당연한 평가다. 소말리아 내전 당시 우리 외교관들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한 30년 전 상황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외적 성과도 중요하다. 다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자칫 어떤 나락으로 떨어졌을지 모를 그 아이들과 소중한 생명들을 구해낸 것이다. 그 지점이야말로 우리가 스스로 자부심을 느껴야 할 대목이다.
구조를 요청하는 또 다른 아프간인들을 대상으로 구출작전이 계속돼야 한다는 주장도, 정부로부터 '현지 조력자' 지위를 부여받은 이들 아프간인들 외에 우리 땅에 머물고 있는 또 다른 난민들의 지위와 처우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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