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실크로드 흔적 찾아 나선 길에 만난 '독특한 경관'
[경기 별곡] 화성의 바닷가 그리고 제부도
▲ 제부도 바닷가에서 펼쳐지는 전경하루에 2번 물길이 갈라지는 일명 '모세의기적'이 있는 제부도는 수도권 근교 여행지로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 운민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지독한 여름 더위도 어느덧 그 종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땡볕에 노출된 덕분인지 온몸이 땀으로 가득하다. 몸의 수분이 전부 빠져나가 껍질만 남을 것만 같았다. 다행히 화성시 송산면 주위로 어디를 가든지 포도밭과 포도를 파는 매대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진한 해풍을 맞았다고 하는 송산포도를 한 알씩 집어먹으며 실크로드를 생각해본다. 따지고 보면 서역의 주요 기점 중 하나인 투루판도 포도가 매우 유명한 고장이다. 중국에서도 가장 더운 도시로 알려진 투루판은 극심한 일교차로 인해 그곳에서 나는 포도는 엄청난 당도를 품게 되었고, 특히 건포도의 품질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화성의 한갓진 마을에서 투루판을 떠오르게 될 줄 몰랐다. 어서 빨리 이곳의 항구를 찾아 나의 상상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만들고 싶었다.
▲ 전곡항의 풍경비교적 최근에 조성된 전곡항은 요트가 펼쳐지는 마리나로 이국적인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 운민
화성 실크로드 트레킹에 속해 있는 화성의 대표적인 항구 중에 우선 가장 북쪽에 위치한 전곡항으로 떠나려고 한다. 행정구역상 안산에 속해 있는 대부도와 마주 보고 있고, 이국적인 풍경의 요트마리나가 줄지어 들어서 있는 장관을 볼 수 있는 항구다. 화성 당성에서 출발하여 제부도 입구를 거쳐 기다랗게 뻗어 있는 반도의 끝에 전곡항은 자리 잡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어항에서 볼 수 있는 항구를 가르는 짠내, 매대에 넘치는 물고기를 볼 수 있는 어시장의 풍경 대신 옷을 쫙 빼입은 듯한 휴양지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이다.
전곡항은 전국 최초로 레저 어항 시범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생긴 새롭게 조성된 항구라고 한다. 물론 마리나 항구의 뒤편으로 돌아들어가면 꽃게 등 다양한 해산물을 즐길 수 있는 식당가가 두루 있긴 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실크로드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았다. 이번엔 서해안을 쭉 따라 내려가 화성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항구, 궁평항으로 이동해 보기로 한다. 낙조가 아름다운 항구로 유명하고 유독 맑고 깨끗하며 궁에서 직접 관리하던 땅이라 하여 '궁평' 혹은 '궁들'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전곡항과 또 다른 분위기가 항구 이곳저곳에서 느껴진다. 광활하게 펼쳐진 갯벌과 빨간 등대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의 풍경까지 전곡항이 화려한 귀족의 느낌을 가져다준다면 궁평항은 삶을 관조하는 노인의 이미지가 엿보인다. 궁평항에서 동쪽 방향으로 나아가면 궁평리 해수욕장과 저 멀리 궁평리 해송 숲까지 이어져 있는 트레킹 코스가 있어 한 번 걸어가 보기로 결심했다.
▲ 궁평항 낙조길에서 보이는 독특한 경관들궁평항 낙조길에서 보이는 독특한 경관들이 많다. ⓒ 운민
궁평리 낙조길이라 불리는 이 트레킹길은 바다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편한 데크길로 구성되어 있어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다. 그 길을 따라 조심스레 걷다 보면 그 앞에는 갯벌과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바다가 시원하게 다가온다. 지평선 너머 어딘가 중국 대륙이 있었을 것이고, 그곳을 지나 서역으로 수많은 상인들이 지나갔을 거라고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이 웅장해지는 기분이다.
길의 반대편으론 절벽을 비롯한 독특한 지형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주로 규암과 편암 등 변성암이 분포하며 오래전에 마그마가 분출되면서 독특한 경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좀처럼 보기 힘든 지질 구조라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질만 하건만 사람들은 넓은 백사장에서 저마다의 추억을 쌓는데 여념이 없다.
이제 2km의 길쭉한 백사장을 자랑하는 궁평리 해수욕장을 지나 내친김에 궁평항이 자랑하는 또 다른 명물인 해송 숲까지 가보기로 한다. 족히 100년이 넘은 해송이 숲을 이루고 있고, 바다와 갯벌을 마주 보며 시원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동안 소나무 숲을 거닐며 모처럼만의 휴식을 즐기면서 궁평항의 일정을 마무리지었다.
일명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는 하루에 두 번 썰물이 지날 때만 들어갈 수 있는 섬 제부도를 가야 할 차례가 왔다. 제부도로 들어가는 유일한 육로를 지나기 전 광활한 갯벌을 살필 수 있는 제부도 조개 벤치로 가서 끝이 보이지 않는 뻘을 헤아려본다. 낮시간엔 대체적으로 물길이 열리는 시간대이기 때문에 제부도를 육로로 건너는 데는 무리가 없으나 계절마다 철마다 시간이 달라지기에 사전 시간 체크를 꼭 숙지하고 가야 한다.
제부도로 들어가는 둑방길은 약 1.8km 정도의 거리지만 다른 대교들과 달리 길이 구부정해서 섬으로 입도하는 시간이 체감상 더 걸리는 편이다. 하지만 그런 만만치 않은 과정들이 제부도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일지 모른다.
▲ 제부도의 바닷길을 따라 조성된 제비꼬리길제부도의 바닷길을 따라 조성된 제비꼬리길은 화성 실크로드길의 일부로서 한시간 동안 가벼운 산책길을 즐길 수 있다. ⓒ 운민
여의도 면적의 4분의 1도(0.9제곱킬로미터) 안 되는 섬이지만 길이 1.4km의 천혜의 백사장을 지니고 있고, 화성 실크로드 길에 속해 있는 제부 꼬리 길이라는 트레킹 코스가 제부도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우선 유명하다는 제부도의 트레킹길을 걷기 위해 출발지인 제부 어촌체험마을로 발길을 옮겼다. 규모가 워낙 작은 섬이라 전체가 평지로 구성될 것만 같지만 섬의 중심부엔 당산이 있고, 서북부엔 가장 높은 산인 탑산이 자리한다. 탑산은 해안가와 바싹 붙어 그곳을 지나가긴 힘든 일이었지만 절벽길을 따라 걸어가는 길이 생기면서 제부도에 방문하면 꼭 가봐야 할 필수코스로 자리매김하였다.
한 시간가량 해안산책로를 걸으며 아름다운 절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았지만 경기문화재단의 경기창작센터에서 진행했던 문화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제부도 곳곳에 설치된 조형물을 살펴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라 할 수 있다. 밴치와 쉼터 이정표 등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을 소재로 하여 제부도라는 섬을 특별한 공간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 조형물에서 사진을 찍으며 제부도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추억을 남긴다. 각종 표지판과 제부도에 관한 각종 얽힌 이야기들을 읽으며 한 걸음씩 나아가니 넓은 백사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 제부도의 상징 매바위제부도 해수욕장 끝 머리에 자리잡은 매바위는 제부도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유명하다. ⓒ 운민
이곳에서 어디를 가야 하고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오로지 뻗은 대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인생의 방향도 이렇게 쉽게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헛된 생각을 잠시 가져봤다.
얼마나 걸었을까? 백사장의 가장 끝 쪽에 자리한 독특한 바위섬이 보이기 시작한다. 제부도의 상징이라 일컫어지는 매바위 또는 삼 형제 촛대 바위라고 불리는 곳이다. 밀물 때는 섬처럼 둥둥 떠있지만 물이 빠지면 바로 앞까지 걸어서 갈 수 있다고 한다.
이곳을 마지막으로 화성의 실크로드를 주제로 하는 답사가 마무리된다. 그 시절의 화려했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었지만 바다는 천 년 전에도 변함없이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3년 안에 실크로드를 따라가는 취재를 시작할 예정인데 그 출발점으로 다시 화성을 만나길 기대하며 제부도와 작별을 고한다.
덧붙이는 글
9월초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권>이 출판됩니다. 많은 사랑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번주부터 팟케스트 탁피디의 여행수다에서 경기별곡 라디오가 방영될 예정이니 많은 청취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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