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섯씨구' '호떡하라구' 온 국민이 보는 광고에 이게 뭔가
[우리말 천태만상⑤] 김병희 서원대 교수가 본 광고 언어 실태와 대안
기획 '우리말 천태만상'은 세종국어문화원과 오마이뉴스가 함께합니다.[편집자말]
▲ 오뚜기의 광고 ⓒ 오뚜기
"이렇게 맛있으면 다이어트는 호떡하라구!" (오뚜기 식품 호떡 광고)
"힘내야 하는 모든 순간, 1포하라" (정관장 홍삼정 광고)
"치킨이 생각날 땐 비비큐가 딹" (비비큐 치킨 광고)
요즘 흔히 등장하는 이런 말장난 광고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눈길을 끄는 한 단어, 한 문장, 또는 15초 방송 광고로 승부해야 이 영역의 특수성이 있다. 하지만 과도한 문법 파괴, 언어 파괴가 상술에 활용되고,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든다면? 특히 광고 언어는 무차별, 반복적으로 노출되기에 이런 일탈을 마냥 애교로만 웃어넘길 수 없다.
▲ 신세계 백화점의 온라인 유통망인 SSG닷컴이 2019년 선보인 광고. ⓒ SSG닷컴
한 통신사는 요금을 내리면서 기분 좋다는 표현을 '下下下 好好好'라는 정체불명의 한자로 표기했다. 또 2018년 지방선거 때 문화방송은 '국민의 心부름'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선거방송을 진행했다. 한자의 뜻과는 별개로 음만을 차용한 이런 언어유희 광고는 많다. 한자 표기뿐만이 아니다.
'섯씨구' '식석갓세'
위의 말은 신세계 백화점의 온라인 유통망인 SSG닷컴이 내놓았던 광고 언어다. 지난 2016년 SSG의 한글 자음 'ㅅㅅㄱ'을 '쓱'(빠른 배송)으로 표현해 매출을 올렸던 이곳은 '얼씨구'를 '섯씨구', '신선한데'를 '식석갓세'로 썼다. 2019년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인스타그램에 '쓱세권' 동영상 광고도 게재했다. '쓱배송 지역'을 역세권과 합친 신조어다.
영어와 한글을 섞은 '잡탕 표현'도 있다. 가령 제주감귤연합회의 'Have a 귤데이', 맘스터치의 '빠르게보다 ALL바르게', 코웨이의 '당신의 삶을 케어합니다', SK 11번가의 '할인이즘', LG V20의 '새로움을 플레이하다' 등이다. 동서식품은 맥심 커피 인쇄광고에 '머그에 마시면 기분이 조크든요'라고 썼다. '먹go'와 같은 표현도 이제는 흔하다.
아예 영문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과거 GS칼텍스의 '마음톡톡' 캠페인에서는 'I am your Energy'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에이스침대는 '아침을 바꿔라' 대신 'Change the morning'라고 썼다.
15초, 강렬하고 짧은 한 마디에 사활을 거는 까닭
▲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전 한국광고학회 회장)가 최근 자신이 낸 책을 보여주며 광고 언어의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했다. ⓒ 김병기
최근 만난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전 한국광고학회 회장)는 광고업계의 이러한 한글 파괴 현상을 4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위에서 예로 든 것처럼 철자법과 문법 파괴, 한글과 한자의 혼용, 비표준어 사용, 영문 표기 등이다. 김 교수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광고 언어는 정확한 의사소통도 가능해야 하지만, 주목을 받아야 합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분량이 길고 이야기나 설명이 가능한 장르죠. 스토리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텔레비전 광고는 15초입니다. 짧고 강렬한, 그리고 재미있는 한마디가 필요합니다. 철자법을 어기거나 문법을 파괴하는 것은 이 때문이죠."
김 교수는 광고 제작자들이 이런 광고 언어를 사용하는 심리도 3가지로 설명했다. 우선 '선택성의 원리'이다. 김 교수는 "소비자들이 접하는 정보는 하루에도 수백 가지가 되는데,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과 듣고 싶은 것만 듣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결국 소비자들로부터 선택을 받으려고 문법을 파괴해서 눈에 띄는 광고를 제작한다"고 말했다.
선택성의 원리, 기대치 위반 이론, 기억하기 쉽게
다음으로 김 교수가 말한 두 번째 원리는 '기대치 위반 이론'이다. 가령 표준말에 사용하는 단어 그 자체로 기대치를 위반하지 않는다. 표준말에 사용한 단어가 이어져서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기 전에는 심리적 동요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김 교수는 오뚜기 식품의 '떠먹는 컵피자' 광고를 예로 들었다.
"컵나 좋군"
'겁나게 좋군'에 컵피자 제품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조어다. 표준어의 기대치를 위반해서 재미도 있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뇌리에 좀 더 오래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광고 제작자들의 문법 파괴 심리로 든 마지막 요인은 기억하기 쉽기 때문이다. SSG.com이 그 경우이다. 배우 공유가 방송 광고에 나와서 '에스에스지닷컴'의 7자를 '쓱'이라는 한글자로 압축했다. 빠른 배송 홍보뿐만 아니라 사이트 주소명도 쉽게 기억될 수 있는 부수효과도 얻었다.
또 이모티콘(emoticon)은 이모션(emotion)과 아이콘(icon)의 합성어이다. 김 교수는 "긴 말보다 짧은 말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는다"면서 "이는 소비자들의 '언어적 게으름'이라는 심리를 활용한 것"으로 분석했다.
우리말 억지로 비틀고 쪼개고... 브랜드에도 좋지 않다
▲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전 한국광고학회 회장) ⓒ 김병기
하지만 김 교수는 "광고의 힘은 무차별 노출과 무한 반복에 있다"면서 "항상 새롭게 생성되는 언어인 광고가 다양하게 진화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그 언어가 특정 세대나 특정 집단 등 소집단에서만 통하는 경우는 문제가 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적당한 언어유희는 찬성하지만 억지로 지나치게 비틀고 쪼개면 의미의 파편화가 심해져서 브랜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특정 계층에게만 팔 수 있고 제한적 브랜드가 될 수 있죠. 우리말에도 나쁘고, 기업에게도 나쁜 겁니다."
김 교수는 "보는 순간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서 사라지는 영상과는 달리 우리의 말과 글은 광고 언어의 등뼈"라면서 광고 언어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사문화된 '광고언어' 규정... 현실적, 효과적 기준 마련해야
광고 언어의 훼손을 막기 위해 '방송광고 심의에 관한 규정' 21조는 광고 언어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①방송광고는 표준어 사용을 원칙으로 하며, 한글 맞춤법 및 외래어 표기법을 준수하여야 한다. 다만, 불가피하게 사투리를 사용하는 때에는 특정 지역 또는 인물을 희화화하거나 부정적으로 묘사하여서는 아니 된다.<개정 2014. 1. 15.>
②방송광고는 국민의 바른 언어생활을 해치는 비속어·은어·저속한 조어를 사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③방송광고는 상품명, 상품표어, 기업명, 기업표어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필요한 외국어를 사용하여서는 아니 되며(단, 외국어 방송채널의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외국인 어투를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은 이 규정에 따라 '방송가' '방송 불가' '조건부 방송가' 처분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사후 심의로 바뀌면서 이 규정은 사실상 사문화됐다"라면서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너는 바른 사람이 돼야 해' '너 밖에 나가서 표준말을 써야 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철자법과 문법 파괴는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한글과 한자, 영어 혼용은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그리고 비표준어 사용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의 기준이 제시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 교수는 "국어학자뿐만 아니라 광고인들의 현실적인 이야기도 반영해서 다양한 문법 파괴 유형을 제시한 뒤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아름다운 광고언어상, 우리말 광고 창작운동 하자"
김 교수는 '아름다운 우리말로 쓴 올해의 광고언어상'도 제안했다.
"오래된 광고인데요, '손이 가요 손이 가, 새우깡에 손이 가요, 아이 손 어른 손, 자꾸만 손이 가'라는 광고가 있죠. 유한킴벌리의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슬로건도 있는데요, 순수한 우리말을 사용해도 얼마든지 오래 기억될 수 있는 좋은 광고 문구를 쓸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비대면 상황에서 '처음으로 여행이 우리를 떠났습니다'로 시작되는 아시아나 항공의 광고를 들었을 때 감동했습니다."
[링크]아사아나 광고 : https://youtu.be/Py-BAqWV144
김 교수는 "조지훈의 시 승무를 딴 접이식 핸드폰 광고 등 전파력이 그 무엇보다 빠른 광고 언어를 잘 이용하면 한글 사용 문화를 바꿀 수도 있다"라면서 "무분별한 언어 파괴에 대한 규제도 필요하지만, 아름다운 우리말을 쓰는 광고창작운동, 광고상 시상 등을 통해 광고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와 헤어지면서 '바람직한 광고언어란 무엇인지'에 대한 광고 문구를 요청했다. 그가 나중에 문자를 통해 보내온 글귀는 다음과 같았다.
"광고 언어는 소비하라고 속삭이며 마음을 흔들어대는 말길질이다."
발길질처럼 아름다운 우리말로 툭툭 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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