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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만큼 소름 돋는 실화... 이 14명을 기억해야 합니다

[서평] 14명의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책, '조작된 간첩들'

등록|2021.09.02 20:25 수정|2021.09.02 20:25
2002년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던 그때, 나는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아래 '의문사위') 조사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50년 만에 최초로 정권 교체를 이뤄낸 김대중 정부에서 출범한 의문사위의 조사실에는 매일같이 대단한 인물들이 출석하고 있었다.

지금의 국가정보원 전신인 중앙정보부 요원을 비롯하여 박종철 열사를 고문 치사한 치안본부(현 경찰청) 대공분실 소속 수사관들, 그리고 보안사령부(현 안보지원사령부) 소속 수사관들이 그들이다.

불려 나온 이들의 태도는 다양했다. 일평생 누군가를 부르거나 아니면 어느 날 밤, 납치하듯 끌고 와 속된 말로 '조지는' 역할에만 익숙했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그들이 우리에게 불려 왔다.

현직에서 물러나 인생의 종점 어딘가에서 살아오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젊은 사람이 육십 대 후반, 누군가는 팔십 대를 넘긴 이들도 허다했다. 연령대만큼 반응도 다양했다. "내가 누군 줄 아냐?"는 막무가내 호통으로 시작하여 육두문자 끝에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던 이도 있었고 또 누군가는 "몸이 아파서 가려야 갈 수가 없다"며 읍소하는 이도 있었다.

또 누군가는 치매가 들어 과거 일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며 핑계를 댔고, "뭐가 문제냐"며 당당한 돌격형도 접해봤다. 그런 다양한 유형의 저항에 하나하나 맞춤으로 응대하며 조사하는 것 역시 의문사위 조사관이라면 갖춰야 할 능력 중 하나였다.
  

고문이천민주화기념관 내 전시물 ⓒ 고상만


잔혹한 고문자들의 선한 얼굴?

그런데 얼굴 안 보고 나누는 전화 통화에서는 난폭한 언사로 좌충우돌했지만 막상 조사실로 입실하면 또 달랐다.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할 경우 의문사위 특별법에 의거, '과태료 1000만 원'을 부과할 수 있다는 말에 당시 전두환과 노태우를 빼고는 전부 출석했다. 그래서 옥신각신 끝에 출석한 그들을 마주하는 조사실로 들어서면서 조사관들 역시 남다른 각오를 다지곤 했다. 절대 밀리지 않겠다는 각오 말이다. 그런데 막상 마주하게 된 그들은 달랐다.

상상 속에서 험상궂은 인상을 가졌을 것이라고 예단한, 아니 악마와 같은 표정일 것이라 믿었던 그들 대부분은 너무나 선량한 얼굴이었다. 그들에 의해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문을 당했던 피해자 증언으로 상상했던 괴물은 거기에 없었던 것이다. 마치 이웃집 마음씨 착한 할아버지 같은 인상. 내 장인어른 같고, 작은 아버지 같으며, 큰 아버지의 인자한 웃음을 담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들이 정말 진정서에 담긴 그 잔혹한 행위를 했다는 것이 쉽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사건속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그들의 얼굴 역시 변해갔다. 과거 그들의 얼굴이 조금씩 보이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 그러니까 1960년대 이후 박정희 유신 악행으로 시작하여 전두환 군부독재를 관통하던 시대에 그들이 고문실에서 만들어 낸 피해자들의 절규와 고통을 바라보던 그 얼굴 말이다.

그들은 서슴없이 말했다. 자신이 수사했던 그들은 분명 빨갱이였다고.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그 당시 권총도 봤고, 난수표도 확보했으며, 수시로 북에 보고한 사실과 대한민국 정부를 타도하기 위한 음모를 확인했고 그랬으니 법정에서도 유죄 선고를 받은 것이 확실한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젊은 날 청춘을 바쳐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애국을 오늘날 김대중 정부 하에서 다시 조사하는 의문사위를 비난하고 싶어 안달하는 눈빛을 반짝이곤 했다.

하지만 '진실은 매서운 회초리'와 같다. 그들이 말하는 권총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난수표도, 북과 교신했다는 무전기 역시 그들은 단 한 번도 확보한 적이 없었다. 음모는 그저 그들이 고문을 통해 작성한 조서에서만 존재할 뿐 증거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명백한 진실 앞에서도 그들 대부분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신앙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역시 그들이 진실로 반성하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니 실망할 일도 사실 없었다. 우리는 그저 그들이 말하는 '증거 없는 확신을 우리가 확인한 증거로서' 반박하면 될 뿐이었다. 그것이 일상적인 조사 패턴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다르지 않은 줄다리기를 예상하고 조사실로 입실했다. 기억하기에 칠십 대가 넘어 보이는 중앙정보부 출신 수사관과 마주한 날이었다. 그는 자신이 중앙정보부에 근무하면서 담당했던 어떤 사건에 대해 자신의 기억을 진술했다.

그런데 남달랐다. 그는 처음부터 자신이 당시에 조사했던 그 사건은 '사실이 아니었다'며 인정했다. 의외였다. 그래서 물어봤다.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언제 처음 알았냐고. 그런데 돌아온 답이 너무도 뜻밖이었다. 이번에 의문사위에서 보내온 '출석 요구서'를 받고 나서야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 말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아 되물었다. 사건을 수사했던 처음부터 이미 알았던지, 아니면 수사 도중이나 종결 직후에 알았다면 모를까 아무 설명도 없는 한 장짜리 '출석 요구서'를 보냈을 뿐인데 뭘 보고 자신이 그때 담당한 사건이 조작이었음을 깨달았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이었다. 그러자 그는 답했다.

"아마 처음부터 알고는 있었겠지요. 그런데 그때는 전혀 의심하지 않은 거지요. 그때는 그게 애국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니 한번 정해진 목표 앞에서 어떻게 해서든 빨리 자백을 받는 것, 그것이 고문이든 그보다 더한 방법이든 애국이라고 믿은 겁니다.

간첩이라는 증거가 없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간첩이니까 당연히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던 겁니다. 제가 잘못 살아왔구나 깨달았습니다. 출석 요구서를 받는 날 비로소 알았습니다. 그러니 인생 말미에 여기로 불려 와 이렇게 죄인이 되어 조사를 받고 있는 거지요. 죄송합니다."


책 <조작된 간첩들-침묵하지 않을 의무>(아래 <조작된 간첩들>)는 바로 이런 이야기들을 사실에 기초하여 대중이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준 책이다. 지은이 김성수 박사는 필자와 오래된 인연을 가진 분이다. 1960년생인 김성수 박사가 영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귀국한 직후인 2004년 1월, 내가 몸담고 있던 '의문사위 보고서팀'으로 합류한 이래 지금까지 깊은 교우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 김성수 박사가 그간 '의문사위'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아래 '진실위')에서 조사해 온 사건들을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어냈다. 내가 조사관으로 일하며 경험했던 '익숙한, 그러면서도 끝내 익숙할 수 없는' 여러 실화들이 <조작된 간첩들>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 책을 두고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우리가 남이 당한 특별한 비극을 왜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냐고. 또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다 좋은데 너무 잔인하고 끔찍해서 책을 읽고 싶지는 않다고. 하지만 바로 그런 외면과 방관이 결국 누구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인지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유신 그 고통의 기억국회에서 전시된 기억전 ⓒ 고상만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 그들, 그리고 역사

반성하지 않는 그 당시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조사 시간만 버티면 된다는 식이었다. 미약한 조사 권한으로 강제 수사가 불가능하다는 약점을 그들은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조작하여 철저히 파괴된 누군가의 일생은 그저 억울한 메아리로만 남고 대신 가해자들은 조작된 애국행위로 받은 훈장을 매개로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비극이 오늘도 반복될 뿐이다.

최근 많은 이들 사이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약칭 <꼬꼬무>라는 방송이다. 유명 연예인이 과거 우리가 얼핏 들었으나 자세히 몰랐던 어떤 사건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알려주니 방송 후엔 여기저기서 화제가 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 <꼬꼬무>보다 더 재미있고 보다 더 사실에 접근한 이야기가 바로 이 책, <조작된 간첩들>이었다.
 

조작된 간첩들책 표지 ⓒ 드림빅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인물은 1960년대 촉망받던 경제학자 권재혁 교수 사건이다. 그는 1968년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고문 끝에 간첩으로' 만들어졌다. 훗날 드라마와 영화에서 배우로 유명해진 권재희씨의 아버지이기도 했던 권 교수는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조사 결과 다행히 진실 일부가 드러났다.

이 당시 조사에서 권 교수의 아내는 '연행되어 조사 도중 우연히 복도에서 (남편을) 마주쳤을 때 많이 맞아서 이마에 혹이 엄청나게 크게 달렸으며 멀리서 듣게 된 (남편의) 비명소리가 돼지 멱따는 소리처럼 들렸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정과 검찰이 조작하고 법원 판사의 사형 선고라는 '사법 살인' 절차를 거쳐 권 교수는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야말로 '합법적인 살인사건'이었다. 권 교수를 비롯하여 이 사건 관련자 13인은 법정에서 이 사건 '남조선해방전략당'이라는 반국가단체 이름은 '불법으로 연행되어 처음 들어본 이름'이라며 부인했다. 하지만 이들의 억울한 항변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공포와 두려움으로 점철된 야만적 시대였다.

이 책은 이러한 피해자 열네 명의 실제 사례를 담고 있다. 중정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의문사위에서 유일하게 밝힌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 사건을 비롯하여 가장 최근 사건으로는 노태우 집권 시기 자행된 '1991년 유서대필 조작' 강기훈씨 피해 사건까지. 학교 선생님과 납북 어부들을 대상으로 한 간첩 조작 사건 역시 진실을 마주하면 우리가 서 있는 오늘이 어떤 참담한 역사를 바탕으로 한 건지 알 수 있다.

'비극은 망각의 힘으로 성장'한다고 흔히 말한다. 그렇기에 기억하고 외면하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모두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나는 그간의 경험으로 확인했다. 그런 점에서 지난 2006년부터 4년간 활동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조사결과 보고서는 기억과 화해라는 귀한 열매였다. 정말 많은 이들이 꼭 읽어 봐야할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이자 인권 교과서'라고 단언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잘 담아내도 보고서는 보고서로서의 딱딱함을 극복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 딱딱한 보고서를 저자인 김성수 박사는 매우 흥미롭게 재구성했다. 마치 눈 앞에서 다시 그 장면을 보듯 쉽게 풀어썼다. 역사적 고증이 잘 뒷받침된 덕분이다. 이 책, <조작된 간첩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거라며 오늘도 당당히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들에게 매서운 증거가 될 것이다. 그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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