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경조사 가기 전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
[제주살이를 꿈꾸는 당신에게] 독특한 섬 문화
이제 제주살이 4년차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에 거셌던 제주 러시 현상은 다소 진정된 듯하다. 그러나 아직도 제주 이주를 꿈꾸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제주 1년 살이 혹은 1달 살이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이 글은 동아일보 기자와 세종대 초빙교수를 지내고 은퇴한 후 제주로 이주한 한 개인의 일기이자 제주에서의 생활을 소재로 한 수필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제주도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제주의 자연환경,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한국현대사의 축소판이라 할 제주사회를 이해하는 데 유익한 읽을거리가 되길 기대한다.[편집자말]
하객 대부분은 마을주민들인 것 같았다. 상차림도 훌륭했다. 생선회, 돼지고기, 전복 등 정갈한 음식들이 맛있었다. 내일 예식을 앞둔 신랑과 신부도 나와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녔다.
마을회관에서 식사를 하면서 제주의 결혼문화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듣고 보니 하객이나 혼주, 신랑과 신부 모두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최소 3일 잔치
▲ 제주의 전통 결혼식제주에서는 전통적으로 결혼식 전후에 5일 잔치 혹은 7일 잔치를 벌였으나 최근에는 당일잔치를 하는 사례도 눈에 띈다. 국립제주박물관에서 촬영. ⓒ 황의봉
무엇보다도 '겹부조'라는 말이 널리 쓰일 정도로 부조 방식이 육지와는 판이하다는 점이 신기했다. 겹부조란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에게 각각 따로 부조하는 풍습이다. 예를 들어 신랑과 신부를 모두 알고 있다면 축의금을 두 사람에게 각각 주어야 한다. 신랑·신부의 부모와도 친분이 있다면 역시 따로 축의금을 주어야 한다.
예식장에 접수대와 방명록이 준비된 육지와는 달리 제주는 대부분 혼주와 신랑·신부가 하객으로부터 직접 부조 봉투를 받는다. 그러다 보니 신랑이나 신부가 직접 축의금을 받고 관리하기가 어렵게 된다.
이래서 생겨난 게 부 신랑과 부 신부다. 친한 친구들 중에 부 신랑과 부 신부를 정하면, 이들이 신랑과 신부를 대신해 축의금 관리부터 온갖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한다는 것이다.
겹부조가 하객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면 길고 긴 피로연은 혼주나 신랑·신부에게 부담이 되는 행사다. 제주의 결혼잔치를 흔히 3일 잔치라고 한다. 잔치는 도새기(돼지) 잡는 날부터 시작된다. 돼지 잡고 삶느라고 온종일 부산하다. 과거에는 돼지 몇 마리를 잡느냐가 그 집안의 능력을 보여주는 척도였다고 한다.
2일째는 가문잔치를 치르는 날이다. 예식 전날 친척과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종일 잔치를 한다. 결혼식 당일보다도 손님이 더 많은 게 보통이다. 3일째 당일 잔치를 치른다. 결혼식 당일, 피로연이라는 이름으로 하객들을 접대하는데, 역시 온종일 진행된다.
제주에서는 전통적으로 5일 잔치나 7일 잔치, 최소한 3일 잔치를 했지만 최근 들어 호텔이나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가문 잔치와 당일 잔치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요즘엔 당일 잔치만 치르기도 하지만 이 역시 종일 이어진다.
이처럼 제주의 결혼식 문화가 겹부조와 오랜 잔치로 인해 이른바 '작은 결혼식'을 지향하는 최근의 추세와는 동떨어진 게 아니냐는 비판이 많다. 무엇보다 경제적 부담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은 게 사실이다. 하객 숫자와 축의금 규모가 전국 평균에 비해 2배 안팎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런 제주의 결혼문화를 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게 이런 풍습이 왜 생겨났을까, 하는 점이었다. 제주 토박이들에게 물어봐도 조금씩 다르게 말하고 있다.
독특한 개별 부조, 독특한 접대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은 제주의 독특한 개별 부조 문화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부모와 자녀 간 철저한 분가 제도와 부부 간 독립된 경제활동 관습이 겹부조 문화로 굳어졌다는 분석이다.
분가 제도는 제주의 주택구조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한다. 제주의 전통적인 가옥구조는 안거리(안채)와 밖거리(바깥채)로 이루어졌다. 안거리에 살던 부모는 장남이 결혼하면 밖거리로 옮기고 대신 자식 부부가 안거리에 거주한다. 이때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는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한 단위가 된다. 안거리에 사는 자식이 밖거리에 사는 부모 텃밭 농사를 거들어주면 부모도 똑같이 자식 농사를 거들어줄 정도로 명실상부한 분가 제도가 자리 잡았다.
또 재산상속도 아들과 딸, 장남과 다른 자식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러한 철저한 분가 제도를 통해 부모와 자식 간은 물론, 부부 사이에도 비교적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게 됐다. 특히 부부 간에도 어느 정도 독립적인 경제활동이 가능하다 보니 가족 구성원이 개별적으로 하는 겹부조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결혼식 잔치나 피로연을 오랜 시간 치르는 접대 문화는 섬이라는 특성을 지닌 제주의 공동체 문화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예전에 제주에서 혼례를 치르려면 공동체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고 한다. 물이 귀하다 보니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잔치에 쓸 물을 길어다 주었고, 땔감을 준비하고 돼지를 잡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물 부조'라는 말도 이래서 나왔다고 한다. 이런 상부상조의 전통이 공동체와 함께 나누는 잔치나 접대문화로 이어진 것이다.
▲ 접수대와 방명록이 없는 상가 풍경제주의 상가 빈소 앞에는 육지와는 달리 접수대와 방명록이 없다. 조문객은 친분 있는 상제들에게 개별적으로 부조를 해야 한다. ⓒ 황의봉
장례문화 역시 결혼문화와 비슷한 점이 많다. 서귀포병원 장례식장에 한번 가본 경험이 있다. 여기서도 예식장처럼 부의금 접수대나 방명록이 없었다. 또 겹부조 전통도 마찬가지였다. 조문객은 자기와 친분이 있는 상제들에게 각각 부의금을 주고 있었다.
만약 고인의 자녀가 3형제인데 그중 2명의 상제와 친분이 있다면 부의 봉투를 2개 만들어 각각 주어야 한다. 아들 3명과 모두 알고 지내는 사이라면 봉투를 3개 준비해 조의를 표해야 한다. 사돈이나 가까운 친척들 경우는 상제들 모두에게 부조해야 하므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부의 봉투를 받은 상제는 역시 답례로 상품권을 조문객에게 준다. 그러다 보니 상제들은 각자 부의 봉투 받아야 하고 상품권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상제들이 가방을 몸에 지닌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 상품권 답례도 요즘엔 호텔에서 뷔페 음식을 대접하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비용 문제 등을 고려해 생략하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고 한다.
섬 특유의 공동체 문화
제주의 장례문화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모습은 일포(日哺) 날에 맞춰 문상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제주에서는 출상 전날을 일포라고 하여 중시한다. 이날 죽은 자와 마지막으로 이별을 하는 의미의 일포제(日哺祭)를 지내는데, 일포는 조문을 집중적으로 받는 날이기도 하다. 신문 부고나, 문자메시지를 받아 보면 항상 일포 날짜가 명기돼 있다.
서귀포병원에 문상 갔던 날 제주의 전통 윷놀이를 목격하기도 했다. 요즘은 많이 사라졌지만, 상가에서 고스톱 치는 문화가 있듯이 제주도에서는 윷놀이판을 벌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윷가락의 길이가 손가락 크기 정도로 작다. 이 작은 윷가락 4개를 간장종지 같은 데 넣어서 멍석 위로 던지고 있었다.
▲ 최근 들어 호텔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치르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전통적인 제주의 접대문화도 변하고 있다. 장례식도 전문 장례식장에서 치르는 추세다. ⓒ 황의봉
아무튼 제주의 경조사 문화는 독특하다. 섬 특유의 공동체 문화에서 비롯됐다고는 하지만 낭비적 요소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풍습도 마을에서 호텔이나 장례식장으로 장소가 바뀌면서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당분간은 제주에서 경조사를 챙겨야 할 일이 있다면 부조 봉투를 몇 개 준비해야 할지를 잘 따져보아야 할 것 같다. (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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