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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 원고 투고를 해봤습니다, 그 결과는요

교육비평집, '거침없이 교육'을 내기까지

등록|2021.09.08 17:29 수정|2021.09.08 17:29
사람들 몰래 원고 투고를 했다. 안 되면 부끄러우니까 몰래. 이는 투고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한 이야기다.

'비판적 지식인들'의 영향으로 쓰게 된 글

적어도 스무 살 이후부터는 책을 좋아했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의 사회비판서를 접하면서 비판적 지식인들의 글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의 <인물과 사상> 시리즈에서 나는 헤어나올 수 없었고, 이어 고종석, 진중권, 박노자, 홍세화, 유시민, 김규항의 글을 접하면서 역시 헤어나올 수 없었다. 지금은 누구의 글이든 적당히 거리를 둬 가며 보려 노력하지만, 그때는 그저 그들에게, 그들의 책에 빠져들었다.

비판적 지식인들의 글을 많이 접하다 보니, 그들을 따라 하고 싶어졌다. 나도 한 번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들의 문체는 어설플지언정 나에게 스며들었다. 따라서 쓰다 보니 글 쓰는 게 좋았고, 한 편의 글이 완성되면 나도 무슨 '비판적 지식인'이 된 것 마냥 뿌듯했다. 그렇게 자기만족적 글쓰기는, 조금씩 계속되었다.

한 번은 평소보다 좀 더 공들여 글을 써 보기로 했다. 현재 초등학교 교사인 나는, 교육공무직 처우 문제가 눈에 밟혔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에 관한 온갖 오해와 잘못된 사실들이 떠돌아다니고 있었고, 무언가 한 번 제대로 파헤쳐서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시도 때도 없이 기사를 검색하며 정보를 찾았다. 정말 열심히 썼다. 새벽까지 썼다. 이렇게까지 쓸 건 아니었는데, 너무 열심히 써버렸다.

생각보다 너무 열심히 공들인 게 조금 아까워, 평소 가끔씩 보곤 했던 인터넷교육언론 <에듀인뉴스>에 무턱대고 이메일 주소를 찾아 보내봤다. 실으려면 싣고, 말려면 말고. 답메일이 왔고, 내게 사진을 달라 했으며, 바로 다음 날 글이 실렸다. 그리고 필진으로 함께 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도 왔다. 떨리는 순간이었다.

<거침없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0개월가량 글을 썼다. 내 나름대로는 앞뒤 안 가리고 썼다. 비판 문화가 부족한 교육계에서, 불편할 수 있을 실명 비판도 대책 없이 해버렸다. 그렇게 글이 쌓였고, 이전에 <작은책>과 글쓰기회보에 기고했던 글들을 합치니, 얼추 책 한 권 분량이 되었다. 책을 내고자 하는 내 환상과 욕망이, 시작되었다.

투고 결과에 목을 매게 되다 

책을 내는 과정들을 부단히도 찾아봤다. 유명한 사람들은 출판사에서 알아서 책 내자고 찾아온다. 인플루언서, 스타 강사(선생님) 등. 나에게 그럴 일은 없었다. 고로 제일 먼저 해야할 것은, 원고 투고다. 출판사의 이메일 주소를 조사하여 원고를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대책 없이 그냥 막 보내면 안 된다. '출간 기획서'라는 것을 작성하고 그것을 원고와 함께 보내는 것이다. 출간 기획서가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출판사는 원고를 보기 전에 그 출간 기획서를 먼저 보고 거의 대부분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출간 기획서' 쓰는 법을 또 부단히 찾아봤다.

'출간 기획서'에 내 신상, 내 소개, 원고 소개, 제일 중요한 목차 등등을 적당히 써서, 투고를 하기 시작했다. 교육 관련 출판을 한 출판사들을 찾아야 했다. 출판사의 이메일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열 세 곳 정도를 한 번에 투고했다. 내가 찾아본 바로는, 원고 투고는 거절의 연속이니 상처 받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최소 100곳 정도는 해야 하고, 200곳 정도 해서 내 원고를 알아보는 출판사와 계약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런 나는 고작 십 여곳 정도밖에 투고를 안 했다. 누가 내 뛰어난(?) 원고를 알아봐주는 곳이 그 십여 곳 중 나오지 않을까 하는, 그래서 이후 힘들게 또 투고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해 본 것이다. 안되면 일주일 뒤 또 해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연락은 개뿔, 일주일이 그냥 지나갔다. 그 일주일 동안 얼마나 메일을 열었다 닫았다 했는지 모른다. 보통 원고 검토에 짧으면 일주일, 길면 한 달 이상 시간이 걸린다고들 했다. 또, 될 성싶은 출판사는 일주일 안에 연락이 온다고 했다. 그 안에 연락이 오지 않으면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봐도 된다. 그렇게 첫 번째 시도는 물 건너갔다.

나의 투고, 출판사의 답변

첫 투고의 쓰라림을 뒤로하고 다시 열 두세 곳에 투고를 했다. 금요일 밤에 투고를 했으니, 웬만하면 주말에 답이 오지 않을 일이었다. 보통 그때는 출판사 편집자들도 쉬지 않겠나. 그런데 그 주말에도 얼마나 메일함을 열었다 닫았다 했는지.

메일이 안 온 걸 확인하고는, 수신 확인함에 가서 내 메일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까지 찾아 확인했다. 속세에 전혀 초연하지 못했다. 나는 그냥 그런, 초연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흔하디 흔한 보통놈이다.

그렇게 총 2주에 걸쳐 스물 대여섯 곳에 투고를 했다. 그렇다면 답변이 온 곳은 한 곳도 없을까? 일단 대부분의 출판사는, '읽씹'이었다. '읽씹' 하는 출판사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진 않다. 아무리 작은 1인 출판사라도 하루에 원고가 최소 5~6개가 온다고 하니, 중대형 출판사는 오죽 하겠나. 그럴 수 있다 생각하면서도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어떤 곳은 투고를 하자마자, 그러니깐 '보내기' 버튼을 누르자마자 답메일이 오는 곳도 있었다. 아마도 자동 답메일 시스템인 것 같았다. 요지는 '잘 접수 됐으니 검토하고 알려주겠다'였고, 검토는 했는지 모르겠으나 알려주진 않았다. 그래도 답메일이 온 출판사는, 다들 친절했다. 그렇다. 친절하게 예를 갖춰 거절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안녕하세요, 곽노근 선생님.
◯◯ 출판사입니다. 먼저 저희 출판사에 관심을 기울여 주시고,
뜻깊은 원고의 출간을 제안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보내 주신 <거침없이 교육> 기획안과 원고는 잘 살펴보았습니다.
기획안과 원고를 검토하고 논의한 결과,
저희 출판사로서는 이 기획의 콘셉트와 강점을 잘 살려
이끌어 가기 어렵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긍정적인 답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 전합니다.
◯◯ 출판사에 소중한 기획을 제안해 주셔서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또 다른 기회로 인사 드릴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 출판사 드림"


삐딱하게 생각하지 않으련다. 그래도 이 정도 문구를 만들고 다듬은 출판사의 배려에 (물론 모든 거절 답변을 이렇게 하겠지만)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긍정적인 답변이 온 메일은 하나도 없었을까? 아주 작은 곳에서도 희망을 찾아 '발굴'하자면, 있다.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한 출판사에는, 일부러 피드백을 바란다는 뜻을 넌지시 비췄고, 답은 이렇게 왔다.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원고를 잘 보았습니다.
정리가 잘되었고, 현장감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저희 출판사는 출간 종수도 많지 않고
계약된 원고 출간이 밀려 있어서
새로운 책을 적극적으로 기획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출간이 어렵겠다는 말씀 전해드립니다.
요즘 ◯◯◯에서 단행본 출판사를 설립하여
교육 관련 원고를 받고 있다고 하니
그쪽에 한 번 컨텍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좋은 답변 드리지 못해 송구합니다.
건투를 빕니다.
고맙습니다.
◯◯출판사 대표 ◯◯◯ 드림"


비록, 내 원고를 다른 곳으로 떠넘겼지만, "정리가 잘되었고, 현장감이 느껴지는 글"이라는 내 글에 대한 코멘트는 나를 다소간 들뜨게 했다. 그래, 기어코 아주 사소한 단어들에 집착했다는 거 아는데, 실낱 같은 희망 하나라도 붙잡고 싶었다.

나는 과연 책을 낼 수 있을까?

어쨌든 금요일 두 번째 투고 후, 안절부절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메일함을 열었다 닫았다, 그리고 '새로고침'을 반복하고 있었다. '수신확인함'에 가서, 내 메일 읽은 출판사, 안 읽은 출판사를 구별해가며 '아, 여기 아직도 안 읽었네? 언제 읽게? 좀 읽어라'를 중얼거렸다.

전화가 왔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촉이라고 하나? 이 전화는 내가 평소 받았던 전화와는 왠지 좀 다를 것 같은 촉. 받았다.

"안녕하세요, ** 캐쉬백 인데요. 고객님 포인트가 아직... 블라블라."

내 촉이 '똥 촉'이라는 걸 깨달았다.

또 전화가 왔다. 그날따라 유난히 전화가 많이 오는 것인지,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정녕 알 수 없었지만 이 전화, 너무나도 받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업 중이었고, 교사로서의 윤리를 지킨다며 받지 않았다. 나에게 진심인 전화라면 다시 전화를 주던가, 아니면 문자라도 주겠지. 수업이 끝나고, 기다리고 기다려도, 그 전화는 다시 오지 않았다. 평생 오지 않았다. 나에게 진심인 전화가 아니었던 게다.

다시 메일을 여닫고 새로고침 하기를 반복했다. 얼마 지나지도 않아, 지쳤다. 메일은 여전히 의미 없는 단어들로 꽉 차 있었다. 퇴근하고 집에 거의 다 왔을 무렵, 전화가 왔다. 기대는 접었다(고 내 자신을 속였다). 무심히 받았다(고 역시 내 자신을 속였다).

"안녕하세요, 정한책방인데요."
 

교육비평집 '거침없이 교육'. 교육계 이슈와 관련하여 거침없이 비판했으나, 상대방을 존중하려 부단히 노력했다. ⓒ 곽노근


이렇게 출판사 '정한책방'과의 통화 후 계약을 하고 나는 <거침없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게 되었다. <거침없이 교육>은 교육비평 책이다. 한국 교육계를 향해 거침없이 비판을 하되, 비판하는 상대방을 존중하려 부단히 애썼다. 실제 그러한지는, 글을 보시는 분들이 판단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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